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느리게 크는 걸까

실패하는 글쓰기 (4)

by 연한보라
성격이 급한 김에 느린 성장이 속상하다


키는 중1 이후로 크지 않았기에, 당연히 키를 말하는 건 아니고 왠지 모든 것에 더디게 성장하는 듯한다.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들만 결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쯤엔, 느린 성장이 괜스레 속상하고 밉기도 했다. (요즘에는 그런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 없이 큰 줄 알았더니 그냥 늦은 나이에 지랄 맞게 겪었고, 좋아하는 색도 옷도 없는 줄 알았더니 그저 몰랐던 것이다. 좋아하고 잘 맞는 사람에 대해서도 뒤늦고 느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자기주장이 또렷했던 친구들이 멋있었는데, 사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그냥 내 의견이 뭔지 몰랐던 것임을 깨닫는다. 그런 것을 알게 될 때마다 과거의 절절매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느리게라도, 이제라도 발견해서 다행인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이유는 나는 늘 앞서 나가고 싶은 성격 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체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갈 때도 버릇처럼 맨 앞으로 앞장서 나가거나 (어딜 가는지 모르는데도 그런다), 일을 시키실 때도 마감 기한보다 늦은 적이 거의 없이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최근에 깨달은 두 가지 분야의 느린 성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 혼자서 지내는 시간의 소중함과 좋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둘,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이끌리는지도 느리게 알아가고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좋다


12월 말에 군산 여행 갔을 때 깨달았는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 언제나 친구들이나 가족과 여행을 갔던 것과 달리 생애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갔었는데 그게 너무 편하고 좋아서 행복했다. 물론 언제나 카톡과 SNS로 사람과 이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어디 갈지 정하고, 혼자서 이것저것 해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혼자서 자는 밤은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것도 금세 극복한 것 같다.


어제 만난 친구들이 군산 여행 너무 재밌어 보였다고 해서,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어"라고 했더니 "드디어 혼자의 재미를 느끼는 나이가 되었군"해서 웃겼다ㅋㅋㅋㅋ 그녀가 나보다 어리다는 점에서 더더욱 ㅋㅋㅋㅋ 그렇지만 그녀는 나보다 결혼도 먼저 하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인생 선배니깐 맞다고 고개 끄덕였다.


마음이 끌리는 사람


또 하나는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못 찾았었는데 최근에는 조금 또렷해진 것 같다. 짧게 요약해서 말하면 메타인지가 높은, 설득력 있지만 사고가 유연한 사람을 좋아한다. 아직도 좀 어렵지만 풀어서 쓰자면 아래와 같다.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

모든 것이 잘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장점과 한계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이런 사람들은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맡은 일을 해내고, 한계점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직업이 뭐든 상관없다. 분명 본인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을 테니, 그런 태도만 있다면 충분히 멋질 것이다.


<설득력 있지만 사고가 유연한 사람>

ESFJ인 나는 의견이 다른 사람의 얘기에 경청할 수 있고, 공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득은 쉽게 당하지 않는다. 공감과 설득은 다르다. 공감은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그럴 수 있지'하는 것이고 설득은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당하다고 나도 느껴'로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공감해도 딱히 설득당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건 상관없는데, 오히려 공감을 못해도 설득을 당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말을 잘하거나 논리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뿐 아니라 납득시켜 준다. 이 부분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라면 응당 의견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이 있을 때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의 경위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며 합의점에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 공감이 가지 않더라도 설득이 되면 그의 결정을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의견차이를 단순히 힘의 논리로, 강압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아보는 시점에서 이 점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사고가 유연한 사람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유연하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가한 것이다. 내가 설득만 되면 다름과 차이점을 이해하듯이, 나 또한 내 행동과 이유를 얘기했을 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각자에게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느리게 성장하지만,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내 눈이 뾰족해지고 밝아져서 좋은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은 싱글 여성의 글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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