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암만
2009년 11월 중동의 가을, 이집트 누웨이바에서 배를 탄 뒤 요르단 아카바에 내렸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암만까지 장시간 이동했다. 다음 날에도 여독이 풀리지 않아 하루는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침대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는데 한 젊은 흑인 남자가 배낭을 매고 도미토리 안으로 씩씩하게 들어왔다. 보통은 자기 침대에 짐을 푼 뒤라야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도할 것 같은데, 배낭을 맨 채로 곧장 내게 다가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이름은 마크, 자메이카계 영국인이라고 했다. 그 직선적인 움직임에 처음엔 약간 경계심이 들었지만, 이내 그의 사소한 몸짓과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참 경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말이 많은 친구였다. 그런데도 대화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몇 분 전에 만난 사람일텐데도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친밀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솜씨가 남다른 친구라고 생각했다. 마크는 그 솜씨의 비결을 공개했다.
“난 사람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과 이렇게 대화하는게 좋아.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해.”
마크는 볼 일이 있다며 방을 나가더니 해가 진 뒤에야 돌아와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헤이 친구, 뭐하고 있었어?”
밀린 일기를 쓰고 있었다고 말하니 마크는 껄껄 웃으며 내가 노트북으로 게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왜 그렇게 일기를 열심히 쓰냐고 물어왔다. 이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보고, 무슨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 하나라도 흘려보내기 싫어 매일 매일 쓰는거라고 대답했다. 마크는 잠자코 듣더니 주섬주섬 자기 배낭에서 손바닥만한 수첩을 꺼내서 보여줬다. 자기도 이렇게 일기를 쓰는데, 직접 만질 수 있고 필요할 때 펼쳐볼 수 있는 자기 일기장이 보물 제 1호라고 말했다.
일기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마크와 더 깊은 대화를 나놀 수 있었다. 공대생 신분으로 졸업한 뒤엔 보통 전자, 화학, 석유회사와 같은 큰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겠지만, 그게 진정한 내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보다는 NGO 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마크에게 NGO에 들어가 국제구호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마크는 내 말을 듣더니 대뜸 이렇게 물어온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어?” 난 예상치 못한 질문이 부담스러운 듯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그 질문이 날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도 눈치 챈다. 왜냐하면 마크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난 몇 초간의 정적이 민망한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NGO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제법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지에서 틈나는대로 봉사활동을 했고, 그러면서 만난 봉사자 친구들에게 진로상담을 받고 다닌다는 녀석이 고작 이런 짧은 대답밖에 할 수 없다니.
“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호기심 가득한 그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동남아, 인도를 다니면서 틈틈이 봉사활동을 했거든. 좋은 사람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보면서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진 것 같아.”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대답에 자신이 없었다. 물어보는 마크도, 내 스스로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대답이었다.
“왜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갖게 된거야?” 난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권투경기에서 흰 수건을 던지면서 패배를 인정할테니 빨리 링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크의 질문은 이미 그로기상태인 내게 꽂히는 마지막 주먹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여러 방법이 있을거야. 그런데 왜 꼭 NGO에 들어가고 싶다는거야?"
마크와 나눴던 이 잠깐의 대화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상대방의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거기서 떠오르는 진정한 호기심을 질문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모든 눈빛과 몸짓과 표정으로 그 질문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것. 그 덕분에 겉멋으로 치장된 껍질 속 감춰진, 그 일에 대한 신념으로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내면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왜 NGO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대학교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에 참가했던게 그 시작이었다. 미얀마의 한 고아원에서 조를 나눠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방 안 모든 불이 꺼졌고 갑작스런 상황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나타난 아이들이 줄줄이 촛불을 들고 지나가며 참새같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난 그 장면을 봉사활동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런 순간들이 내 삶에 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 마음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NGO에 대한 환상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세계여행 중에 태국에 있는 그 봉사단체에 다시 찾아가보기도 하고, 워크캠프라는 국제 봉사활동도 신청해서 태국 소수부족을 위한 일을 하기도 했다. 인도에선 티벳인의 자립을 돕는 작은 단체에서도 일해보고, 테레사하우스에선 죽음을 코 앞에 둔 사람들을 돌보는 일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 많은 봉사자들은 무언가 알맹이가 있었다. 타인을 돕는 행위에 각자의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일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도 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봉사단체를 이끄는 리더들은 무척이나 열정적이고 로켓 같은 추진력을 가진, 팔방미인 사업가 같았다. 자기 안위만 챙기기에도 힘이 부치는 낯선 땅에서,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이자 마음가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와 내가 원하는 삶과의 연결고리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라며 이리저리 재고만 있었다. 그런 내가 이 진로를 고민할 자격에조차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계속 고민을 이어간다. 난 진정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걸까. 셋 중에서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구별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때와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린다. 사람을 위한 일을 하되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사람을 돕겠다고, NGO 직원이나 봉사자로서 직접 도움을 주기 보다는 간접적이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고 싶다고. 그 수단으로 택한게 라이프코칭과 글을 쓰는 일이다. 이 길에 확신을 더해가기 위해 세계여행하던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만약 지금 마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10년 전과 똑같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난 이제서야 떳떳하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일이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