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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Dec 25. 2022

겨울, 성탄, 연말

나의 고향이자 현 거주지인 부산은 눈이 내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겨울에도 영하권에 자주 내려가지 않고, 내려간대도 두 자릿수를 거의 넘기지 않는다. 때문에 부산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추운 겨울보다는 한여름 해수욕장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한다. 여름에 습도는 높으나 비교적 기온이 낮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날씨가 온화해 참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눈이 워낙 안 내리는 탓에, 부산에 조금이라도 눈이 날리는 날에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10분 정도 눈이 날린 적이 있는데, 너무 적게 내려 적설량도 기록되지 않은 눈을 보려고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당시에 나는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머무르고 있어서 눈이 내리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실시간으로 무시무시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바깥세상에 눈이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내리자마자 비로 바뀌는 하찮은 눈에도 아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부산에서는 볼 수 있다.


그래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부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 해에 눈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다. 심지어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고, 조금 쌓인다고 해도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따로 논다. 나뭇가지에 살짝 묻은 눈을 옹졸하게 싹싹 긁어 뭉치다 실망하는 허탈감은 아는 사람만 안다. 나도 눈사람을 만들고 싶고 눈오리도 만들고 싶다. 제대로 된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눈이 내린 것이 내 기억이 맞다면 9년 전이다. 어쨌든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 정말 오래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마다 이번 겨울은 눈 구경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눈사람을 만드는 상상을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며 사는지 궁금해진다. 저마다 하나쯤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직 내 것이 아니나 내 것으로 만들고픈 것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고 있지 않은가.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가지고 싶다. 또, 몸이 많이 약해져서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산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며 사는가?


겨울이라는 계절은 왠지 모를 낭만이 있다. 겨울밤의 향과 연말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만드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운 느낌이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딘지 모르게 헛헛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겨울의 찬바람도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혹 올해가 그리 행복하지 못했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에 숱한 어려움을 당했더라도, 실패와 좌절의 씁쓸한 순간을 맛보았더라도, 한 해의 끝을 살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연말만큼은 지난날은 모두 잊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12월이 1월로 바뀌는 것뿐이지만, 단순한 숫자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새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새해가 된다고 갑자기 새 사람이 되거나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흐르지는 않는다. 추운 겨울은 신년에도 쭉 이어진다. 새해에 세운 야심 가득한 플랜을 연말까지 성취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말은 분명 새 출발을 기대하게 되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소 우울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행복한 성탄 분위기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한 마디로 솔크다. 23일 밤에 누워 26일 아침에 일어나겠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 솔로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가혹하다. 난 여자친구는 없지만 소중한 우리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저녁에 혼자 브런치에 글도 쓰고 너무 뜻깊고 행복하다!(절대 우는 거 아님)


이처럼 같은 연말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누군가에게는 춥다. 같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형형색색 꼬마전구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낭만과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어색함과 쓸쓸함이 된다. 솔크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그리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12월 25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크리스마스지만, 과연 그 크리스마스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적장애를 가진 분이 무인 슈퍼에서 컵라면 두 개와 과자 하나를 훔쳤다. 그렇게 여러 번을 훔쳤는데 그 금액이 약 8만원이라고 한다. 역시 지적장애를 가진 남편과 함께 쪽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통장에 입금된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라 끼니를 겨우겨우 때우며 산 것이다. 경찰이 생필품을 전달했고, 가게 주인분도 처벌을 원치 않으신다고 해서 다행이지만 이런 생계형 범죄 소식이 연말에도 들려지는 것이 마음이 많이 아프다. 편안한 집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겨울을 지내는 내가 어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아주 조금은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기에 마음이 안 좋았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언젠가 여력이 될 때 온정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기 위해 꿈을 장작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장작과 새로운 꿈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삶의 목표이며 이것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임을 자신한다.


산타가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산타가 꼭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요즘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아무런 대가 없이 선물을 베푸는 산타가 아닐까. 산타가 세상 사람들의 소소한 소망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산타가 인간 세상에 존재한다면 지금과 같은 이벤트성 선물 전달자의 느낌이 아닌 신성한 성인과 같은 느낌이 되지 않을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선물을 구할 때, 현생에 지친 사람들은 빚을 갚게 해 주세요, 취업이 순적하게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픈 몸이 낫게 해 주세요, 평안과 행복과 휴식을 주세요, 따위의 소원을 말할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쟁취하고픈 하루가 될 수 있음을 떠올릴 때면, 비록 순탄치는 못하지만 삶을 뜻대로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는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 고민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 누군가는 선택지가 없어 도둑질을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크리스마스. 매년 연말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인사말이 가지는 의미를 실감한다. 올해만큼은 이 소중한 인사말이 죽도록 삶에 충성하는 세상 모든 성실한 사람들에게 들려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행복을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이 참 감사해지는 요즘이다. 매년 새해마다 올해는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고통의 순간은 잊을만하면 찾아오고 연말은 또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그 허무한 바람이, 쓰라린 실패와 고통이, 한 사람을 누구보다 찬란하고 영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함박눈을 만끽할 수 없는 삶이지만 오히려 그 결핍과 갈증이 진눈깨비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적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도록 만든다. 별은 스스로 태우며 빛나듯이, 꿈을 태우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더 큰 꿈을 향한 별빛이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미니전구들의 숭고한 열정과 그들의 새해를 응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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