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선택하라_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늘 행복을 외부에서 찾곤 한다.
외부에 드러나는 성과나 성취, 외부의 인정, 타인의 박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이 달성되어야, 날 완성해 줄 사랑이 다가와야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행복은 늘 우리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린 언제나 자신의 행복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선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지, 어떤 존재상태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로 향해 가고자 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목적의식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 느끼는지,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삶의 기둥이 무엇인지.. 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물질적인 육체와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고요한 의식과 진동하는 주파수의 에너지를 가진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 영혼의 삼중의 존재이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사랑 에너지이다. 우리가 가늠할 수도 없는 긴긴 오랜 시간 동안 그 광활하고 고요한 의식 전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 표현하고 창조하기 위해 그것이 가능한 체험공간을 창조하였다. 하나의 전체에서 자신을 수많은 조각으로 분리시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였고,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대립물인 '두려움'이라는 환상을 창조하였다. 또 자신이 사랑의 고차원의 주파수이면 자신이 아닌 것을 경험할 수 없기에 의식의 차원을 나누었고, 진동 주파수와 밀도를 달리하여 여러 형태로 삶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실감적으로 체험할 수 없기에 '망각'을 사용하였다. 또 각자 개인의 여정이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게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이 세상은 하나의 전체에서 체험을 위해 분리된 것뿐이다. 신이 하나이고 전체이며 우주이고 삶이고 사랑이고 영혼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여 있고 그 일부이다. 신이 아닌 것이 없다. 신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하고 원하는 것을 어느 판단이나 강요 없이 지켜보며 같이 체험하고 있다. 우리 눈 뒤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의식, 영감을 주고 창조를 하고 자신을 표현하길 원하는 영혼은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기억하고 이 땅에서 행할 영혼 목적과 사명을 찾길 바라며 그날이 오길 묵묵히 기다려준다. 우리의 몸속의 세포와 신체기관들도 우주의 에너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생각하고 아끼고 보살피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를 위해 움직이는 축소된 우주군단과 같다.
우리가 삶 속에서 사용하는 물건, 거주하는 공간,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 거리에 행인들, 층간소음으로 짜증 나게 하는 위층집 사람들 또한.. 그 모든 것, 우주와 별과 달과 행성과 지구의 물체와 동식물, 전 세계 사람들, 광대하게 펼쳐진 자연과 우리가 늘 숨 쉬는 공기와 부드럽게 감기는 바람과 늘 마시고 몸을 씻는 물, 우리가 밟고 생활하는 대지까지, 그 모두가 하나이고 사랑에너지의 일부, 즉 신이다. 신과 우리는 떨어져 있은 적이 없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다만, 우리가 자신이 누군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전체에서 체험을 위해 분리되었기에, 개별의 자신을 인식하고 별도의 체험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마음이란 '자아'가 주어졌다. 우리가 지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전체에서 분리시키고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랑'과 '두려움'과 같은 모든 것의 양극성과 역설이 존재하는 지구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상처를 많이 받게 되면 보호기능이 강화되어 강철 갑옷을 여러 겹 입게 되며, 수많은 가면 속에 진정한 자신을 숨기게 된다. 분리된 개인의 자아로만 생각하게 하고 전체로서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육체로서의 '삶과 죽음' 또한 있다. '죽음'이란 육체와 개인의 자아를 벗고, 다시 전체 의식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물이 고체에서 액체가 되고 기체로 변화하듯이, 본질은 같고 형태가 변화할 뿐이다. 시공간의 제한이나 어떠한 결핍이 없이 가볍고 자유로웠던 존재가 지구에 내려와 유리병에 갇힌 듯이, 시공간의 제한을 받고 무겁고 밀도 높은 육체에 갇혀 양극성을 겪는 체험을 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영혼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다. 영혼은 육체가 잠이 들 때, 생명의 끈을 달고 몸을 잠시 떠나 영계에서 피로를 회복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우리가 잠에서 깰 때,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삶을 다할 때까지..
