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를 찾다#7

나는 나다 I AM THAT I AM

by 사랑의 등대

이 이야기는 내가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사랑한 과정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간 과정이다.


나의 이전 글들이 '빛과 어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불편해도 자신을 마주 보고 솔직해져라'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들이 큰 줄기이기에,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포용한 과정을 보여주고 솔직해져야 독자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한 발 다가

서고, 용기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는 나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올라오지만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진정한 당신, 남 모르는 약점도 갖고 있고 비판을 받으면

무너지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인간적인 당신,

그 당신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니타 무르자니]







https://brunch.co.kr/@lighthouse-love/22



#7


엄마집 전세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일부 반환해줘야 하는

시간이 그래도 어느 정도 있었을 때,

여유롭게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 회사 면접 볼 때가 생각난다.

그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업종의 회사였다.


면접 장소를 찾아가니 건물 안에 컨테이너 같은

곳이었다. 그 당시 감사일기를 쓰고 사랑에너지가

충만하여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던 때라서,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면접을 잘 마치고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첫 출근을 했을 때는 건물의 사무실이었다.

그 회사가 이사하느라고 잠시 컨테이너 같은 곳에

잠시 머물러 있었던 거 같다.


첫 출근 하고 보니, 인수인계해 줄 사람도 없었고

인수인계서도 없었다. 본사에 기본적인 것을 알려

달라 요청을 했다고 하지만, 담당자가 코로나에 걸려

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거 같다.


관리직에 기본적인 공통업무는 있었지만, 회사마다

체계가 다르고 처리방식이 다르기에 인수인계서가

없으면 이걸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사장님은 회사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신다고 자꾸

나를 어디로 데려가신다.


그래도 전임자가 잠깐 와서 1시간 정도 인수인계를

해주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거 같다. "살려주세요~" 그래도 가차 없다.


상황이 그러면 한동안 야근을 한다던지,

주말에 나와서 혼자서 조용히 일을 파악했으면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당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 같다.


그날도 피부관리실에 예약되어 있어 정시퇴근을 했다.

근데 이상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퇴근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전철을 탔는데

그곳에 누가 오물을 잔뜩 뿌려놨었나 보다..

다행히 나는 그것을 만지거나 밟지는 않았다.

이것도 영혼의 보호이자, 가지 말라는 경고였던 거 같다.



월례회의를 하는데 그 달의 결산보고서 나오지

않았다. 적응의 시간을 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앞을 지나가면서 직원들이 볼멘소리를 한다.


그 후,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전의 보고서를

확인하고 파악하면서 작성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래

시간이 경과한다. 내부 마감 기한이 있었기에 자정까지

일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 끝내지 못했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여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두려움의 생각들에 동의를 한 거 같다.

새로운 업종이라 파악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날 이해해 주거나 믿어주지 않는 거 같다 생각하며

나와 더 맞는 완벽한 곳이 있겠지 싶어 쉽게 포기한다.



그 후,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스타트업 회사를 거치면서

감사일기로 충만했던 나의 사랑에너지는 점차 사그라진다.




2023년 새해가 밝고 난 관련공부가 더 필요하다 생각해서

오래전에 편입신청만 해놓고 완료하지 못했던 방송대 공부를

시작한다.


첫 학기만 넘기면 졸업을 할 수 있단다. 과연 그랬다.

난 여기서 공부하는 법을 배운 거 같다.

'자기주도학습'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공부하고

완료를 하면서 내게 부족했던 끈기에 대해서도 배웠다.

첫 학기 공부할 때는 노하우도 없고 전산시스템으로 바뀌어

문제유형도 제공되지 않아 어떤 난이도로 출제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또 시험출제범위가 책 한 권 전 범위라 그냥

처음에는 정공법을 택했다.


강의를 듣고 워크북 문제를 풀며 또 한 번 더 훑고

강의자료를 보며 과목마다 핵심 요약본을 또 만들었던 거

같다. 문제는 한 과목 그렇게 몰입하고 나면 다른 과목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안갯속이고 수많은 공식들이 뒤섞이기

도 했다. 그래도 그냥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처음엔 어렵게 다가왔던 이론들이 계속 들여다보고

생각하니 더 이해가 되기도 했다.


