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둥

연애담

by 앤드류

2019년 12월

사랑을 쓰기로 했던 날의 기록

오늘은 구깃한 옷자락을 보고 다림질판 앞에 앉았습니다. 흰색 셔츠 하나를 올려두고 코끝에 닿았던 것은 낡은 기억이었습니다. 수년 전의 어느 기억과, 또 그로부터 수년 전의 어느 기억까지. 그렇게 옛 어느 날로 돌아갔습니다.

장면은 당신을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눅진한 바닥에 엉겨 붙어 있던 한여름 초저녁. 점점 젖어오는 밤의 냄새. 녹슨 방충망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무렵. 밤이면 뚫어지게 바라보던 누런 가로등.

삼층짜리 빌라 꼭대기에서 바라본 창문 밖 낮은 밤풍경이 누렇게 떠올랐습니다. 앞산 자락을 따라 늘어서있던 회색 옹벽은 가로등 빛을 받아 노란 도화지가 되었습니다. 늘어져 내린 가시박 덩굴을 눈으로 따라 그리며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당신의 것이길 바랬습니다.

시계를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제일 짧은바늘이 '12'에 가까워질수록 목울대가 조여왔습니다. 그러다 끅끅대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손끝으로 훔친 눈물을 방충망 위로 한칸한칸 찍어두곤 했습니다. 노란빛과 함께 스며들었던 수분은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졌고, 바닥에 엉겨붙어 잠에 든 사이 돌아온 당신은 제가 그렸던 그림을 볼 수 없었겠지요. 다행히 아침이면 원망이나 슬픔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곳 고향에서의 기억은 채 십 년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그 구석구석의 풍경이 기억속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한여름밤 개구리울음소리를 따라 당신 손을 잡고 걸었던 논길. 또래들과 우글거리며 몰려다녔던 골목골목. 하루 몇 번씩 지났던 고샅길들. 온 동네 할머니들이 일궈놓았던 조막만 한 텃밭들. 철교와 그 너머의 과수원은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었지요.

당신이 멀리 있는 사이, 지상의 것들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디든 숨어있던 온갖 풀벌레는 물론이고, 특히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고샅길 담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 낮은 담장에서 달팽이무리들과 지렁이, 널찍한 잎새들마다는 개구리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하루는 웬 돌덩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아랫집 큰형 덕분에 처음으로 두꺼비라는 녀석을 알게 되기도 했지요. 그런 기억들 말고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편련片戀에 대한 애착은 그곳에서, 당신을 좇아 자라난 듯합니다.


왠지, 죄 없이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손톱이 자라듯 어느 끄트머리에 죄스러운 마음이 자라나 있습니다. 그리 착하지도 않게 살아졌지요. 그래서 인생 절반 정도는 내 것이 아닌 듯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제야 어쩌란 말이냐며 무심 따져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때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아이야, 괜찮다. 다 괜찮다. 잘못해도 다 괜찮다.

그건 아마도 당신께서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겠지요. 괜찮아. 엄마 금방 도착해.

그렇게 당신 목소리를 떠올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어 셔츠를 다렸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노래가 낮은 음정 속에 끝없이 흐르도록 두었습니다. 그 옆에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는 어떤 이의 이름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짙은 밤 기다리며 눈을 감고, 그의 주변인이 되어 나선을 그렸습니다. 이리저리 마주치는 것들에 마음을 묻히고, 쓰라림을 사랑으로 외면해보려 했습니다. 문득 사랑이 뭔지,라는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잠에 들 것 같지 않아 펜을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어쩌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아직도 신을 만날 수 있다면 꼭 물어봐야지 하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하는 모호한 답이 아니라, 사랑은 이것이다, 사랑은 그것이다 하는 딱 떨어진 정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두고 단순한 유전적 본능이나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견뎌내기는 싫었습니다. 다만, 당신이 내게 베풀었던 사랑은, 지금 내가 앓고 있는 사랑보다 더 거대할지요, 더 깊을지요, 더 숭고한 것일지요…?