우리는 의식이고 하나에서 분리되어 체험을 하고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우리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올 때, 영적인 존재로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한 선택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관찰하게 된다. 진정한 자신으로서 체험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검토해보며 이번에는 교훈과 깨달음을 얻고 영적 진화를 하기 위해서 어떤 체험을 해야 하고 누구와 영혼계약을 맺어 그 체험이 가능하게 할지 서로 동의 한 후에, 즉 지구에서 경험할 삶의 모든 관계 설정을 선택하고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자신이 자신의 체험 강도를 설정한다. 지구의 물질적인 체험은 양극성과 역설의 법칙이 적용되는, 반대를 경험하면서 반대를 깨닫게 되는 구조여서 영적인 진화를 이루고자 하면 체험의 강도를 올리게 된다.
우리는 단지 몸이 아니고, 단지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고, 단지 출렁이는 감정이 아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 육체적-정신적-감정적-영적인 존재이다.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존재이기에 어느 한 부분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도 안되고 서로 조화롭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정렬되어야 한다.
인생을 항해해 나가는데 몸의 감각과 반응, 마음의 생각, 영혼의 영감과 직관을 나침반으로 삼고, 영감에 따라행동으로 옮기며, 감정을 원하는 에너지 주파수에 조율시킨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 영혼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온다. 망각의 베일에 덮여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지만 결국 그것을 찾았을 때,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로 정렬되며 영혼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들을 쉽게 끌어당기게 된다. 우주의 도서관, 아카식레코드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다운로드 된다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빠르게 현실화 되는 경우이다. 영감, 직관, 찰나의 순간에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는 '유레카'순간을 경험했다고 하는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주의 거대한 사랑의 전체장에서 조각으로 나뉜 사랑은 '양극성'을 극한으로 치달아 경험할 수 있는 밀도 높은 3차원의 지구를 선택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망각'이란 장치를 사용하여 자신이 '사랑'이란 걸 잊은 채, 사랑의 반대 성질인 고통, 두려움, 공포, 결핍, 슬픔, 분노, 수치심,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선택할 수 있는지.. 즉 자신을 잊어버린 상태에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지, 이론적으로만 자신을 '사랑'으로 아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과 영혼이 일치되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뒷걸음치게 하고 좌절케 하는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의 환상임을 깨닫고 내가 '사랑'임을 선택하고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지, 기어코 자신이 '사랑'임을 자각할 수 있는지, 체험으로서 직접 몸소 느끼려고 우리 모두가 이 고난이도의 시험장인 지구를 선택했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이 없으며 같은 곳에서 분리된 '사랑'이고 개별의 영혼의 여정을 목적과 단계에 맞게 걸어 나가고 있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우주의 하나 됨과 다시 분리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고 또 개별의 선택 여하에 따라 각 의식의 차원과 영혼마다의 격차가 발생했지만 이는 누가 높고 낮음이 아니다. 우주는 서로가 똑같은 모습이길 원하지 않으며 불완전함의 생동감을 느끼고자 한다. 각자 다양한 빛깔과 색깔과 음조 속에서 서로 하나 됨으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며 다시 하나가 되고 궁극의 기쁨을 느끼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분리되어 창조의 기쁨을 느끼고 자유롭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확장하는, 서로 얽히고 설켜 회오리춤을 추며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끼며 뽐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 하나 됨과 다시 분리되는 순환과정은 우주의 한 호흡, 들숨(하나 됨)과 날숨(분리)이다. 이는 멈추지 않는다. 경이로운 우주의 창조과정이며 존재의 넘치는 풍요의 놀이가 된다.