1학기를 그렇게 넘기고 시험을 보고 나니 노하우가 생기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부할지도 감이 잡혔던 거 같다.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교수님이 계시다.

처음에는 과목을 잘못 신청했나? 고리타분한 도덕교수님 같다

생각했는데.. 잊지 못할 진리를 알려주셨다.

'비전' '목표' '얼라인먼트(Alignment, 정렬)'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결정, 행동을 해야 길을 잃지 않고

이를 정렬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 후로 '정렬'이란 단어를 참 많이 듣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교수님이 생각나서 미소 짓게 된다.



내 안에 몸과 마음, 영혼

내 안에 감정과 생각, 말, 행동 들이 서로 어긋나거나

서로 싸우거나 시끄럽지 않고 하나로 정렬되면

지금 현재 이 순간 고요하고 평온한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과제를 하면서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조금씩 느꼈던 거 같다.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과제를 제출했는데 100점을 받았

을 때, 어느 교수님에게 논리적으로 글을 잘 썼다는 코멘트를

받았을 때, 입이 귀에 걸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근데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반대를 가르쳐 내면에서 거부감도 올라왔던 거 같다.

충분하지 않고 부족한 자원, 경쟁, 서로를 믿지 못해

기업이 발생했고 통제로 위험을 최소화한다.

비용 대비 최적의 효과를 내야 하고 성과, 계획,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인간도 생산성 요소로

바라보고 마케팅에서는 인간의 심리에까지 침투

하여 매출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찾는다.


마지막 2학기는 공부하기 싫어한다는 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시작한 걸 끝내고 싶어서

날 달래가면서 끝까지 한 거 같다.




실업기간이 길어져 마음이 조급해진다.

돈이 필요한데 취업을 해야 돈을 빌릴 수 있다.

아빠한테 말해 볼 생각은 안 한다.

분명 날 또 한심하게 볼 거 같으니까.


여러 차례 면접을 봤지만 이상하게 합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곳은 나의 단기 속성 스파르타 체험 장소였다.

책장에 '고난은 축복이다'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띈다.

사장실에서 누가 혼나는지 큰 소리가 오가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면접을 보고 집에 가던 중, 합격 전화가 오는데

직책이나 조건, 페이가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현실에 쫓겨 다니다 보면 점차 나아지겠지 싶어 받아들인다.

나를 낮추는 선택을 하니, 그에 걸맞은 상황이 내게 펼쳐졌다.



그 회사에서는 인수인계 기간 중에도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전임자가 뒷자리 상사와 초등학생같이 유치하게 싸우고 씩씩댔다.

그러면서 나보고 그만두지 말라며 이런 말을 한다.

"저 좀 살려주세요."

내가 이전 회사에서 했던 말인데, 내가 듣게 되었다.


그래도 그 회사에서 일적인 면에서는 배운 것도 많다.

다만, 본사의 계열사였는데 본사에서 내부통제를 하는지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반복되는 업무들이 많았다.

계열사였고 사장도 월급사장이어서 그런지,

팀원들이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

회계부서가 계열사 이동으로 변경되기도 해서

그런지 다른 부서들이 같은 팀원으로 보지 않고

배척하는 느낌이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 상황

속에 있었던 게 아니어서 그렇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장이 직원들을 험담하고,

직원들은 사장을 험담한다.

직원끼리도 서로를 험담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험담했냐는 듯이 가면을 쓰고

웃는 얼굴을 하고 일상의 대화나 업무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 입사할 때, 식단 관리를 하고 있어 점심 싸와도

되냐고 묻고 동의를 얻었다.

근데 사장님이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식사를 하잔다.

'일주일에 한 번은 괜찮겠지.' 하고 허용했는데

아시다시피 탄수화물, 밀가루는 중독성이 강하다.

다시 그 중독성에 빠져들었고 피부가 다시 한번

난리가 나서 턱여드름이 발생했다.


입사하기 전부터 학과 공부를 하느라고 운동에

소홀해지면서 살이 좀 찌긴 했지만..

식단도 고삐가 풀리면서 살이 많이 찌게 됐다.


...

