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 이야기는, 한겨울 미국의 외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생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20대의 내가 겪었던 사고 이후,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마흔을 앞두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그를 만난 건, 그 다음 해 여름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무더운 여름, 한 영어학원의 스터디 그룹에서 처음 그와 마주했다.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여전히 어색해 말없이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본 듯했다.
별다른 말 없이 앉아있던 내게도 매번 따로 문자를 보내 스터디 자료와 진도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말을 트기 시작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그는 학교 앞 스터디 카페에서 모의 테스트를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앉아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춰보았다.
그 시간들이 유익했을 뿐 아니라,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내 흉터, 많이 눈에 띄어? 흉하지는 않아?"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잘 안 보여. 그리고… 예뻐."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이 어쩌면 별것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내게는 너무도 큰 위로였다.
누군가에게 다시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마음이 찡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수술이 이어졌다.
커다란 붕대를 감고 만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해주었다.
그의 자연스러운 태도 덕분에, 내 이마의 흉터가 옅어지는 만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도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도 누군가에게 평범하게 사랑받을 수 있구나.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고마웠던 그와는 여러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었지만
지금도 마음 한켠에 그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 있다.
편견 없이 나를 봐줘서 고맙다고.
내 자존감을 조금씩 다시 쌓아올릴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