인간의 시선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영혼의 세계에서는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사람들의 각성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된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보는 인물들도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한 역할 수행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이 땅에서 영혼의 목적과 사명이 다하면 홀연히 육체를 떠나기도 하고, 영혼의 목적과 사명과 달리 너무 자아 쪽으로 균형을 잃어 도저히 해당 육체로는 역할 수행을 못하겠다고 영혼이 판단하면 그 육체를 떠나고 다른 육체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가 단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뿐이지, 자신의 삶 속에서 부딪치는 사건과 사람들, 상황들은 그냥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역할과 목적을 띄고 온다. 그 속에서 깨달아야 하는 교훈이 있다. 그 모든 두려움, 고통 속에 영적 진화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삶을 해킹하듯이 그 열쇠를 찾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
우리는 단지 육체가 아니고, 진동하는 에너지의 영적인 존재이기에 '슈만 공명 주파수'와 '달의 주기', 행성의 움직임(순행, 역행)에 따라 기분이나 감정, 동기부여, 행동 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구 삶을 잘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양극성'과 '역설'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며,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 강점과 취약점, 빛과 어둠,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이 하나이고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그림자, 어둠, 취약점 등을 거부하지 말고 자신의 모두를 통합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듯이,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날때, 그것을 통합할 때, 창조가 일어난다. 또 혼란뒤에 질서가, 고통 뒤에 깨달음과 변화와 성장이, 어머니의 산통 뒤에 고귀한 생명이 탄생한다. 애벌레가 번데기로 자신 내부구조를 완전히 재구성(용해)하여 나비로 변환한다. 어느 사건의 끝은 다른 시작이 되고, 인간 삶에서 죽음은 다른 형태로의 전환이 된다. 지구의 이 혼란스러움과 두려움과 고통의 극에 달함은 새로운 시대로 나가기 위한 전환의 과정일 수 있다.
지구는 양극성의 세계이기에 '균형,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소'를 생각해 보라.
한 극과 다른 극은 결국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시소의 중심에서 벗어나면 '쿵'하는 소리가 들리며 균형이 흐트러지고 만다.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 '사랑'임을 자각하면서도 타인에게 건강한 경계설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개인이자 전체라는 개념을 오가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면 쾌락의 그림자인 고통과 공허, 바닷물을 마신 듯 가시지 않는 갈증이 따라온다. 그들은 한 세트이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의 균형은 거시적인 전체부터 미시적인 입자까지 관통하는 핵심 원리이다. 별은 안에서 끌어당기는(중력)과 밖으로 밀어내는(복사압) 이 두힘이 균형을 이룰 때 밝게 빛나고, 누군가에게 압력을 가하고 통제를 하면 상대방은 반작용으로 저항을 하며, 뜨거운 물을 탁자위에 두면 식으면서 주변온도와 같아지듯, 우주는 한 쪽으로 쏠린 힘을 되돌리려하고 늘 힘의 균형을 찾으려 한다.
인간 또한 고유한 진동수를 가진 자유로운 에너지이기에 누군가의 명령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은 압력과 저항, 에너지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며,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범하고 에너지 간섭을 하는 것이기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서 주권을 찾고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나의 주권 찾기'가 된다.
Think) 이렇게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가 돈과 두려움, 공포에 의해 길들여지고 통제당하고 조종당하고 에너지가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고여있다는 것은 자아의 갑옷을 두텁게 입고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자동 프로그램을 계속 실행하며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우린 단지 물질적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진동하는 에너지의 영적인 존재이기에 '파동의 주기'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낮과 밤,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 확장과 수축, 사랑의 열기뒤 잔잔함 등.. 모든 것에 주기가 있고 시기가 있고 반복되는 에너지 순환의 흐름이 있다.
에너지는 직선의 형태로 뻗지 않고, 파동(Wave) 형태로 움직인다. 우리의 인생사 또한 그것과 닮아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이 진동하고 움직이고 있다. 낮뒤에 밤이 오고, 사계절이 주기에 따라 반복되며,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반복되는 호흡과 남녀의 뜨거웠던 사랑 뒤에 서로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려고 하는 에너지 흐름의 주기가 있다. 마루(고)일 때는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내가 바라는 대로 잘 흘러가는 거 같다가, 골(저)일 때는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가 된 거 같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어느 한 지점이 계속되길 바라면서 집착하거나 벗어나지 않으려고 저항을 하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이 지속되고, 거세게 흐르는 강을 거슬러 헤엄치듯이, 힘이 부치게 된다. 에너지의 흐름, 파동의 주기로 자신을, 삶을 인식하라.
