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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쓰는 세계여행기
by 두 개의 등대 Mar 11. 2018

눈 감고 걸어보기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출발한 버스는 13시간 뒤인 다음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흙색 위주의 일층 혹은 이층 건물들이 넓은 길을 따라 질서있게 정렬해 있었다. 명도가 높은 건물들은 아침 햇살을 반사해 마을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는 듯 하고, 건물 1층엔 스타일리쉬한 수작업 간판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여행사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꿈의 여행지라고 불리는 우유니 사막, 바로 그 앞에 있는 마을치고는 조용하고 단정된 느낌이라 그 소박한 첫인상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한 여행사를 통해 1박2일 투어를 신청했다. 소금사막 한가운데 있는 유일한 건물이자 숙소라는 소금호텔에서 24시간 자유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날 마을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정해진 일정에 쫓길 필요 없이 소금사막의 온전한 하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갈수록 기대감이 커졌다.


 모래사막이라면 고운 모래입자들이 바람에 날리며 지형의 굴곡을 만들어낼텐데, 여기 단단하게 굳은 하얀색 소금 바닥은 평평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땅이 지평선을 경계로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 누군가 바느질로 달아놓은 듯 몽글몽글한 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입에서 “우와!”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소금 호텔


 사막 더 깊숙한 곳엔 그리 크지 않은 1층 건물이 외로이 놓여 있었다. 소금으로 만든 벽돌로 지어진 숙소였다. 건물 뿐만 아니라 테이블, 의자, 침대 같은 가구도 모두 소금만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장소였다. 기사는 홀로 1박2일 투어를 택한 날 남겨둔 채 다른 당일투어 여행객들을 데리고 떠났다. 다른 투어에서 온 사람들도 모두 떠난 오후 3시, 호텔 직원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함만 남은 세상에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인지라 소금 바닥 위에 넓게 고여있는 물에 하늘과 구름이 거울처럼 비쳤다. 그 풍경을 보니 마치 내가 구름 위에 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초월적 존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벅차오르는 기분에 “난 할 수 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쳐봤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끓어 올랐다. 점점 더 신이 나서 평소 부를 엄두도 못내던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부르다 삑사리를 내기도 하고, 몸치인지라 평소 꽁꽁 감춰두기 바빴던 춤 실력을 마음껏 뽐내보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주위 시선을 신경쓰느라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라며 내 마음이 원하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내 맘대로’ 놀다보니 어느덧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있는대로 찡그리고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저 멀리 손톱만한 크기로 보이는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눈을 감아봤는데 그 경험이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 이렇게 눈을 감고 뭔가에 부딪치거나 넘어질 걱정 없이 걸어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그 느낌이 궁금해져서 아예 눈을 감고 숙소 도착할때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호기롭게 출발한터라 초반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가벼웠다. 이 황량한 곳에서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말이 온몸으로 와 닿았다. 몇 분이 지나자 두려움이 슬슬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숙소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학창시절 친구의 딱밤을 기다리며 눈을 질끈 감았을때의 두려움과 흡사했다.

 

 ‘아냐. 나 호텔까지 도착하려면 멀었어. 눈을 뜨지 않아도 충분히 안전해.’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두려움을 밀어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두려운 생각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너 맨 벽에 부딪치면 얼마나 아픈지 기억하지? 고등학생 때 걸어가다 승합차 화물칸 열려있던 문에 이마를 부딪쳐 쓰러진 적이 있었잖아.’

 ‘행여나 벽에 입으로 부딪치면 앞니 다 깨질 수도 있어.’

 ‘발가락으로 벽을 차게 되면 부러지지 않을까?’

 누군가 혼자 이러고 있는 날 봤다면 비웃었을까,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난 진지했다.


  그렇게 몇 분을 버텼고, 자꾸 도망가려는 이성을 붙들고 억지로 계산했다.  '지금까지 걸은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서 삼백 걸음만 더 걸으면 되겠다.'

  백 걸음,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실눈을 뜨려고 했다.

  이백 걸음, 마음은 끝까지 용기를 내자고 외쳤지만 두 팔은 이미 더듬이가 되어 있고, 발걸음까지 버벅이는 모양새가 마치 치명적인 에러가 발생한 로봇 같았다.

  드디어 삼백 걸음, 눈을 떴다. 하얗게 눈 부신 풍경속에서 눈의 초점을 맞추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눈 앞에 있어야 할 숙소가 없었다. 저 멀리에도 없었다. 왼쪽 90도 방향에서 여전히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을 찾았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나 대체 뭘 두려워한거야?


왼쪽 90도 방향에서 여전히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을 찾았다.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고작 15분을 눈 감고 걸었을 뿐인데, 본래 방향에서 점점 벗어났고 걸음 수도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현실과는 동떨어져서 두려움이라는 먹구름을 키운 지금 내 모습에서, 평소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걱정을 키워가면서 움츠러드는 내 약점이 오버랩되었다. 대학생 시절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전과를 신청해놓고, 새로운 전공도 나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다가 면접을 포기했던 일이 떠올랐다. 수능시험으로 내 인생이 결정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고3 시작부터 재수를 선언한 뒤 게임에만 몰두한 적도 있었다.  


 눈을 감고 걷는동안 내내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사실 그 실체가 없었다. 순수하게 나 혼자 만들어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실체가 있다고 치더라도 부딪칠 가능성이 1%도 안될 저 작은 숙소일 뿐이었다.



 또 벽에 좀 부딪친들 어떤가. 머리에 혹 하나쯤 쓱쓱 문지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부딪쳐서 주저앉으면 창피하기도 하고 못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혼자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한다는 그 자체가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데 말이다. 실체 없는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눈치 보는 삶보다는, 내 의지대로 세상을 살면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고 싶다. 그래야만 작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행복해지는 진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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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세계여행을 현재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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