달에게
어쩌면 이 글은 잊혀진 소설 속 어느 문장처럼, 허공에 잠시 머물다 이내 흩어질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다. 쓰는 사람의 일이란 결국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문장을 흘려보내는 것이므로.
여름이 아직 덥다.
햇살의 무게는 가벼워질 줄 모르고,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숨을 더디게 해. 벌써 가을을 기다리는 초조함 때문이겠지.
어찌 된 일인지 이번 여름은 좀처럼 바람을 마주치지 못해. 바람에 흩날리는 것들을 볼 일도 없지. 그래서 그런지, 여하간 서늘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어서 보고 싶다. 그럼 또 한 번 지나는 계절이 널 그리워하는 시간을 더 쉽게 새겨주겠지.
나는 소설가도 아니면서 이야기를 떠올리곤 해. 세상이 내게 그런 특별한 재주를 주지 않았음에도, 글 쓰는 일이라는 좁은 길을 두고 오래도 서있는 것 같아. 넋두리 같은 글들을 써왔지만,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놓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은 온통 너와 관련된 것들 뿐이야. 그래서 오래전 기록들을 다듬는 일에만 열중할 뿐이야.
너는 한여름에 부는 서늘한 바람이고, 나는 때 이른 낙엽이지. 그것들과 네가 다른 점이 있다면, 너는 내가 부정하거나 수정할 수 없는 현실의 어느 공간에 있다는 것뿐이야.
너의 지금. 청춘이라 하기에 더없이 충분한 너의 오늘은 내가 쓰는 얄상한 문장들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계절 같아.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녹여내는 그 봄 같은 미소, 너의 그 여름 같은 발랄함, 무슨 일에든 제법 진지한 가을 같은 태도, 그런 너라서 누구든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네 안에 겨울 같이 남은 상처... 얼핏 보았던 너의 그런 모습들은 문득 나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게 했다. 그건 이전에 겪어본 적 없던 계절이야. 그런데 이상하지. 그 한숨 같은 깨달음이 나를 조금도 슬프게 하지 않아. 오히려 행복에 가깝게 했지. 내 마음이 널 향해 있다는 사실이 내 평범함 조차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흘려보내는 이 문장들까지도 내게 찾아온 이 이름 없는 계절에 선명하게 남기 때문에.
아마도 영영 고백할 일은 없겠지.
네 앞에 서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문장들로 써낼 수 있는 말들이, 입술에서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까. 여러 번 붓칠 된 내 삶의 무늬는 흰색과 아이보리로 빛나는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불쌍하다 여기지 않기를. 나는 내 무늬들을 가끔 들여다보며 짐짓 마음에 들어 하거든. 낯부끄러운 문장들로, 이런 식으로라도 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어.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길 바라니까.
만약 네가 이 편지 같은 글을 보게 되거든,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도, 너의 그 계절 같은 모습들은 조금도 변함없길 바래. 몇 번의 계절이 내 무늬에 몇 개의 쉼표를 남긴 뒤라면 몰라도 말이야. 그때라면 나도 너라는 계절을 다른 계절 속에 묻어둘 수 있겠지.
그때라면, 네가 날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런 때가 오더라도, 한 치의 의심 없이 나도 내 무늬들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회색이었던 날.
A로부터.
ps. 낮에 봤던 낮달이 위로가 되네.
며칠 사이 밤달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