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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Jul 06. 2024

바위

 집 뒷산에서 커다란 바위를 만났고 몸을 기대었다.
우연히 멋진 바위를 찾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바위는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을 터였다.

2013년.

공과대 학생으로서 필수교양 수업인 ‘창의적 글쓰기’를 듣다가 강의 내용에 과하게 감동을 받은 내가, 교수님께 다가가 국어국문과로 전과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를 하느라 방심했던 교수님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셨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단다… 꼭 국어국문에 와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나를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셨던 교수님.

교수님이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너의 길을 가고, 그것을 글로 옮겨라.”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지하철 기관사가 되었다.

마음속에 자리한 작가라는 꿈은 작아질지언정 잊히지 않았고, 더불어 교수님의 성함 또한 이상하리만치 잊히지 않았다.


2024년.

나는 내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고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

우연히 학교 앞을 지나던 어느 날 깨달았다. 성함 석자가 각인이라도 된 듯 절대 잊히지 않던 교수님이, 나는 보고 싶은 것이라고.

교수님과는 짧은 한 학기의 인연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저는 예전에 교수님께 창의적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메카트로닉스공학과 이도훈 학생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교수님 수업을 듣다가 감동받아서 국어국문으로 전과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교수님께서 말려 주셨습니다.”

“아…… 네 기억합니다.”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기뻤던지, 마음 어딘가를 막고 있던 둑이 터지기라도 한 듯 벅찬 감정이 밀려 나왔다.

신이 난 나는 드디어 작가가 되었으며 공모전에 수상해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교수님은 너무도 기뻐해 주셨고, 찾아뵙고 싶다는 말에 환영한다고 답해주셨다.


교수님을 뵙기 전, 참 설레면서도 떨렸다.

선물로 드릴 책 앞에는 작가 된 도리로 사인을 했다.

‘잊히지 않던 작가라는 꿈처럼,

너의 길을 가고 그것을 글로 옮기라 말씀하시던 교수님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24.07.04 이도훈’


교수님은 진심으로 반가워해 주셨고 기뻐해 주셨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상과 출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책 읽는 습관이나 내 고민을 묻기도 했고, 문학 자체와 교수님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알려주시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라본 교수님의 방에는 낭만이 있었다. 채광이 잘 되어 불을 켜지 않은 방 한쪽 편에는 책이 빼곡했고, 반대편에는 식물들이 있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에어컨을 틀지 않으셨다. 내가 닳도록 드나들던 공대 교수님들의 연구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오래된 내 기억 속의 교수님은 멋진 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오늘 좀 더 개인적으로 뵙게 된 교수님은 내 기억 속에서 보다 훨씬 멋진 분이었다.

기댈 수 있는 커다란 바위를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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