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선택하라
우리는 늘 행복을 외부에서 찾곤 한다.
외부에 드러나는 성과나 성취, 외부의 인정, 타인의 박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이 달성되어야, 날 완성해 줄 사랑이 다가와야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뒤늦게 <흑백요리사 2>를 재밌게 보았다.
근데 좀 놀라운 점이 있었다. 최종 결승전에 '나를 위한 요리'로 심사를 하는데,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도 그렇 고, 1, 2위를 경연하던 최강록, 요리괴물(이하성) 셰프 또한 자신을 위해 정성스레 요리하는 것을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남을 위해서는 미슐랭급 요리를 하는데, 혼자 식사를 해야 할 때는 대충 때운다고 한다. 셰프라면 자신이 매끼 해 먹진 않아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을 때는 멋진 요리를 만들어 먹을 거라 생각했어서 좀 의아했다.
왜 남에겐 성대하게 대접하고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최강록 셰프는 현란한 조림 기술을 뒤로하고 '나를 위한 요리'로 소박한 요리를 내놓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그동안 요리 잘하는 척을 하고 살아왔다"라고 한다. 왜 내놓으라 하는 요리 경연대회 <마스터쉐프 2>에서 우승하고 <흑백요리사 2>에서도 결승전까지 오른 상황인데도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할까? 영혼과 대화를 하는 듯한 그의 진솔한 단답형 말투에 매력을 느껴 그에 대해 검색해 보니, 하던 주점식당을 폐업하고 구상 및 새로운 활동 중이라고 한다. 어느 기사를 보니 그 이유가 기대를 가지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 음식 맛에 실망해서 울었기 때문이라고.. 모든 사람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으니 더 수련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최강록 셰프의 요리는 간장 소스가 베이스로 된 식재료의 맛을 살리는 건강한 요리로 보인다. 한국인들의 입맛은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어 있으니 심심한 요리는 호불호가 있기도 하겠지. 술을 함께 하는 주점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얼큰한 걸 찾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술을 즐기는 한국 사람들은 단맛을 극혐 한다. 그리고 우셨다는 그 손님은 감정적이었던 걸 보니 취하셨던 거 같은데 말이다. 뭔가 그것 때문만이 아니고 여러 일들이 중첩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각자의 입맛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자신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에 비난에 무너져 자신이 요리를 잘하는 척하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자책하는 방향으로 흐른 거 같다.
국내 요리 경연대회에 2번이나 우승하고도 자신이 아직 부족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이미 차고 넘친다. 이미 충분한데 자신을 계속해서 모두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믿고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바대로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타인의 의견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중심을 잡자. 자신의 섬세하고 정성 어리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해 주고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음식 맛이 없다고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아갈 것이다. 혼잡함 후에 정렬이 찾아올 것이다.
손님의 음식 맛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를 자신에게 투영시키지 않는다. 너무 완벽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 몸에 긴장을 풀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이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으면서 자신도 기분 좋게 창조 작업을 한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임할 수 있는 정도의 음식 메뉴를 선정하고 불필요한 곁가지를 걸러내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 그리고 기분 좋게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운영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일을 하기가 버거우면 타인의 협력을 통해 업무를 분담하거나 위임한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요일을 축소해 일을 집중적으로 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만의 특별한 요리기술을 표준화시키고 메뉴 화해서 브랜드만 대여하거나 후배 요리사들을 양성해 기술 위임으로 자신 없이도 식당이 운영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다.
책 세 권을 내어 작가로도 활동하고 방송활동에 재미를 붙이는 것을 보면 단지 요리사가 아니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확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리를 잘하는 것의 완벽한 기준이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누구에겐 미슐랭스타 음식이, 누구에겐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 누구에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함께 먹는 음식이, 누구에겐 자신이 만든 음식이, 누구에겐 캠핑장에서 먹는 라면이, 누구에겐 힘든 한 주를 끝마치고 자신에게 선사하는 어떤 음식이, 누군에겐 제철 채소나 신선한 과일이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있다. 단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기분, 분위기, 개인의 전후 상황이나 음식에 대한 추억, 선호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리 작용할 수 있다.
요리괴물(이하성) 셰프는 '나를 위한 요리'로 자신의 기술들이 응집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였다.
'나를 위한 요리'를 근사하게 내놓고도 긴장되는지 심사위원과 같이 먹지를 못한다. 자신을 위한 요리인데 한 숟갈도 먹지 못하는 모습이 주제와는 대조적이었다. 요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이 아직 원하는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고 한참 더 달려 나가야 한다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이었다. 그때 결승전을 참관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다른 참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아주고 싶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요리괴물(이하성) 셰프를 안쓰러워하는 아버지의 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위한 요리'라는 주제는 자신을 사랑하느냐,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이에 한 참가자는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이 고민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줬고, 다른 참가자는 주제보다는 우승을 위한 그동안 수련한 요리기술의 총합체를 자랑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훈연하였지만 향이 금세 사라지고 기술만 남아 있었다.
자신에게 쉼표를 허용하지 않고 성과와 목표를 위해서만 달려가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인다.
<흑백요리사 2>를 보고 아쉬운 느낌에 <더 코리안 셰프>라는 넷플 다큐를 보게 되었다.
