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바티칸
바티칸 투어의 후반부, 드디어 하이라이트인 <천지창조>를 감상할 차례였다. 천장화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가이드는 이 르네상스 시대 작품이 왜 미술사에서 가장 도드라진 작품 중 하나이며 이를 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와 함께 당대 3대 거장으로 평가 받는 미켈란젤로는 조각가, 화가, 건축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재다능했던 그는 자신의 본분을 조각가로 여겼다고 한다. 조각의 재능을 타고난 대신 외모 컴플렉스가 굉장히 심했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곱슬머리에 작은 키, 게다가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체형이 곱사등이처럼 변했고 왼쪽 얼굴도 일그러지는 고통을 겪는다. 고집과 자존심이 세며, 완벽주의 성향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24세가 되던 해, 현재 성 베드로 성당에 위치한 <피에타>라는 조각 작품을 완성한다. 성모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젊은 미켈란젤로를 순식간에 거물 조각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예술가들을 알아보는 안목이 탁월했는데, 교황청 내부에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의 리모델링을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조각품 몇 점을 의뢰한다. 당시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교황의 신뢰는 예술가로서 큰 영광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얻을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하지만 성당 리모델링의 책임자는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나머지 그에게 조각 대신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하도록 교황을 부추긴다. 그림을 거의 그려본 적 없는 그였다. 천장의 면적은 농구장 1.5개가 들어가는 거대한 크기였다. 미켈란젤로에게 큰 부담을 지워 교황의 신뢰를 잃게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교황은 꾐에 넘어간다. 그를 불러 천장화를 완성한 뒤 약속한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라고 이른다.
미켈란젤로는 크게 상심하지만 조각에 대한 열망으로 교황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한다. 그는 조각가로서 나날이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었지만 화가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성당의 빈 천장을 보면서 며칠을 고민했다.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 포기하려는 찰나, 조각가의 관점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 넓은 천장에 여러 장의 그림을 나눠서 그릴 계획을 세운다. 당시 미술계의 상식으로는 그림의 테두리를 조각으로 입체감 있게 나타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건물의 천장을 조각할 수 없기에 그림의 경계를 붓으로 그려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좌절하던 미켈란젤로는 이 발견을 계기로 천장화를 한 번 끝까지 그려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작업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성당의 천장 높이가 20미터가 넘었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공중에 목재로 된 바닥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서서 고개와 허리를 뒤로 젖힌 채 그림 그리는 일을 4년 반이나 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그림만 그려야 완성할 수 있는 분량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3분도 유지하기 힘든 자세로 온종일 그림을 그렸던만큼 미켈란젤로의 목과 어깨는 점점 뒤틀려갔다.
천장에 그림을 그린 방식은 ‘프레스코’ 기법이라고 한다. 반듯한 자로 그림이 그려질 부분의 길이와 넓이를 잰다. 큰 종이에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종이를 천장에 대고 밑그림을 따라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 마지막으로 구멍이 난 부위를 목탄으로 두드려 스케치를 마친 뒤 그림을 그린다. 이 기법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천장 위에 석고를 바른 뒤 시작해서 굳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만일 잘못될 경우 석고를 다시 뜯어내야 하기에 굉장히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천장에서 계속 떨어지는 석고를 받아내는 그의 왼쪽 얼굴은 점차 흉하게 변해갔다.
망가지는 몸만큼이나 그의 마음 또한 괴로웠다고 한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자신이 원하는 조각을 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이 더 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썼던 아래 편지 내용을 통해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의욕을 잃은채 풀 죽어 지내고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에 대가를 받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이 일은 몹시 어렵고, 무엇보다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년 반을 꼬박 매달리고 나서야 마침내 천지창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형편 없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며 대놓고 조소하던 대다수 예술가들과 군중들의 예상은 깨부숴진다. 의뢰인인 교황을 크게 감동시켰고, 그를 대놓고 무시하던 라이벌 라파엘로의 인정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그의 화법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상은 이토록 떠들썩했지만 정작 미켈란젤로는 조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를 자축할 새도 없이 곧바로 성당 내부를 장식할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에게 천지창조는 자신의 본분이라는 조각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는 결코 경제적 보상이나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오로지 조각 뿐이라는 일념으로 오랜시간 고통을 견뎌낸 것이다. 하루는 그의 친구가 성당으로 찾아왔다. 몸을 배배 꼬면서 천장 구석까지 세밀한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구석까지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고 한들 누가 알아주겠나?” 미켈란젤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대답하고 작업을 계속 했다고 한다.
“내 자신이 알고 있다네.”
사진으로만 봤던 천장화를 한 눈에 담기 위해 머리를 최대한 뒤로 젖혀보았다. 그 웅장함에 눌려 입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금세 목뼈가 아려온다. '난 1분도 버티지 못하는 자세인데, 이 사람은 4년 반을 버티며 끝내 그림을 완성하고야 말았구나.’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조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원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자신이 알아주면 된다며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본분을 다하기 위해 초월적 노력을 쏟아붓는 인간이 얼마만큼 성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