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 이야기는, 한겨울 미국의 외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생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20대의 내가 겪었던 사고 이후,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마흔을 앞두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겨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날이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긴장과 피로가 겹쳐서 땀이 등에 흥건히 밴 채였다. 한겨울인데도 나는 기력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간신히 좌석에 앉아 숨을 고른 뒤,공항 서점에서 산 얇은 소설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사고 이후로 활자를 오래 보는 것이 힘들어져 있었지만, 책장을 한두 장이라도 넘기고 싶었다.
모자를 벗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추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누군가 보는 것이 아직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책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내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셨는지 조용히 말을 걸었다.
“Do you need help?”
나는 고개를 저으며 “No thanks.”라고 짧게 답했다.
그 말 이후, 아주머니는 한동안 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I hope you don’t mind me saying this, but… you are beautiful.”
얼결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미소 지은 얼굴로, 망설임 없이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건넸다.
“You are beautiful.”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조차 들은 적 없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 한마디가 내 안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Thank you.”
가까스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흐르는 구름이 어딘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나 인사치레 같지 않았다.
마치 나라는 사람 전체를, 오랜만에 누군가가 온전히 봐준 느낌이었다.
그 말이 내게는, 오랜 어둠 속에서 처음 마주한 햇빛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