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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쓰는 세계여행기
by 두 개의 등대 Feb 18. 2018

상식과 비상식 사이

인도 델리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한 시각 밤 8시, 밖은 이미 깜깜한데 숙소조차 미리 알아보지 않은터라 막막했다. 입국장을 통과하자마자 허름한 공항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당장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론니플래닛 가이드북을 펼쳐봤다. 공항열차 같은건 꿈도 꾸지 말란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 오른쪽에 보면 시내행 버스 티켓을 파는 노란색 부스가 있을거라고 했다. 그러나 공항 밖은 어두컴컴한 포스를 뿜어대는 황량한 도로와 어디로 가는지 모를 현지인으로 붐빌 뿐, 아무리 찾아봐도 매표소는 커녕 안내판 하나 보이질 않았다. 한참 뒤 도착하는 버스 한 대를 잡고 기사에게 물었다. 시내 나가는 버스가 아니라고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거야?’ 자신감이 팍팍 떨어지고 있던 찰나, 한 서양인이 다가오더니 시내까지 어떻게 나가는지 물어온다. 나도 바로 그걸 고민하고 있었거든! 친구 이름은 스테판, 독일에서 온 내 또래의 배낭여행자였다. 우리 둘은 다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을 붙잡고 시내 나가는 교통편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게 알아낸 단서는 <공항 바로 앞에서 녹색 버스가 오면 무조건 타라> 였다. 행선지 하나 써 있지 않은 녹색 버스가 곧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우리나라 장마철 불쾌지수 최고치가 100이라고 하면 여긴 200은 될 것 같은 날씨다. 밋밋한 아스팔트 도로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온통 주황색이었다. 길가에 아무렇지도 않게 웃통을 벗고 널브러져 자고 있는 크고 작은 남자들이 보였다. 끊임 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는 괴로움을 넘어 하나의 협주곡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듯한 고약한 체취 비슷한 냄새까지, 세상의 모든 불쾌함을 다 모아 놓은 듯한 환경에 불평할 생각도 못할만큼 나의 오감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둘러싼 호객꾼과 오토릭샤 기사들 때문에 혼이 다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양 쪽 귀를 틀어막고 우선 오토릭샤를 하나 잡았다. 걸어서 5분 거리를 20분 동안 뱅뱅 돌고 바가지를 썼다. 지칠대로 지쳐 한 호객꾼을 따라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인 허름한 여관 같은 곳에 짐을 풀었다. 스테판과 방을 같이 쓰기로 했고, 만6천원을 숙박비로 지불했다. 네팔 출신이라는 호텔 직원은 인도 첫 날 우리의 모진 고생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인도에서 처음보는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곳은 여행하기 정말 위험한 곳이니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해!" 몇 번이나 겁을 주었고 우리 둘은 얼어붙었다. 결국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잘 수 있었다.


 ‘삐--------익, 삐----익, 삑!’


기계음을 내는 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이제 고작 아침 9시, 겨우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을 열어젖히더니 "I want this room!" 다짜고짜 방을 빼라고 세 번 외쳤다.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사라졌다. 너무 황당해서 옆에 일어나 앉은 스테판을 보다 눈이 마주쳤다. "이게 바로 인도구나.” 라며 동시에 쓴웃음을 삼켰다. 주섬주섬 짐을 싸야만 했다.



 델리 기차역에 티켓을 사러 가는 길, 수 많은 호객꾼에게 시달리고 모든 기력을 잃었다. 스테판과 앞에 보이는 공원 벤치에 널브러졌다. 곧 한 구두닦이 청년이 와서 내 슬리퍼에 관심을 보였다. “굉장히 멋진 신발이네요!” 이거 3천원짜리 슬리퍼라고, 닦을 필요 없다고 타일렀지만 막무가내였다. 구두닦이 청년의 구애를 간신히 뿌리치고 나니 이번에는 희끗희끗한 콧수염을 가진 한 할아버지가 소리 없이 내 옆에 앉는다. 내 귀에 작고 부드러운 붓 같은 것을 집어넣고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비벼 매끄럽게 돌렸다. ‘내가 귀지를 잘 안 파긴 하지만 이 정도로 더러운 사람이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귀지가 끝없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 하루종일 곤두서있던 신경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눈을 감은 채 할아버지에게 귀를 맡기고 있었다. 그 찰나 아까 포기하고 돌아간 줄 알았던 구두닦이 청년이 다시 나타났다. “인도에 이런 질 좋은 슬리퍼는 없어요.” 라며 무방비 상태였던 날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내 슬리퍼를 막무가내로 벗기려고 했다. 무릎을 굽히고 발 끝을 벤치 밑 최대한 깊숙한 곳까지 숨겨봤지만 무작정 뻗어 오는 손길을 피하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슬리퍼가 실수로라도 벗겨지지 않도록 발가락에 온 힘을 주고 버텨야했다. 결국 그 청년은 “나 상처받았어요. 나쁜 사람.” 이라는 마지막 말로 내게 정체 모를 죄책감을 남기고 퇴장했다.