나를 사랑하고 좋은 습관들이기를 하고 사랑에너지에

머물면서 나를 변화시키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회사를 다니고 반 년정도를 이전의 습관들을 하나, 둘

허용하면서 식단이 무너지고, 스트레스 해소법이 이전

으로 돌아갔다. 직장의 분위기나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서

나도 같이 그들의 에너지에 동화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사장님에게 건강을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식단부터 다시 바꿨다. 근데 내 얘기를 그냥 하는 말로

듣는 건지, 존중할 생각이 없는 건지, 그 후로도 수십 번을

내게 점심 식사를 권하셨던 거 같다.

내 말이 진심이 아니고, 변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던

걸까? 내 말을 귀 기울여 안 들으시는 건가? 생각했다.


그건 사장님 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대화할 때도 그리

느껴졌던 거 같다.


직원들과 같이 식사자리에서 한 직원이 고민하는 듯한

말을 하길래, 내가 도움이 됐음 해서 용기를 주는 말을

했더니 그들이 깔깔대며 농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그럼 대체 언제 진심을 말하는 거예요?"

"저분은 화날 때만 진심을 말해."


나는 도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상적인 질문들과 피상적인 답변들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 진심을 쏟는다는 건, 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운 일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미 있는 정기회식은 참여했다.

점심 식사를 거절하는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요됐다.

그럼에도 재차 거절을 했다.

건강한 경계설정을 배우게 됐다.

더 이상 남을 편하게 하자고 날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더 이상 남을 기쁘게 하자고 날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건강한 경계설정을 한 덕분에 턱여드름이 사라졌고

살도 좀 빠지게 되었다.



그곳에서 생전 보도 못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건물 안의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다가

대로변 지하 사무실에서 근무하니, 청소하시는 분은

따로 있었지만 시설보수를 신경 써야 했다.

화장실이 고장 나거나 사무실 전등 교체 또한

사람을 직접 불러야 했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출입구에 신문지 등을 깔아 둬야 했다.


한 번은 바깥 현관문이 낡아서인지 폭풍우에 나사가

풀려 문이 달랑거려 위험해서 119를 불러 해체작업

을 하기도 했다. 장마 때에는 비가 새기도 했고, 공사

를 잘못했는지 물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상장사의 계열사라 하는데 유명무실해 보였다.

계열사의 성과에 의해서 상여금을 준다지만,

너무 칼 같았고 연봉이 동결되기 일쑤였다.



난 그 회사를 다니면서 전 회사 사장님들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리게 되었다. 내가 좋은

회사들만 다녔었구나 하고 깨달았던 거 같다.



그 회사를 다니면서 아빠의 고단함에 대해서도

새삼 느끼게 되어 감사를 드리게 됐다.

발등에 떨어진 현실의 문제에 쫓겨 직장을 다닌

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고 감옥과도 같았다.

나는 몇 년을 버티는데도 벗어나고 싶어서 몸부림

치는데 아빠는 몇 십 년을 그렇게 묵묵히 버티셨구나

싶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됐을 때, 회사는 약속한 정규직 전환을

지키지 않았다. 신이 거기는 네가 머무를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 같았지만 한편은 서운했고 의욕이 떨어졌다.


관리부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다.

근무시간에 상사가 가족 대소사부터, 친척, 회사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별로 듣고 싶지 않은 투머치

정보였다. 난 또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신경 써주

려고 했다. 나중엔 내가 지치고 기분이 다운되기도 해서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활용했다.

난 일을 할 때, 조용히 몰입하면서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럼 시간도 더 빨리 흐른다.


난 독립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

구나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의 감정이 올라오는 걸 봤을 때, 통제받고

명령받는 걸 싫어했다.


동료직원이 일을 실수할 때가 많았는데 내가 그것을

이해 못 하는 모습도 보았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다 챙기지 못하고 실수할 수도 있는데..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기다려주지 못하고

서두르고 통제하려는 내 모습도 보았다.

나는 통제를 싫어하면서 나도 통제를 하려고 하고

있구나 깨달았을 때 조금 놀라기도 했던 거 같다.

나도 실수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의 약점을 다 끌어안아주지 못해서

타인의 약점에 분개하고 있었던 거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서두르고, 인내심이 부족하고,

나에게도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곳에서 열등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체험했다.

본사에는 다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회계사, 미국회계사,

몇 개 국어를 하니 했다. 다들 서로의 스펙을 자랑하며

칭찬했다. 위축되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던 거 같다.