옛 말에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라는 말처럼, 어느 한 지점이 계속되지 않지만 다시 파동의 주기가 돌아오고 그 흐름은 반복된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주먹을 쥔 손을 펴고 몸의 긴장을 풀고 저항하지 마라. 그냥 파동의 흐름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게 하라. 마루(고)일 때 자신을 표현하고 충분히 즐기며 감사하고, 골(저)일 때는 휴식을 취하고 중심을 잡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거나 더 보충했으면 하는 것들을 탐구해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일과 운동 뒤 휴식이 필요하고, 낮 동안 활동 뒤에 수면이 필요한 이유다.
진동하는 에너지의 영적인 존재이기에, 파동과 함께 '에너지 순환'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진동하는 에너지이다. 이는 자유롭게 흘러야 하고 또 순환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가두어두면 압력이 증가되어 폭발하거나 생명력을 잃고 변질되어 버린다. 이를 지구 삶에 적용해 보면 주고받음(지혜, 부/풍요/돈, 사랑 등)에 대해 말해볼 수 있다. 지혜(에너지)를 공유하고 널리 퍼지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 지혜를 받는다. 부와 풍요를 얻게 되면 이를 나누고 투자하여 돈(에너지)이 흐르게 하고 순환이 되게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에너지)을 주면, 또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순환되는 에너지는 주고받음으로써 서로 성장하고 증폭되고 확장되고 팽창된다.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간 또한 에너지이기에 에너지의 순환이 필요하다. 너무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쑤시기 시작한다. 에너지 흐름을 위해 스트레칭이나 운동이 필요한 이유이다. 갑자기 답답하고 숨 막히고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든다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게 아니라면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순서를 바꿔보거나 새로운 것을 해보거나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거나 단지 음악을 틀어놓고 가볍게 춤을 추는 것으로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에너지가 흐르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정체되고 부패되고 변질되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자유로운 에너지와 같아서 새로움 앎과 성장, 자유로움, 창조를 늘 원한다. 지식의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되는 순환이 필요하다. 입력만 하고 출력을 하지 않으면 무기력하고 길을 잃은 느낌이 들 것이다. 우리 존재는 자신 안에 쌓인 에너지를 분출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창조하길 학수고대한다. 이론만 쌓아두길 원하지 않으며 늘 삶 속에 실습과 체험으로 체득하여 "직접 느끼면서" 체화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지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다. [이론+실습+아하!포인트]가 배움의 완성도이며, 참된 앎의 이해가 된다. 이론과 실습으로 앎을 터득하고 새로움을 창조하여 타인과 나누며 서로 순환하고 성장하고 확장되길 원한다.
에너지 파동 주기와 순환의 흐름은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며 지속하려는 우주의 속성이다.
그 유명한 양자역학 '이중슬릿실험'에 대해서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빛이나 전자같은 대상이 입자(물질적 특성)나 파동(Wave, 진동에너지)인지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전자를 두개의 좁은 틈(슬릿)에 쏘았을 때 파동 형태를 보였으나,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확인하려고 측정장비를 설치하여 관찰하면 전자는 파동성을 잃고 입자의 형태를 띤다. 관찰행위 자체가 물리적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하다가 관찰되는 순간 하나의 확정된 결과로 고정되는 현상, 즉 '파동함수의 붕괴'이며, 모든 물질은 파동과 입자의 형태를 띤다는 '물질의 이중성'이다.
우리는 파동이며 입자이다.
우리는 물질적 존재이면서 진동하는 에너지의 영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집중하는 것,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것을 현실 세계로 물질화시킨다.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하다가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의도를 가지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믿고 행동하는것이 현실로 창조된다.
