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글쓰기 (3)
부모님은 우릴 경제적으로 부족하게 키우시진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을 주시진 않았다. 그렇다고 돈을 못 쓴 건 아니었고,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넉넉하게는 아니었고, 언제나 제한이 있었으며 그 돈을 쓰고 얻게 된 재화 또한 다 확인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탈선으로 가는 모든 길 차단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용돈으로 만화를 빌려보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군것질거리를 사 먹을 때 우린 그러지는 못했다. 군것질은 솔직히 좀 부러웠지만, 다행히 만화는 그렇게까지 흥미롭지 않아서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재밌게 본 만화가 '너는 펫'이었다. 만화는 평소에는 못 빌려보지만, 친할머니댁에 놀러 갈 때는 할 일이 너무 없었기에 예외적으로 대여가 가능했다. '너는 펫'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성공한 커리어우먼 '스미레'가 우연히 길에서 주운 청년 '모모(다케시)'를 펫으로 키우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다. 어린 나에겐 적당히 자극적이고 재미난 이야기였고, 그림체가 예뻐서 2D미소년과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용돈이 있었다면 그 만화를 빌려볼게 아니라 소장하고서 계속 보며 덕질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그 만화가 생각나서 검색해 보니 카카오페이지에 있어서 어른이 된 나는 무려 5만 원이나 써서 온라인 소장본으로 만화를 모조리 다 사서 다시 읽었다. 재밌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읽으면서 펑펑 울어버렸다. 모모의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현재 최애의 모습과 캐릭터가 너무나도 비슷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15살이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나 장르가 꼭 같아 변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럽게도 울었다.
2D에 있는 미소년을 좋아하는 거나 닿을 수 없는 무대 위의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모두가 좀 바보 같아서 운 것 같다. 정상적이지도 않은 어떠한 설정과 플롯에서 설렘을 느끼면서 현실의 사람과도 사랑하고 관계를 맺길 바라는 모습이 미련스러워 또 울었던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최대치의 설렘과 사랑은 진짜 세상에 없는 가짜뿐인데 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런 곳에서만 마음이 뛸까.
바보가 아니니깐 안다 나도, 그런 것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걸. 그래도 좋아지는 마음까진 내가 어떻게 멈출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고 용납해 주려고 몇 년을 보냈는데,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건강하게 덕질하려고 하는 것, 건강하게 팬 친구들과 지내려고 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잘못된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최애를 향한 나의 욕심은 아직도 한도 끝도 없어서 나를 갉아먹고 있고, 함께 덕질하려고 친해진 친구들에겐 각자의 결핍이 있어서 관계 자체를 유지하는 게 너무나도 피곤하다.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진행한 봉사활동 뒤에는 그저 어울리고 놀려는 마음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는 진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읽은 박지완 감독의 에세이 <다음으로 가는 마음>에는 '나의 사랑은 정확한가'라는 챕터가 있다. 검정 수컷 푸들 '토토'를 향한 작가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챕터를 읽으면서 또 눈물이 났다. 그녀의 질문들 "나는 토토를 왜 이렇게 사랑하는가", "나의 사랑과 토토의 행복은 얼마나 가까운가"가 내가 하는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최애를 애완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에게 정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나는 정말 토토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정확하고 부디 좋은 것이길 바란다." 하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그 말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다. 나는 최애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책을 한 권 써서 세상에 내놓았는데도 아직도 내 사랑에 대해서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만큼 노력했는데도 아닌 것 같으면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뭔진 몰라도 우울한 기분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2025년은 진짜 힘겹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