어쨌든 소년은 스무 살 무렵이던 어느 날 사랑이란 걸 알게 됐고, 사랑의 화신이 되어 격정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길고 짧은 인연들이 서너 번, 대여섯 번 지나갔습니다. 그제야 격정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지혜라 일컫는 것들이 깨알만 큼씩 채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뭔지도 모르는 것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운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행운을 누렸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를 떠올리며 종일 입가에 미소를 띨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연정이,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일을 벌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 사람. 수십 개월 할부로 마음을 결제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내도록 하는 그런 마법. 마음대로 사랑했다가, 마음대로 미워했다가, 결국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갖게 하는 그런 마력이 사랑에겐 있는 듯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지, 또 얼마나 만나는지. 그런 것들이 연인 사이에선 중요하다 말씀하셨지요. 서로의 좋은 점들을 찾아내고 서로의 비슷한 모습들과 생각의 차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순식간이라 하셨지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 무엇들로 채워지는지, 그래서 연인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이 되게 하며 어떻게 행동하게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 하셨지요. 그렇게 하지 않았던 사랑이 없어 다행입니다.


몇몇 인연들이 순서와는 상관없이 떠올랐습니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그래서 지금도 내 심장의 조금씩을 가져간 그녀들의 모습들이. 내 모습이. 있었던 일들이. 그날의 계절들이. 어떤 밤이. 어떤 향수가. 어떤 구름이…


떠오르는 기억들을 내버려 두니 오랜만의 격정에 숨이 깊어져 이만 줄이겠습니다. 종종 편지를 전하는 마음으로 남기겠습니다. 지금, 순서와 상관없이 떠오른 인연들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전해본 적 없는 비밀스러운 연애담입니다. 그리고 당신으로부터 알게 된 이 편련의 흔적을 담아, 그리움에 대한 한 조각 마음을 제목으로 엮어보려 합니다.

-〈편련애찬片戀愛讚



*



소금기둥 1 - 술자리에서

무릇!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길고 긴 고단함과 짧은 환희로 점철되어 있지.

말이야.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삶의 어떤 고단함. 그걸 생각하면 '눈물의 총량'이라는 말이 떠올라. 결국 우리 삶은 절반의 행복과 나머지의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을 거라는, 그런 허황된 믿음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의 이 슬픔의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어떤 그런 희망적인 믿음을 품고 있으니까 제법 그럴싸한 생각 아니겠어?

너와 나, 세상사람들 모두에게, 우리가 오롯이 흘려내야만 하는 할당된 눈물의 총량이 있다는 가정말이야. 우리 마음엔 눈물로 가득한 호수가 있고, 그 총량을 모두 흘려내고 나면 더 이상 울 일이 없어진다고 믿고 싶었지. 설마 마음이 깊어질수록 함께 불어나는 '무한저수지'겠냐는 말이지. 결국 흘려버리고, 증발시켜 버리고, 어느새 말라비틀어진 호수의 밑바닥에 하얗게 소금만 남겠지.

언젠가 K랑 한겨울에 대천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술을 진탕 마시고 잠에 들기 직전에 떠올랐어. 우리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소금기둥이 아닐까.

사람은 염분 없이 채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는데, 의학적으로 어쩌구, 전해질이 저쩌구가 아니라! 애초부터 우리가 우리 엄마들 뱃속에서부터 소금으로 빚어진 게 아니냐는 말이지. 그래서. 마음에 뭔가 꽉 들어차서. 한 1000도씨 정도로 막 들끓어 오르면, 우리 몸 어딘가에 굳어있던 소금이 녹아서 눈물샘으로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게 아니냐 하는 거지. 그래서 울면 안 된다는 말을 매년 한 번씩은 애들한테 노래로 불러주는 거야. 겨울철에는 염전 생산량이 '0'에 가깝거든. 그러니까!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웃음)

그래서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흘렸던 눈물들을 생각하면, 아, 그때 내가 내 생명을 담보로 사랑이란 걸 했구나 한다. 그놈의 사랑이란 게, 바다같이 밑도 끝도 없이 들쑤셔서 결국 소금만 잔뜩 앗아가 버린 거야. 그래서 바다가 좆같이 짠 거야. 근데 더 좆같은 건, (한숨) 사랑이란 게 그 바다라서, 내 피 같은 눈물 다 훔쳐간 그 바다에서만 소금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거야.