미슐랭 셰프들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레스토랑 파인다이닝에서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는 게 꿈이었고, 노력 끝에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며 명예와 인정을 받는다. 그 뒷면에는 웃음기가 가신 숨 막히는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셰프는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며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다. 긴장의 연속이며 주말의 하루도 농장을 오가며 요리 연구를 한다. 자신의 꿈을 이뤄가고 성장해 가며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미슐랭 스타 등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더 높은 등급을 오르기 위해서 자신에게 쉼을 허용하지 않고 숨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 다큐에서 꿈과 성공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긴 했겠지만, 다큐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꿈을 이루고 성공을 했으니, 당연 행복하겠거니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패스하는 걸까?
우리 실생활에서도 보이는 모습이 있다.
어느 회사에 A 씨가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다. 전임자가 10년 이상 재직했어서 업무량이 상당한데, 같은 회사 다른 직원이 인수인계받고 업무를 하다 너무 과중하여 경력직을 다시 뽑은 사례다. 본사와 계열회사 간에 연결된 업무가 많았는데, A 씨의 자료를 받아보면 실수가 많고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A 씨는 관련 경력도 있고 외국회계사 자격증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수인계받은 직원에게 업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는데 물어보질 않는단다. 경력직이어도 인수인계가 전임자를 통해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니, 업무에 대해 물어보고 빠른 피드백을 받는 것이 더 수월할 텐데도 자존심에 물어보질 못하고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한다.
왜 늘 완벽해야 하고 강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이는가?
왜 약점을 드러내기가 어렵고 부탁을 하기가 어려운 걸까?
내가 좋아하는 운동 유투버 B의 모습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자신의 일을 하고 운동 유투버도 하며 성공을 하였다. 하루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며 구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한 구독자가 영어를 해보라고 요청을 했나 보다. 유투버 B가 대답하기를, 자신은 한국인과 대화할 때는 영어를 하지 않는단다. 그 이유가 문법이 틀렸다느니, 발음이 이상하다느니 지적할 거 같아서란다. 웃기고 슬픈 이야기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라. 어느 사람과 상황을 볼 때, 단점을 먼저 본다. 영어를 문법에 맞게 쓰는지, 발음은 옳게 발음하는지, 어느 OTT의 외국콘텐츠의 자막이 형편없다며 댓글들이 수두룩하다. 어떤 작은 허점도 참을 수가 없다. 분노가 들끓는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재단하고 비난한다. 자신의 약점도, 타인의 약점도 포용해주지 못한다. 약점이 보이면 바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정치인을 비난하고, 연예인을 비난하고, 기업가들을 비난하고,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쳇바퀴에서 쉼없이 달리고 있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타인 또한 부족한 것 투성이니 계속 완벽을 향해 달리라고 채찔질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극성이 존재한다. 장점과 단점이 항상 같이 존재하기에 100프로 완벽한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너도나도 탈탈 털어댄다. 먼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고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냐며 절규한다. 직접 'Hell조선'을 만들어놓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며 사회를 탓한다.
유튜브에서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데, 플레이리스트들의 제목들이 '노동요'라고 지어진다. 너무 슬픈 단어처럼 느껴진다. 삶이 고되고 힘들고 작업이 반복되고 지루하여 마음을 달래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제목을 '노동요'라고 명하게 된 건가? 그런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들을 볼 때마다 그냥 슬프다. 지금 나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거 같아서.. 또 많은 이들이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공감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지 말라. 우린 삶 속에서 그냥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창조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신을, 사회를, 세상을 건설해 나가는 건축가들이다.
왜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 가혹할까?
어느 회사에 B 씨는 똑똑하고 유능하여 업무를 잘 처리하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다. 가족과 형제, 조카들의 일이라면 자신의 휴일이나 주말도 반납한다. 막내임에도 자신의 형제를 챙겨야 한다는 어느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형제가 자신의 자동차를 가져가 사용해서 정작 자신이 자동차가 필요할 때 이용하지 못하는데도 명확하게 말을 하지 못한다. 마치 형제들의 부모처럼 행동한다. 자신에게 무리가 되는 상황일 때도 가족과 형제의 요청에 거절을 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타인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의지를 할 때 평안과 위안을 얻는 듯하다.
그러던 중, 노환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또 얼마 안 되어 B 씨는 건강검진으로 암 초기인 것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기대질 못한다. 자신의 사랑은 가족에게 하염없이 퍼주고 자신은 그 사랑을 받기를 주저한다. 그렇게 힘든 상황을 겪어내고도 자신에게 사랑과 풍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고 싶어 하는 안경테조차도 쉽게 사질 못한다. 그러면서 조카들 선물은 턱턱 사준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양극성은 적용 안 되는 부분이 없다. 그 점을 기억하라. 전체를 위해서 나를 잃어서도 안되며, 나만을 생각해서 전체를 등한시해서도 안된다.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 균형과 조화, 공존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형제들을 대신해서 그들이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 수업들까지 대신 풀어주고 짐을 대신 짊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족들의 요청을 들어줘야지만, 그들이 날 의지하고 늘 필요로 해야지만 가족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리하게 희생해서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게 과연 건강한 관계일까?
두려워하지 마라.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지라. 무언가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의무감과 죄책감,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껴보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용기를 내어 가족이나 형제들에게 말해보라. 자신을 표현해 보라.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과 휴식이 필요하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거절하기도 하고 건강한 경계설정을 해보자.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당신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 떠나버릴 관계라면 놓아주고 거리를 두는 편이 본인에게 이롭다. 서로 건강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며 서로 함께하면서도 더욱 빛이 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