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가 움직인다

by 사랑의 등대

어디서나 일맥상통하는 진리가 있는 걸까?


뮤지컬 보러 다닐 때,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한 공연을 보여주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길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조연들, 조명장치나 설치물 변경..

각 장면마다 무대가 바뀌고 소품들이 바뀌고 등장인물이 바뀐다.

무대 뒤 음악연주도.. 무대 위 배우들도..

모두 다 아귀가 맞춰 진행되지 않으면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는..

톱니바퀴 같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합동 공연.



인생 또한, 거대한 뮤지컬 공연과 같은가?

실제와 같은 공연 세트장, 등장인물, 사건, 상황,

주인공의 선택에 의해 변하는 세트장과 등장인물 등..

서로가 톱니바퀴 같이 이어져 굴러가고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또 이어지고..

내 인생 안에서 마주치는 인물과 상황들은 다 목적과 역할을 띄고 온다.



내가 거부하고 부정하는 내 안의 것들이 상대에게 거울로 비친다.

치유하기 위해서 극복하라고 내 안의 아픔을 반영하는 인물, 상황들이 계속 반복된다.

내가 나에게 주지 못했던 것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내가 나에게 주지 못했던.. 조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랑, 인정, 용서, 포용, 이해, 존중을

외부에서 찾고 갈구한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더욱더 갈증만 날 뿐이다.

내 안에서 나를 찾아야, 내가 나에게 줄 수 있을 때,

나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조건 없이 사랑하고

나의 취약점과 그림자까지 끌어안고 통합할 수 있을 때,

외부의 필요가 사라진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고, 내 안의 열정을 창조할 수 있을 때,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해 따라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마비시키려고 해 오던 모든 습관과 행동들,

즉 어떤 것에 대한 중독, 해로운 관계 패턴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내 안의 고통과 두려움을 초연히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포용하게 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내 안의 고통과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그냥 그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되면 림보현상에 빠지게 된다.

계속 그 상황이 반복된다. 미로 속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마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즐기진 않지만,

마리오게임 같이 이전의 반복된 선택과 행동을 하면 게임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렉이 걸린 듯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모습..

불확실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표현인가?

내 주변 상황들이 맘에 들지 않지만 익숙하고 편안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인가?



그래서 고통이 나쁜 것만이 아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이전의 무의식적 반응이나 선택, 행동이 아닌 관점의 변화로 고개를 약간 틀어

감정에 동화되지 않고 그 상황을 관찰해 볼 수 있다면 미로의 열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의 균형이 중요한 거 같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것도, 너무 안 먹는 것도 같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해도, 너무 움직이지 않아도 건강을 상하게 한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여 과로하거나, 너무 아무 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을 잃을 정도로 상대방을 너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 상대방을 잃게 만든다.

식물에게 물을 너무 많이 줘도, 너무 안 줘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

홍수가 나도 사막 환경이어도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균형이 아닌, 극과 극은 결국 같다는 거 아닐까?

'극과 극이 통한다' 라거나, '치우치면 못 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지 않나.


젠가 게임에서 균형이 어긋나면 무너지듯이..

돌탑 쌓기에서 균형이 안맞으면 무너지듯이..

사람도 감정이 너무 업되거나 다운되었을 때, 선택을 하면 후회를 하듯이..

자신이 치우친 상태에서의 선택과 말과 행동으로 균형에서 치우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또 통합이고 역설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 동전의 앞면과 뒷면, 낮과 밤, 어떤 것의 장단점, 사람의 강점과 취약점, 사랑과 두려움..

이 상반되는 것들이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리시켜서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어떤 대안을 선택하려 해도 항상 장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이 하나이기에..

이 지구 안에서 100% 좋은 것만을 가진 어떤 것은 없지 않을까?



어머니의 극한의 고통 속에서 생명이 창조되고,

혼란 후 질서가 잡히고, 고통 후 깨달음이 오고,

욕망으로 너무 간절하면 멀어지고 오히려 내려놓으면 다가온다.

너무 사랑하면 잃을까 두려워진다.

즉각적이고, 높은 쾌락 추구 후 고통이 따라온다.