돈의 소중함과 소비에 대해서도 배운 거 같다.

코로나시기에 아빠가 주식을 하시고 주식 관련 책을 여러 회

다독하시면서 투자에 감을 잡으셨는지 수익을 얻으셨는데..


그 이후로 국내주식시장 상황이 안 좋았다.

아빠에게 전세금 일부를 맡겼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며 확인하진 않았다.

그 시기에 전세자금을 못 돌려줄까 봐 걱정이 됐던 거 같다.

잠이 들고 새벽에 잠깐 깨어나서도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나에게..

"괜찮아.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잘 될 거야."

라고 말해주고 토닥여주었다.

그 후로는 그런 증상이 없어졌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위로와 따뜻한 말도

아주 중요한 거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걱정을 내려놨다.

아빠를 믿었고, 상황이 잘 풀리겠거니 생각했다.

근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주어야 했을 때,

나는 생각만큼 돈을 모으지 못해서

그냥 아빠에게 솔직히 말했다.

"아빠 제가 돈을 좀 까먹어서 그런데

집이 팔리고 난 후, 아빠 수익금 드려도 될까요?"

전세보증금 제외 주식투자 수익금은 아빠에게 드리기로

약속했었다. 국내주식시장이 워낙 안 좋은 때라 나는

손실이 나지 않았기만을 바랬다.


별다른 해결책이 안 보일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자신을 내려놓고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아빠는 주식고수였던 것이다.

안 좋은 국내 주식시장에도 2배 이상의 이익을 거두셨다.

아빠는 내게 뭐라 하지 않으시고 보증금을 돌려주라며

흔쾌히 넉넉하게 입금해 주셨다.

그때의 기쁨이란,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그 후에도 여윳돈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셨지만,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자금상황을 공유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았다. 내가 자꾸 아빠를 의존하게 된다는 건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거여서 거절했다.


아빠에게 드린 용돈이나 조카에게 준 돈을 그 주식계좌에

넣으시고 또다시 돈을 불려주시는 걸 보고..

처음에는 '왜 내 의견 존중해주지 않으시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빠가 나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

이란 걸 안다. 그렇게 해주는 게 아빠에게 보람이었던 거 같다.



...

그렇게 보증금을 반환해주고 나서 예전에는 나이 들어서

엄마집에 내려가서 살아야지 했었는데 마음이 바뀐 것도 있고,

집값 떨어지면 보증금을 반환해줘야 하고,

지방은 전월세 모두 도배장판을 해줘야 한다 하고,

첫 세입자에게 하도 데어서 집을 팔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빠랑 부동산 중개인은 지방 부동산시장이 안 좋다면서

재차 전월세를 권했는데 나의 마음은 더 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신에게 맡겼다.

부동산 시장이 안 좋다고 지레 걱정해서 집 매도를 안 걸고

바로 전세를 주면 후회할 거 같았다.

후회하지 않게 몇 달이라도 놔둬보자 생각했다.


그랬는데 2달 만에 집이 팔렸다.

부동산 중개인은 나보고 복이 많단다.


그렇게 개인적인 일들이 해결되고 회사도 그만두어야겠다

생각을 해서 인수인계서를 정성 들여 작성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서 들었던 말이 정규직 전환 서류를

올렸는데 거절됐었다는 말이었다.

나에게 말을 안 해주려 했단다.


맘 편하게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랬던 일들이었는데

엄마집 매도 계약을 하고 올라오면서..

사직서를 내고서.. 내 기분이 다운됨을 느꼈다.


이전의 삶을 하나, 둘 씩 작별하니

이전의 자아가 슬픔을 느끼나 보다.

'나의 이야기'를 작성하면서도

기분이 많이 다운됐었는데

이전의 나를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챕터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2025년 1월부터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첫사랑의 꿈을 꿔서였다. 꿈에서 안 보였던지라

신기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 해 15차례 이상 첫사랑 꿈을 꿔서 신기했다.

'나만 꿈을 꾸나? 그도 내 꿈을 꾸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첫사랑이어서 내 맘속에 각인이 된 것처럼

종종 생각이 나는 건가 생각했다.

아직도 그의 핸드폰번호를 기억한다.

번호체계로 바뀌면서 이전 번호가 되어버렸지만..