우주의 거대한 사랑에너지(파동)에서 분리되어 지구의 물질세계에서 육체(입자)를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초에 이 아름다운 행성과 우주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관찰하고 설계하신 신이 계시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입자는 계속 관찰되지 않으면 다시 파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계속 육체(입자)를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이는 신이 우리 주위에, 우리 안에서 조용한 의식으로, 타인으로, 자연으로, 모든 것 안에 깃들어 우리를 지켜봐주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게 영감을 주고, 힌트를 주고, 길을 안내해주며 사랑으로 붙들어주고 계시다는 뜻이다. 신의 사랑을 느껴보라. 우린 신의 사랑이란 우주에 포옥 안겨있다. 망각과 자아로 기억하지 못 할뿐.. 겨울의 작은 눈송이조차도 결정모양이 각기 다르며 기막하게 신비롭고 아름답다. 또 우리 은하계와 다른 은하계들, 3차원 지구와 다른 고차원의 존재들까지.. 광대하며 경이롭고 그 모두를 헤아릴 수 없다.
Think)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영적인 존재(사랑 에너지)이어서 그런지, 우주의 진리가 '에너지'에 근접한 내용이 많은 거 같다.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근원을 탐구하는 '물리학자'가 깨달음을 얻어 영적스승이 된 경우가 많은 건 이유가 있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도 물리학자가 쓴 책이다. 자신이나 타인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에너지 역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거 같다.
그리고 세상은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내 안에 상처와 트라우마,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면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는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진다. 내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자극할 상대나 상황들이 자꾸 등장한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그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사람들과 상황들이 내게 나타난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를 생각해 보라. 사랑에 빠지면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루가 즐겁고 행복할 것을 안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세상이 나를 반기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인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라.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전에 나를 거슬리게 하는 일들을 보면서도 웃음이 지어진다. 내가 기분 좋게 처리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세상이 갑자기 바뀐 게 아니다. 나의 내면이 변화한 것이다. 사랑과 감사에너지로 가득 찬 것이다. 그 주파수에서 머무를 때 내게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들, 행복한 상황들이 쉽게 다가온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부정적인 기사, 두려움을 유발하는 뉴스나 폭력적인 콘텐츠들을 계속 소비하고, 부정적인 것에 늘 집중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삶은 고난이고 전쟁이고 주위에 경쟁할 적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에 부합하는 사람과 사건과 상황들이 자신의 앞에 배치된다. 되는 일이 없다며 삶은 도대체 왜 이러냐며 좌절한다. 우주는 내면을 그대로 반영해 주었을 뿐이다. 우주는 옮고 그름의 판단이 없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이를 침범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믿고 행동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우리의 진동 주파수에 따라 화답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든 그것을 우주도 원한다. 무조건적인 허용의 사랑이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고 체험 속에서 깨닫길 바란다.
외부의 세계를 바꾸고 싶으면 나의 내면상태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신은 우리에게 창조의 도구를 주었다. 바로 생각과 말과 행동과 감정이다. 우선, 자신의 그림자, 어둠, 약점까지 모두를 치유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부모에게 주입된 가치관과 낡은 사고방식, 삶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 문제해결방식, 의사소통방식, 트라우마, 방어기제 등과 친구, 주변인, 사회나 미디어,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에서 주입되고 또 무의식적으로 동의했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신념 등을 하나하나 해킹한다.
진정한 자신으로서 자신과 공명하는 정보들과 지식들만을 취한다. 또 그냥 이론만을 쌓아놓고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껴보고 체득하면서 걸러내고 수정, 추가해 나간다. 자신의 주권을 찾는다. 자신의 내면의 힘을 되찾는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내면의 조용한 의식의 기둥에 자주 머무른다. 자신을 기분 좋게 하고 마음을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명확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확장되게 하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되고자 하는 자신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감정으로도 미리 느낀다.
먼저 존재하고 행동하고 느끼면 소유하게 되리라. (Be. Do. Have.) 이전의 자아인 낡은 소프트웨어는 완전히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자신이 되고자 할 때, 이전의 자아는 변화하지 말고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우릴 계속 뒤로 끌어당긴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취약해져 있을 때, 무의식적인 자동 반복습관 패턴을 유발한다. 그리고 우리 귓가에 묻는다.
