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by Light of Life

이 이야기는, 한겨울 미국의 외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생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20대의 내가 겪었던 사고 이후,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마흔을 앞두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한국에 도착하니, 오히려 새로운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미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였을까. 타인의 시선이 그다지 의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봐, 나를 못 알아볼까 봐, 나를 불쌍히 여기진 않을까.
그 모든 상상이 나를 더 위축시켰다.

나는 본래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집안에서도 늘 인정받아야 했고, 외모나 실력으로 칭찬받는 일이 익숙했다. 그러니 이제는 하루아침에 ‘동정’ 혹은 ‘불편한 관심’의 시선 속에 놓일 수 있다는 현실이 막막했다.


특히 학교로 돌아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20대의 여대생이 사고로 얼굴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학교 친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고 소식을 들은 친구들로부터 온 전화와 메일이 있었다. 괜찮다고, 곧 복학할 거라고 말해야 했을까.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간만 흘렀다.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얇은 자존감 위에, 타인의 인정으로만 나를 지탱해왔던 걸까.


복원 수술을 위해 한국에서 유명한 병원을 찾았다.
사고 전, 마지막으로 찍은 내 사진을 들고.
의사 선생님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래도 최대한 해봅시다.” 라는말로 실낱같은희망을 주셨다.

그 중 일부 수술은 수면마취 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하루 종일 들었던 MP3를 귀에 꽂았다.
익숙한 노래들을 최대 볼륨으로 틀었지만, 수술 도구의 소리는 자꾸만 귀를 뚫고 들어왔다.
수술대에 수도 없이 누웠지만 그 날은 두려움과 긴장감에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히 배었다.

아마 수술이 무서워서라기 보다 달라질 내모습이 예측이 되지 않는 또다른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수술 후 붓기가 조금씩 가라앉자, 서서히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스쳐가는 인상은 예전과 닮은 분위기를 주기도 했지만 확실히 거울 속 얼굴은 얼굴형도, 코의 모양도, 눈매도 모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변한 얼굴처럼, 나의 삶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을 거라는 조용한 기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