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물이 자란다. 땅이 머금은 여름이 한 껏 가을로 피어오르겠지. 가을은 파렴치한 계절이라고, 왜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실컷 욕하고 싶지만, 우선 간밤에 떠올린 잔상부터 전한다. 그래, 이마저도 확실치 않으니 잔상이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표현할 길이 없다.
너는 언젠가 그랬지. 어금니며 송곳니며, 너의 도드라진 두 앞니를 포함해 모든 치아가 바스러지는 꿈을 꿨다고. 영 꺼림칙한 꿈이었기에 해몽 책을 사다 봤다고. 그날 네가 주섬 주워 들었다던 누군가의 해석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문득 그날의 일을 새기다 뼈의 고단함과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의 척추는 이족보행에는 썩 어울리지 않다고 하지. 그 형태에 맞지 않게 잘못 진화한 거라고. 뼈와 뼈 사이, 관절에 자리 잡은 물컹한 연골은 접혔다 펴지기를 수백만 번에 채 달하지 못하고 닳아 없어진다지. 치아는 어떤가. 몇 개의 유치는 보름을 덜렁거리다 어느 문고리에 걸린 실밥의 우격다짐에 잇몸으로부터 영영 달아나지 않던가. 아뿔싸. 그게 마지막 여분의 장치였다.
그렇게 뼈의 존재는 부조리함 그 자체가 아닌가. 잠시나마 살과 분리해 꺼내어 다듬고 고쳐 다시 끼워 넣을 수 없다는 게. 일평생 맨눈으로 한 번 보기도 힘든 그것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선 아가의 걸음마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게.
여하간 너의 그 꿈은 한밤의 악몽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존재의 약성, 우주의 부조리함, 살아감의 노고, 있어야 하지만 없어지는 것들, 필요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계시인 셈이다. 사족이지만 만일 그런 계시자가 있다면 나는 따져볼 것들이 많다. 왜 우리는 죽음 앞에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지 못하느냐고. 채 일백 년도 안 되는 짧은 생에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의 기회는 없는 거냐고.
여하간, 네 꿈은 계시에 가깝기 때문에 노여워하거나 두려울 것이 없다. 꿈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달콤한 꿈이든 베갯잇을 적신 꿈이든 그저 순간이 영원하리라 믿는 것. 그게 아니고서야 잠에 든 사이 살아가는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
그러니 그건 사랑과도 같은 것이지. 망령된 고통과 환영 같은 행복의 틈 사이에서 순간이 영원하리라 다가오는 것. 영원할 줄 알았던 첫사랑은 한때에만 가질 수 있던 어린 앞니 같은 것. 훗날의 사건들은 네 송곳니를 날카롭게 했겠지.
그러나 사랑은 결국 가루가 되어 사라진 그날 네 꿈속의 열여섯 개 어금니이기도 하다. 평생에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같은 것이지.
그러니 지금 네가 빨갛게 거머쥐고 있는 열댓 번째 인연을 소중히 하길. 그가 너의 든든한 어금니 같은 존재라 생각하길.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여다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길. 고된 일을 떠맡긴 후 그걸 당연히 여기지 않길. 사랑은 내게 꿈같았던 것이었고, 돌이켜 보면 짐짓 잃고서야 깨닫는 소중함 같은 것이었으니.
오늘은 비가 오기에 밖에 나갈 일이 없지만,
너는 네게 돌아오는 길에 선 그를 우산 없이 반기길 바란다.
네 뼈에 계절의 눈물이 스며드는 일에 주저 없길 바란다.
지상의 물이 하늘로 닿던 날
A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