왜 실제 가수들이나 스포츠스타들이 공연장이나 경기장의 사람들의 열광의 에너지에 중독되고

공연이 끝난 후, 허탈해진다고 하지 않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집착하면 도망가고, 구속하거나 통제를 하면 벗어나고 싶다.

너무 착하고 경계 없이 퍼주고 자기중심이 안 잡히면 통제하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다가온다.

반대는 반대를 끌어당긴다는 걸까?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끌어당기듯이?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나에게 온다.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과 친절의 따뜻한 말을 하면 그것이 돌아온다.

어떤 것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가르치는 자가 더 확실히 앎을 얻게 된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니, 행복과 풍요가 다가온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힐링해주려 하니, 도리어 그것을 받는다.

행복에너지에 머무니 몸과 마음이 따라서 건강해진다.

행복을 끌어당기는 나로 존재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분노, 비난, 판단, 비교의 말을 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누굴 때리면 내 손도 아프고 상대방도 아프다. 맘까지 상한다.

부정에너지에 머무니 마음이 상하고 몸도 따라서 상한다. 상대방 또한 그러하다.

불행을 끌어당기는 나로 존재한다.




몸과 마음과 영혼, 생각과 말과 행동.. 이 삼종종합세트를 정렬(일치)시킨다.

이 셋이 한 마음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곳을 걸어갈 때, 강력한 창조의 힘이 작동한다.

왜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된 거 같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한 경험? 온전히 몰입하고 머릿속에 잡생각이 사라질 때..

그 일을 하고 났을 때, 후회나 공허함이 아닌, 신나고 기분 좋은 느낌과 평안과 명확함이 머물 때..

그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 때.. 확장되고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 들 때..



그리고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킨다는 것..

뭔가 현 사회는 '솔직하다'라는 게 특별한 장점이 돼버린 거 같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맘을 속이고 반대의 말을 한다는 것이겠지.

한국어가 상황적, 맥락적 언어여서 그런 것도 있을까?

영어처럼 주어가 정확히 필요하지 않고 상황적, 맥락적으로 이해를 하다 보니까

화자도 정확하게 말을 하거나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생략하게 되고

청자도 지금 듣고 있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정확히 물어보지 않고 혼자서 추측을 한다.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의 관념과 편견 안에서.. 오해가 오해를 쌓기도 하고, 억측하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자신이 다른 마음이면서, 그와 반대의 말이 나간다.


왜 자신의 속마음을 숨겨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면 취약하다고 생각하나?

공격당하고 이용당할 것 같은가? 상처받을 것 같은가?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고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 생각, 의지와 다른 말을 하게 되면..

안 그래도 시끄러운 머릿속이 더 시끄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억눌린 감정들.. 상처들.. 그때 내가 하고자 했던 말들.. 내가 나 자신일 수 없던 순간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비하했던 순간들.. 내 안의 분노가 상대방에게 향하고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들..

그런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몸에 쌓여 마음의 병이 되고, 마음의 상태가 몸의 상태로 드러난다.


말과 생각과 행동에는 창조의 힘이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말을 하면 본인에게도 해를 주고, 타인에게도 해를 준다.

타인에게 향하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이 먼저 느끼고, 자신을 통과해서 전달된다.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분노가 남고, 무의식에 분노가 저장된다.

내가 부정적 에너지 상태로서 존재할 때,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강화된다.





그리고 조화와 공존..

유튜브로 뉴잉글랜드 버몬드에 사는 사람들의 시골 풍경을 보는데,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무들이 알록달록 다채롭게 물들어가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녹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등 총 천연색의 빛깔들로 서로를 뽐내고

그 풍경 위로 산이 우뚝 솟아있고, 나무 사잇길로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강가의 표면은 거울처럼 이 풍경들을 비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인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자연은 서로 다른 빛깔들과 서로 다른 소리들을 품고 있으면서

서로를 더 조화스럽게 하고 더욱더 서로를 아름답게 하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주는 하나의 교향곡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각자의 아름다운 소리들이 한데 모여 더욱 아름다운 연주회가 된다.

가을밤에 풀벌레들 소리가 아름답듯이 말이다.