삶 속에서 그를 종종 생각했다.

건강검진을 하고 갑상선 추가 검사를 받으면서

아픈 조영제 주사를 맞고 수액 주머니를 끌고 다니며

CT검사를 하면서 그가 생각났다.

그가 허리를 다쳐 아플 때, 이런 검사들도 했을 텐데..

내가 그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지 못했구나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트윈플레임' 영상을 다시 찾아

기도 했는데.. 내가 집착하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내 안에 없는 것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런 '트윈플레임' 개념이나 관련 영상들을 내가

쫓고 원하고 바라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

놓아버렸다.


그 옛날 헤어지면서 그의 편지, 일기장, 선물, 이메일 등을

다 버리고 삭제했는데도 어느 상자 속에 남아있던 하나의 편지

마저 버리게 되었다. 대학 때 썼던 내 일기장들도 버렸다.


이전의 나와 작별하는지 대청소를 하면서 과거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내다 버렸다.



내 안에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외부의 것을 찾으면

계속 원하고 갈구하는 그 상태로 존재한다.


무엇이든 의존하고 의지하고 중독되지 말라.

배움에 있던 학생들도 배움이 채워지면

자신의 것을 창조하고 스승이 되어야 한다.


계속 어느 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흐르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확장해야 한다.


나를 그대로 변화 없이 존재하게 하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긴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진정한 나를 찾게 되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려는 저항이 올라와도

계속해서 되고자 하는 새로운 나를 다시 선택했고,

선택하고 있다.


자신의 어둠, 그림자, 약점까지 그 모두를 사랑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 누구와 함께 할 때,

나의 감정과 생각이 올라올 때

그에 휩쓸리지 말고

한 발자국 뒤에서 고요히 관찰해 보라.

바로 걸려들어 반응하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들이 올라오면

깊은숨을 쉬고 바라보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감정이 시작된 발단을 찾을 수 있다.

찾으면 그것에 관해 자신과 대화하고

치유하고 놓아줄 수 있다.

또 상대방이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내게 투사하는 걸 수도 있다.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나침반 삼아서

그에 맞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라.

되고자 하는 새로운 나로 정렬시키고

치우쳤어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라.



모든 것에 균형(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머릿속은 부정적이고 두려운 생각들로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을 하며 늘 시끄럽고

그 부정적인 생각들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감정까지 널을 뛰고 심장이 뛰고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기분 좋아지는 도파민을

필요로 한다.


과식을 하고 게임을 하고 과음을 하고

숏츠, 릴스 등 자극적인 짧은 영상들을

보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시청한다.


자극적인 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자극적인 걸 찾는데 이전만큼의

만족도가 없고 공허해진다.


현재사회는 두려움을 이용해 상품을 팔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의존시키고 구속시킨다.


그리고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팔아

계속해서 구매하게 하고 더 많이 섭취하게 한다.


결국 건강을 해치고 원인이 아닌, 몸의 결과를

치료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시스템 등..

그로 인한 공황, 스트레스, 우울에 대해서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이를 간과한다.

간과하는 건지, 알면서도 묵인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도심에 수많은 병원들이 보인다.

이 많은 병원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픈 사람

들이 많다는 거겠지..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

나는 것이고, 마음의 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아서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

지 못해서인데.. 마음의 병을 단지 우울증이라

고 진단하고 약을 준다. 약에 의존시키고

외부의 것에 의존시킨다.


우리 자신을 온전한 존재로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취약점까지 끌어안지 못하게 한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못하게 한다.


충분하지 않고 부족하며 아름답지 않고

조건 없이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로

느끼게 한다.


사회에서 아름답고 멋있는 성공적인 기준을

제시하여 서로 끊임없이 비교, 판단, 경쟁을

하게 하고 성과를 쫓아 늘 서로를 평가하게

하여 휴식을 취하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부족하고 충분하지 않은 존재여야만

기업이 상품을 많이 팔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온전한 존재이고 사랑이 넘쳐 결핍이 없으면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물건의 소유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사람의 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쫓아야 기업

이미지가 상승하고 이윤이 극대화된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교육시스템을

전면 개선할 만도 한데, 현재 사회시스템 속에서

적합한 인재를 키워야 하기에 바꿀 생각이 없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이리저리 치우쳤을 때 겪게 되는 현상들이다.




