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는 없다

by 풀빛

살기 가득한 그림자는

집요하게 나를 쫓았다.


골목과 골목을 지나

아슬하게 좁은 높은 담장 위로

나는 숨이 차도록

달렸다


겨우 방에 숨은 나를

기어코 찾아낸 그림자는

방문을 부술 듯이 흔들었다.

쾅쾅쾅쾅쾅쾅 그 틈으로 보이는 그림자

나는 자물쇠에 생존의 희망을 걸었지만

낡은 자물쇠는 힘 없이 끊어졌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기억은 잠시 사라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손에는 검은 비닐이 들려 있다.


사라진 기억의 시간 동안

나는

그림자를 토막내 흔적없이 묻고,

멈춘 심장만을 남겨

검은 비닐에 담았다.


나를 쫓는

그림자는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