한 잔 해.



*



소금기둥 2 - 또 다른 술자리에서

그래. 우린 결국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는 소금기둥이지. 멀리서 바라만 보면 결코 빼앗길 일 없는 염분을 쥐고 살아가지. 그러다 파도가 발끝을 적시는 정도로 가까이 서면, 그때부터 우리 운명은 정해지는 셈이지.

어느새 허리까지 잠기고, 명치 언저리까지 바닷물이 찰박찰박 하면, 딱 그때쯤부턴 염분을 뺏기는지 숨이 턱턱 막혀. 그러다 파도가 정수리 끝까지 덮쳐오면 망망대해까지 휘말리게 되는 법이지.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온몸을 맡기고 그저 다 녹아버릴 때까지 둥실둥실 떠다니는 일인 거야.

그리고 지금 네가 감당해야 하는 이 실연의 고통은, 물론 네가 잃어버린 염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건 결국 네가 여전히 소금기둥이기 때문인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랑 때문에 괴로울 수 있다는 건, 아직 네가 소금기둥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는 거야. 네가 아직 너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염분을 간직하고 있는 거랄까.

그리고 다짐해야 해. 지금 당장은 네 마음속 호수 그 밑바닥에 하얗게 소금결정들이 발바닥에 막 밟히는데, 그래서 따끔거리고 아프지만, 그 따끔거리는 발바닥으로 다시 바닷가로 돌아가야 해.

그 바다 말고는 다시 소금을 얻을 곳은 없어. 몽땅 쏟아내 버린 눈물을 다시 되찾아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거지, 우리가 소금기둥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사랑이 진짜로 앗아가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그 '총량으로 정해진 눈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존재의 일부니까. 네 심장의 일부, 너의 그 심장 언저리 심포心包의 몇 조각, 네 손끝의 기억 몇 조각. 그 조각조각들의 빈자리를 다시 채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 바다밖에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어쩌면 힘들지 않은 사랑은 온몸을 던질 가치가 없는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해야 해.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그리고 이 자리에서만큼은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길 바래. 그래서 네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랑을 만나길 진심으로 바래. 하지만 만약 우리가 걸어 다니는 소금기둥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랑으로부터 빼앗기고 되찾는 과정 자체로부터 진짜 깊은 행복감, 그 어떤 자연스러운 편안함! 그걸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염분조각이 무너지지 않게 몸부림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바닷가를 떠나면 안 되는 거지. 특히 염전에서도 소금 한 숟갈 내놓지 않는 겨울철에는, 그래서 더 바다에 푹 빠져버릴 용기가 필요한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랑해야 한다고. 너만의 사랑을 찾으라고. 너의 그 짠내 나는 슬픔까지 확 덮쳐서, 네가 어쩔 줄 모르게 다 녹아내리고 싶을 정도로 깊은 바다로 빠져들라고.



*



소금기둥 3 - 아무도 모르는 눈물에 대해서, 복숭아에게

어느 여름. 너는 어디서 났는지 투명한 위생봉투에 복숭아 두 개를 담고선 사뿐 나타났다.

그날 마침 뙤약볕을 피해 앉아 있던 벤치가 복숭아나무 아래였기에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건넨 잘 닦인 복숭아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 네 손에 쥐어진 복숭아를 보았다.

너는 곧잘 시선을 빼앗는 사람이었다. 그때 네 손에 쥐어진 멍든 복숭아보다 네 투명한 손을 잊을 수가 없다.

기다랗고 하얀 손가락들이 막 탈피를 마친 나비처럼, 부드럽다 못해 여리고 위태로워 보였다. 바들거리다 똑 부러질 것 같았던 손가락.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손에 들린 희끄무레한 복숭아 색이 그대로 비춰졌지. 그러고 나서야 네 복숭아 한편으로 큼직하게 든 멍자국이 보였다.


멍이 들었어.

멍이 든 게 더 맛있어.


네 웃음은 코끝에 칼날이 닿듯 시큼한 맛이 났다.

그렇게 해가 체 다 뜨기도 전에 너는 나의 하루를 채워주는 존재였다. 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나와 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지.

그 달콤함에 혀가 절여져선 도저히 단맛인지 쓴맛인지 구분하지 못했던 어느 가을이었다.