그러니 나를 관찰하고 삶을 관찰하고

치우치거나 휩쓸리거나 낚이지 말고

진정한 자신으로서 고요한 평화의

중심을 잡아라.


몸의 반응, 감정

마음의 생각

영혼의 직감, 영감 등을

유심히 관찰해 보라.


내가 왜 이 상황에서 두려움이나 고통이 올라오고

내가 왜 이 상황에서 불안, 걱정, 짜증이 올라오고

내가 왜 이 상황에서 분노, 우울이 몰려오는지,

내가 왜 이 상황에서 기분이 다운되고 업되는지,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어떠한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는지,

내가 그걸 회피하고 있는지,

내가 그걸 극복해서 그 상황이 더 다가오지 않는지,


어떤 사람이 선을 넘는다면 내가 그걸 허용하지 않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지치고 기운이 빠지면 내가 건강한 경계설정

을 하지 않았는지,


내가 나에게 솔직하고 진정한 나 자신과 일치하고 있는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다시 뒤로 돌아가고 있는지,



내 안의 목소리.. 영혼과 마음의 생각이 혼동되어

헷갈릴 때가 있었는데 이는 '사랑'과 '두려움'의 목소리다.


영혼의 목소리는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강요하거나 압박하지 않는다.

'사랑' 그대로의 모습이다.

통제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기분 좋고 가볍고

확장되고 편안한 느낌이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우주의 흐름에 내맡긴다.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택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조용하게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좋은 일들이 생긴다.

예를 들면, 진짜 인연을 만나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 결혼식장에 들어서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애쓰고 노력하는 게 아니다.

그냥 편하게 내 것을 갖는 것이다.



마음의 목소리는 '두려움' 그대로의 모습이다.

비교, 판단, 자책, 강요, 통제, 압박을 하고

늘 계획을 세우고 우릴 평가하고

판결자로서 판결을 내린다.

겁을 주고 두려움과 공포로 우릴 조종하려고 한다.

무겁고 축소되고 불편하고 갑갑하고 숨이 막힌다.

이와 같은 선택을 하면 장애물이 많이 발생하고

삶 속에서 스파르타 체험으로 교훈을 얻게 된다.

교훈을 보지 못하고 또 '두려움'에 의한 선택을

하게 되면 그 상황은 비슷하게 반복된다.

교훈을 깨달을 때까지..

삶은 우리가 선택하고 원하는 것을 준다.



'사랑'과 '두려움'의 느낌을 구분할 수 있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과 인물들에도

이게 '사랑'에 기반한 관계/사건들인지,

'두려움'에 기반한 관계/사건들인지,

분별력을 키울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더 잘 느낄 수 있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꿈에서 힌트를 얻은 건데,

삶이 '트루먼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며 중간중간 자체 광고를 하는

유투버를 보면서도 '트루먼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르고 하는 트루먼쇼이든,

알고 하는 트루먼쇼이든,



삶을 게임이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즐기라.



우린 너무 사회가 주입한 그대로를 믿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 겁을 먹고 삶을 살아가서

삶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싶지 않은가?

어깨에 무거운 짐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훨훨 날고 싶지 않은가?

자유롭고 싶지 않은가?




우린 두려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길들여졌지만,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주파수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두려움으로 절여진 우리의 무의식까지 치유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단번에 스위치를 전환시킬 수도 있다.



내 삶의 과정들이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필요한 여정이었음을..

모든 일에 이유가 있고 타이밍이 있고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것을..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불편함과 두려움과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삶을 온전히 믿고 내맡기는 것이다. 재촉하고 서두르고 불안해하며

확인하고 움켜잡고 들춰보고 파헤치며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우주는, 삶은, 사랑은, 영혼은, 신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떤 결과나 증거가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진정한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겠냐고..

날 온전히 믿을 수 있겠냐고..



우주는 사랑의 에너지로 만들어졌다.

사랑의 에너지로 응답하는 것이다.

우주의 주파수에 맞추는 것이다.

사랑의 에너지로 응답할 때만이 기적이 일어난다.



어떤 욕심이나 욕망, 두려움 없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표현할 때,

삶은 내게 축복을 내려준다.



그게 원래 우리의 모습이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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