 귀 청소가 끝날 무렵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수첩을 꺼내서 보여줬다. 귀지를 판 사람들의 방명록이었다. 방명록에는 한 영국인이 생애 첫 귀청소가 너무 행복했다며 80달러를 남겼고, 다른 친구는 60달러를 주었다는 내용을 포함해 온통 돈 얘기 뿐이었다. 아차 싶었다. 잔돈이 없다며 어르고 달래 8달러라는, 하루치 여행예산에 해당하는 큰 돈을 주고 나서야 간신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스테판을 잊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스테판도 그 할아버지의 동료에게 귀청소를 받고 40달러를 주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렇게 무한정 나온 귀지가 모두 가짜였다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기차표를 샀다. 그런데 표에는 차량 번호나 출발 시각 등의 중요한 내용이 나와있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기차표가 있을 수 있지?’ 의아해하며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봤다. 저 반대편을 가리키며 10번 창구에서 물어보라고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창문 안에 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듯 창구에 무질서하게 달라붙었다. 이내 한 경찰로 보이는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목을 잡아 뒤 편으로 내동댕이치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고, 평온을 되찾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낭여행자 사정에 걸맞는 가장 저렴한 3등석 표를 손에 쥐고, 기차 출발시각인 오후 2시20분에 맞춰 플랫폼으로 갔다. 이미 기차 안은 수 많은 사람과 보따리, 여행가방과 같은 짐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줄을 길게 서 있는 승객들은 자신이 탑승할 차례가 되면 기차 안으로 억지로 몸을 밀어 넣어야만 했다. 곧 기차는 터지기 직전의 김밥이 되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탈 수 없다고 생각한 찰나, 한 중년 남자가 문 양쪽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위태롭게 매달린다. 그 다음 차례인 한 젊은 남자가 기차 벽면을 암벽등반하듯 기어오르고, 앞서 문 앞에서 매달린 사람의 어깨를 넘어 기차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그 과감함과 참신함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 누구도 이 불편한 상황에서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매우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기차를 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상식 밖의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무질서가 판을 치는 곳이 바로 인도의 첫 인상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하나하나가 다 지저분해 보이는 눈쌀이 절로 찌푸려지는 환경, 여행객들에게 어떻게든 지갑을 열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장사꾼, 여행객의 편의는 눈꼽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대중교통, 외국인을 무심함을 넘어 불쾌하게 생각하는 듯한 현지인, 줄서기 보다는 새치기가 더 보편적인 듯한 질서의식, 그 외에도 인도에서 겪은 비상식적인 일을 얘기하라면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 더 견뎌보니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사기꾼은 많았지만 길에서 시비를 걸어오거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경찰이나 직원의 통제에는 잘 순응했다. 현지인은 대체로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듯 하지만 그게 외국인이 싫어서라기보단 낯설어서 그런 듯 했다. 덕분에 과한 관심을 받지 않으니 여행하기가 오히려 편했다. 현지인들은 일반적으로 도구 없이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데, 현지인만을 위한 허름한 식당에서도 외국인이라며 숟가락을 알아서 챙겨주곤 했다. 인도 남자들은 굳이 오른손으로만 악수를 청해왔는데 왼손은 용변 후 뒷처리를 위해 사용하는 손이라 그렇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 왔던 비상식이 이 곳 사람들에게는 상식이고, 질서가 없는 것 같지만 나름의 조화로움이 있는 그들만의 인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상식이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이다.> 라고 말했다. 나의 이 불쾌함도 한국에서 25년에 걸쳐 쌓이고 화석처럼 굳어진 ‘상식’이라고 불리는 편견에서 비롯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과 비상식을 가르는 잣대는 누구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이 세계의 모든 사람을 일관된 잣대로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도를 여행하며 각자의 환경,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는 공동체마다의 다른 잣대가 있다는게 더 맞는 말 같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그들만의 세상을 불평하기에 앞서 먼저 그들의 상식을 존중하고 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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