멍이 들었어.


들이쉬는 공기가 기도에 모래알처럼 들이치듯 귓가에 들려온 네 음성이 눈가를 찔렀다.

그제야 네 복숭아 손끝 같은 마음에 멍자국이 보였다.

지금이야 닳아버린 바람이 불어와 항상 차갑기만 했던 네 손의 안위가 가끔 떠오르지만, 그때는 도저히 지금과 같은 계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시렸다.


복숭아는 한 번 멍들면 끝장이야.


그날 이후로 한 번씩 기회가 될 때마다 웃으며 말하곤 하는 대사가 되었지만.

휘청거리는 이별이 현관문을 들락거릴 무렵 언젠가, 집 앞 눈길에 자빠져서 정강이가 부러진 건 아닐까 웅크려 앉아 들여다보는데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네게 든 멍이 떠올라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네게 전화해선 괜한 사랑을 고백하고는 도저히 전화를 끊지 못했지. 그때 너도 잠시나마 잠에 들었다가 통화종료버튼을 눌렀을까.

벌써 오래전 일이 돼버린 터라 정강이의 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가끔 네게 들었던 멍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소금기둥이라는 걸 어느 꿈 덕분에 알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네게 멍이 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소금이란다.

누구의 땅에도 뿌려져선 안 되는 염분이란다.

소금은 잡초를 죽이는 데에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흙더미 위로 사정없이 뿌려진다.

그리고 그곳에 내려드는 어떤 씨앗도 싹을 틔우지 못하는데.

그건 흩뿌려진 악의로써만 가능한 고통과 허무의 영역이란다.


또 수년이 지나서야 숨 쉬는 소금기둥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았다.

그건 세상의 모든 염분을 사랑하는 길이었고, 그 까끌거리고 성가신 알갱이들을 즈려밟는 온전한 감각에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하는 모순을 받아들이는 길이었다.

그 사이. 파도처럼 쉴 새 없이 쏘다니는 사랑을 위해서 나의 생명, 그야말로 피 같은 눈물을 남몰래 할애할 줄 아는 것.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아올 사랑과 결국 잃어버릴 사랑에 만족하는 법을 알았다.

수박에 소금 뿌려서 안 드셔 보셨어요?

그런 엉뚱한 말을 하며, 이상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랑이 고개를 올려다봐야만 하는 높은 파도로 덮쳐오길 기다린다.

그 염분에 복숭아나무는 죽고, 복숭아는 떨어지고, 멍들다 못해 죽살이 날 텐데.

그래도 나의 모든 염분을 앗아갈 파도가 치고 있겠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나만을 위한 따뜻한 바다가 넘실대고 있겠지.

그리고 그 파도에 휩쓸리게 됐을 때, 나는 마침내 형체를 잃어버린 채로 영원히 바다의 일부가 돼버리길.








사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이 세상이 이성과 숫자로만 가득했다면,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없는 세상이었다면,

그래서 사랑도 없는 세상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오히려 「멋진 신세계」가 도래했을까요?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라는, 학창 시절 짧은 추억도 없었겠죠.



사랑을 발견하고, 찾고, 보내고, 배우고, 이별마저 사랑했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성장기록이 수백의 원고가 되어 남아있습니다.

그 미숙했던 시간 속에서 남긴 글들을 되돌아보고 퇴고를 거치며 새로운 기억과 익숙한 감정들을 마주쳤습니다. 한때의 실연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됐을 무렵의 기록에 대해서는, 하루아침에 방학숙제를 몰아서 해치우는 기분으로 기억을 헤집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인정하고 써내는 일은 결국, 어느 정도 숨기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상처 준 누군가와 상처받은 누군가의 지루한 이야기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내기란 쉽지 않더군요. 타인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라 생각했던 글은 아니지만, 브런치를 통해 미뤄뒀던 숙제를 어느 정도 마쳐가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다음 편에서 짝사랑애찬을 통해 남기고자 하는 주제에 방점을 찍고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담백하지 못했고, 중언부언했습니다.


내게 파도가 되어 다가왔던, 떠나 준 바다들에게 감사와 사과의 마음을 남깁니다.


감사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