"확실하고 예측가능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익숙한 고통의 자신으로 돌아오겠어요?"
우리가 미끼를 무는 지 계속해서 낚싯대를 던져댄다. 우주의 모든 것이 진동하고 변화하고 운동하는데 마음의 자아만이 확실함과 안전과 멈춤을 선호한다. 그런 질문의 팝업상자를 띄워대면 새로운 자신에게로 주의를 전환시켜라. 전환하는 과정 중에 물론 이전의 패턴으로 돌아가려 하고, 또 돌아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다시 새로운 자신을 향해 방향을 틀고 한 걸음씩이라도 걸어가면 된다. 이를 계속 반복한다. 새로운 자신으로서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안정화시킨다.
그 와중에도 낮은 주파수(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비교, 질투, 분노 등 분리에서의 나타나는 감정들)에 머무르면 이전 소프트웨어의 자아가 이때다 싶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컴백한다. 낮은 주파수에 머물렀구나를 알아차리고 눈을 감고 깊은 심호흡을 들이쉬고 내쉰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다시 내면의 고요함으로 돌아와 지금 현재에 머무르며 몸의 감각을 느껴본다. 호흡, 지면에 닿아있는 발의 감각, 지금 내게 들려오는 소리, 바람이 살갗에 닿는 느낌 등.. 자아는 나를 현재에 있게 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온갖 회한과 걱정과 불안과 쌓여있는 해야 할 일들에 사로잡히게 하기 때문에 현재에 고요히 평화롭게 존재하는 것이 진정한 나로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이전의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운전대가 넘어가게 되면 새로운 자신으로서의 모습이 당연한 듯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전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저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로 느껴진다. 그리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나를 다시 뒤로 끌어당기려 하는 이전 소프트웨어 자아의 반복패턴을 더 잘 알아차리고 분별할 수 있으며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게 된다.
물질과 영성의 균형
우리는 두려움 위에 건설된 사회 전반 속에 살아가고 있고 생존 기반의 '물질 만능주의'를 추구한다. 균형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이 또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진정한 자신을 기억하고 표현하고 창조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바로 '영성'의 개념이다. 아래는 인류 역사 이전의 초고대문명 전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잃어버린 대륙들과 고대이집트 문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틀란티스 문명'은 고도화된 기술을 신격화하고 자연을 통제하고 기후를 조작했으며, 분리의식으로 소수 엘리트층이 기술을 독점하며 계급사회를 만들고 다른 민족을 노예화 시켰다. 물질적 소유가 권력의 가치와 척도가 되었다. 물질적 풍요가 의식적 성숙을 앞서고, 기술이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파괴를 불러왔다.
'레무리아 문명'은 반대로 현실적인 생존이나 물질적인 기반을 소홀히 하고, 내면의 세계나 정신적인 가치에만 몰두했다. 너무 평화롭고 순응적이어서 외부의 침입이나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우주의 섭리라고 받아들이며 대륙과 함께 가라앉았다. 지혜를 가지되, 발은 땅을 딛고 서야하는데 현실에 살지못하고 정신세계 속에 빠져있었다.
'고대이집트 문명'은 아틀란티스의 지혜를 보존하려고 했던 고대문명 중 하나로 초기에는 물질과 영성의 균형을 이뤄 천문학, 건축, 영성 등 비약전인 발전을 하였으나 후기에는 지혜가 비밀화되고 특권층(사제단)의 전유물이 되면서 권력유지의 도구로 변질되었고, 파라오의 신격화와 거대 무덤, 신전 건립 등 거대 건축물(물질)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아틀란티스의 전철을 밟았다. 외부의 침략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Think) '백 투 더 퓨처'는 1985년 영화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가 2010년에 누구나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제작되었다. 허나 현실은 그 보다 16년 뒤인 2026년인데도 그에 관한 소식이 없으며, 현재 자율주행자동차 시행이 논의되고 있다. 생각보다 과학발전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고 있나?