누가 귀뚜라미인지, 여치인지, 베짱이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맞춘 듯이 아름다운 연주를 한다. 거기에 반딧불이 조명을 담당한다.

여름과 맞물려 있는 즈음이면 매미와 바통터치를 하기도 한다.

근데 인간은 왜 자연과 거꾸로 가는 걸까?

자신과 같은 소리를 안 낸다고 같은 소리를 내라고 강요한다.

그럼 아름다운 연주가 안 될 텐데 말이다.



그게 우주가 우리에게 하는 말 같은데, 지구에서의 인간의 모습들은 서로 분리시켜

국가와 민족, 가족, 혈통으로 나눠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비교하고, 경쟁우위를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왜 다르냐고 서로를 비난하고

다들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요한다.

서로의 각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니,

예측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두려움이고 위험이고 불안요소이다.

이 모두를 통제하고 조절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 싶으니

늘 머릿속이 복잡하고 긴장되고 편치가 않다.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하니,

자원부족이 생기고 덜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열등감과 불평등이 생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세력들은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지속하여 통제, 조정을 하기 위해 골머리를 쓴다.






우주와 주파수를 맞춰라..

우주는 사랑의 에너지로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 일부로 만들어져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흐르는 우주의 생명(사랑) 에너지의 한 부분이다.

우주의 생명(사랑) 에너지는 서로를 구분하지도, 차별하지도 않는다.

각자 변화하고 성장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통합되고 확장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기를 원하는 자유로운 에너지이다. 이를 제한할 수 없다.




사람들 모두가 본인이 곧 사랑임을,

그토록 찾아 헤맸던 모든 것들이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함을 기억하기를!




근데 지금의 세상은 온통 두려움과 불안, 걱정, 생존, 부족, 경쟁, 고통으로 뒤덮여있다.

왜 우리를 사랑에게서 멀어지게 했을까?

왜 진정한 자신을 잊어버리게 했을까?

늘 부족한 것, 원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는 것에 집중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들어와도 최악의 상황부터 먼저 생각한다.

늘 자신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판결하고 벌을 주며, 타인 또한 그러하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타인을 못 믿고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내면의 부정성을 투사한다.



자신이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길들여져 있다.

또 그걸 의심 없이 믿는다.

두려워하고 걱정, 불안에 떠는 것이 기본 존재 상태가 되어서

또 매일 두려움을 조장하고 공포를 떨게 만드는 신문기사, 매스컴들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탐구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을 보면 항상 그런 상태로 존재하게 만든다.

늘 사회와 경제와 정치와 기업과 가족과 타인을 걱정하고 비난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하루 종일 두려움에 떤다.

당연히 내가 집중하는 것이,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 계속 내게 끌려온다.

첩첩산중이다.



유튜브 댓글들을 보면 살기는 더 편리해지고 좋아졌는데,

왜 삭막해졌냐고 한다. 옛날을 그리워한다.

자신(사랑)에게서 멀어졌기 때문 아닐까?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좋은 영화나 드라마 작품들이 많았던 거 같다.

지금은 왜 이리 폭력적이고 잔인한 작품들이 많냐고들 하는 댓글들도 보았다.

지금 한국의 집단의식 상태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이건 전 세계적으로도 그러한가?




과거의 수많은 선택, 행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현재가 되고

여러 겹의 현재가 미래를 끌고 온다.

즉, 현재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이 관련된 미래를 당겨온다.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의 연속성의 지점이기도 하고, 미래의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로서의 선택과 행동이 비치는 현재,

현재의 나로서의 선택과 행동이 비치는 미래,

현재는 과거이기도, 미래이기도 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이다.

어떤 미래를 끌고 오겠는가?

과거의 선택을 재반복하겠는가?

되고자 하는 새로운 나로서의 선택을 하겠는가?

사랑의 존재 상태를 선택하겠는가?

두려움의 존재 상태를 선택하겠는가?




지금 우린 너무 두려움의 상태로 치우쳐 있는 거 아닐까?

사랑의 존재 상태로 향해 한 걸음 씩 걸어오라.

균형 상태일 때, 두려움은 성장의 건강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언제 시작해도 늦은 건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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