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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Sep 03. 2022

환절기

언제부터였을까,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PPT를 다 만들고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고, 글꼴과 배경색을 수도 없이 바꾸고 또 바꿨다.  단 몇 분의 발표를 위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내용을 고치는 내가 스스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 중요한 발표도 아니었고, 게다가 난 고3이다! PPT가 예술작품도 아닌데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해야 한다면 대충대충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을 고치고 또 고쳤다.


정렬과 배열의 습관도 생겼다. 투명 파일을 여러 개 사서 하나하나 유인물들을 분류했다. 모의고사 인쇄물은 따로, 자소서용 자료는 또 따로. 이렇게 자료들을 나누어 정리한 파일 10개 정도를 매일 갖고 다닌다. 한때는 문제집을 풀 때 책이 지저분해지는 게 싫어서 채점을 하지 않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또 채점하는 게 예뻐 보여서 네이비색 색연필로 옛날에 풀었던 문제에 다시 하나씩 채점을 하기도 했다. 태블릿 PC에 있는 PDF 파일은 파일명이 영어로 되어있길래 알아보기 쉽도록 한글로 바꿨다. 정말 쓸데없고 미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못 견딜 것 같았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삘릴리 개굴개굴 개구리도 있던데 정말 부럽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던데 김성공 씨는 어머니가 참 많은 것 같다. 실패하면 즉시 끝인 사람에게 다시 일어나라, 희망을 가져라, 넌 할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감언이설은 필요 없다. 잦은 실패가 필연적으로 성공을 부를 수 있다면 기꺼이 여러 번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도전하겠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경쟁의 장은 조별리그가 아니라 토너먼트다. 제한된 기회, 우승자는 한 명이기에 필사즉생의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감성적으로 접근하기에 경기장은 잔인하다. 한 번뿐인 기회에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냥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실패가 두렵다. 내가 지금껏 어설프게나마 쌓아왔던 희생과 두려움의 시간을 보상받지 못할까봐. 한 번뿐인 인생이 불가항력에 의해 어이없게 무너질까 두렵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완벽하게 대비하고 싶다.


그러나 완벽하길 원할수록 나의 부족한 점이 계속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네 삶에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나의 노력이 의미 있는 일일까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지긋한 어르신들이 추억하고 아쉬워하는 청춘, 그 소중한 시간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지금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그럴 때 나는 완벽주의 성향을 보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나마 삭막한 소확행을 느끼고 싶어서. 이것마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내가 이상향에 도달할 자격은 있는 걸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몸을 파쇄기에 내던졌다.


가을의 초입이 다가오자마자 슈퍼 태풍 소식이 들려온다. 조금만 창문 흔들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나도 잠을 잘 못 자는 나는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왔던 매미보다 강력한 태풍이라고 한다. 이전에 약한 태풍이 왔을 때 집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낀 적이 있어서 더 두렵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다른 친구들은 바람이 세게 분다고 해서 집이 흔들린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집에 달린 전등이 꽤 흔들렸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나의 삶은 마치 태풍이 오기 전 폭풍전야의 상황 같다. 유동적인 태풍 경로에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날씨.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 나약한 내가 섭리와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쪼잔하게 테이프나 찍찍 붙이는 것이다. 그게 최선의 발버둥이다. 1년 후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할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예민하게, 완벽하게 대비하고 싶어서 유난을 떠는 것이다. 그러다 태풍이 찾아왔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너도 별 수 없었구나, 라는 눈빛에 몰린 채 사후처리 당하고 싶지는 않아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차라리 중심기압이 엄청나게 낮은 태풍이 왔으면 좋겠다. 어정쩡하고 어딘가 모자란 태풍을 겨우겨우 견디고 우쭐하는 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강한 태풍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다음 내가 토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과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다. 혹 실패하여 다시 일어날 기회를 영영 박탈당한대도 후회가 남지 않는 싸움을 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과분한 욕심을 내는 이유다. 무섭고, 힘들고, 이미 불길한 예감이 찾아왔지만 기적처럼 역전될 드라마 같은 승부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꿈꾸면서. 기대가 크면 좌절도 크다는 것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나만의 가치관과 목표가 세상의 불공평함 앞에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고 싶지는 않아서 오늘도 스스로 다짐한다.


계절이 바뀔 때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가장 많다. 한 사람의 인생도 저마다의 계절이 있는 듯싶다. 아열대 기후 인생을 살아가는 어떤 작은 이는 종일 퍼붓는 장대비를 혐오하지만, 지글지글 끓는 빗소리의 낭만을 사랑하는 목마른 건조 기후 사람들은 그의 촉촉한 삶을 갈망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계절, 아니 너무도 다양한 계절을 가진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 계절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계절을 통째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만큼의 고통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환절기라고 굳게 믿고 싶다. 계절의 변곡점에서 벌어진 일교차 탓에 감기에 걸린 것뿐이라고 믿고 싶다. 내가 싫어하는 여름에 안녕을 고하기 위해 가을 태풍이 찾아온 것뿐이라고 믿고 싶다.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수확할 선선한 가을과 그 하늘을 그리면서 태풍 대비를 단단히 한다. 오늘 아침도 감기약을 먹으면서 코를 한 번 훌쩍거린 뒤 늦여름의 눅눅한 노을의 주홍빛을 만끽해본다. 바람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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