새로운 기술들이 폭주하던 시기, 아인슈타인이 1905년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E=mc²)를 포함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핵분열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고 독일이 우라늄 핵분열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자, 미국도 서둘러 과학자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해 1945년 7월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의문은.. 일본이 미국을 기습공격했고 이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에 핵폭탄 투하를 했다고 하는데 협상의 여지나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던 걸까? 핵폭탄 실험을 성공하고 그 위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왜 두 번이나 핵폭탄을 투하했을까? 무고한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걸까?
의식적 성숙이 없는 기술의 발전은 파괴를 불러온다.
산업혁명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과학기술이 발견되고 거듭하며 발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디게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 우리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고 전체를 위해, 모두를 위해 기술을 쓰기 보다는 분리의 관점에서 통제와 억압과 두려움과 공포를 주기 위한 살상무기를 제작하고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이전과 다르게 기술 혁신이나 신소재, 무한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의식적 성숙이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방증이자, 우주의 제동장치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사랑이다. 이는 지울 수도 없고 변경할 수도 없는 진리이다.
우주의 사랑 에너지의 일부이면서 그 전체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며 이는 분리가 없는 상태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무조건적인 허용의 에너지이다.
우주에서 가장 높은 진동수를 가지는 근원주파수의 기본값이다.
우리는 신이 운전하는 우주에서 승객이고 배우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신에게 맡겨라.
자신의 대본을 직접 써라. 지금 어느 역할의 대본을
읽고 연기하고 있는가? 그 대본은 누가 쥐어줬는가?
자신을 믿고 신을 믿고 내게 진정 좋은 것을 줄
것임을 신뢰하고 그에 감사하고 기쁨을 느끼라.
양극성과 역설을 이해하고 기회를 읽으며 균형을 잡으라.
내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 좋을 수 있고,
내게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두려움 속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사랑으로 존재하라.
두려움에 반응하지 말고 사랑으로 에너지를 전환시켜라.
거짓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체험하라.
자신의 주파수 에너지를 높게 유지하라.
감사, 사랑, 행복, 평안 속에 머물라.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존재하라.
내면의 힘을 믿고 주권을 되찾아라.
내면의 고요한 평화 속에서 중심을 잡아라.
근원 주파수(사랑의 전체 에너지장, 우리의 고향)를 느껴라.
그 하나됨의 일체감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되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 감정을 내가 원하는 것에 주의집중하고
상상하고 지금 이순간 충만함을 진짜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느껴라.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현실로 창조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영혼의 목적과 사명을 기억하며
진정한 자신을 매 순간 선택하고 표현하고 창조하라.
삶이란 거대한 에너지 흐름에 긴장을 풀고 올라타라.
삶과 함께 에너지 흐름의 춤을 추어라.
에너지의 파동 주기와 순환의 흐름을 기억하라.
모든 일에 이유가 있고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
사랑이 사랑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거대한 창조와 변혁과 영적 진화가 일어난다.
영적인 별들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성장과 변화와 확장이 가속된다.
우리는 사랑이다.
이제 그만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을 기억하라.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이제 그만 환상(두려움)에서 벗어날 시간이다.
우린 충분히 고통을 받았다. 충분히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의 챕터를 충분히 감내하고 교훈을 얻었으니,
이를 알아차리고 다음 새로운 의식의 패러다임의 단계로 나아갈 때이다.
Think) 거시경제학에 기술수용주기 모델이 있다. 첨단 기술이나 혁신적인 제품이 초기 시장에서 대중적인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일시적인 정체나 후퇴하는 거대한 간극을 '캐즘'이라 하고, 그 5단계는 [혁신수용자-초기수용자-전기 다수수용자-후기 다수수용자-지각수용자]로 구분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여 세상을 분리 없이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의식의 대변혁이 일어나 지구에서의 삶이 '천국'이 되는, 그것이 주류시장(기본 세상)이
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밤에 잠들기가 아쉬울 정도로 행복한 세상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지금 의식의 [초기수용자]나 [캐즘] 구간 어느쯤에 있는 게 아닐까?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