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직장인 k양의 초대석
이번주는 정말로 바빴다.
어떻게 왜 바빴는고 하면,
지방에 산다고 유세를 부리며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몰린 일을 미친듯이 처리하고 서울로 갔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12시 넘어서까지 일하고 다음날 기차타고 갔어요.
직장인 k양 첫번째 게스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당탕탕 함께 자란 베스트프렌드 j양이다.
그녀는 3J를 갖춘 시대의 여성이다.
3J는 자립, 자차, 자가를 뜻하는 용어로서 30대 j양은 위 조건을 모두 갖춰 무려 나를 기차역에서 픽업하여 자신의 33평짜리 아파트에서 재워 주는 아량을 발휘했다(그렇다. 부러워서 강조한 것이 맞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친구'라는 세계에 처음 찾아온 인물이다.
당시 나는 공부를 잘할 '것' 같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보잘것 없고 심지어는 이기심만 가득한 생명체였는데,
그녀는 그런 나와 급식을 함께 먹어주고 내 말도 안되는 망상들에 공감해준 대단한 인내의 소유자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남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법도 배우고, 내가 먹을려고 쟁여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법도 배웠다.
또 내 친구가 다른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내가 그것에 함부로 분노하거나 화내면 안된다는 사실도 배웠다.
아...j양...내 인생에 큰 역할을 했네 했어.
j양이 이렇게 갖춘 3J는 어쩌면 내게 베푼 친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이 주신거지. 나를 잘 돌봐줬다고.
아...그럼 결국 내가 해준게 되나? 깔깔깔깔.
j양의 회사 선배들이 추천한 차돌박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먹으면서 그녀의 어머님과 짧은 영상통화도 하고, 고깃집 사장님께 서비스로 조개구이도 얻어먹었다.
내가 샀다(강조).
가만히 앉아 그녀의 베란다에 놓인 에탄올램프를 바라보며 불멍을 했다.
나는 청약 당첨 언제될까? 일요일에 출근해야 되나?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녀는 이렇게 천장을 비추는 램프도 선물을 받았는데(인생을 참 잘 살았지),
무려 그녀가 게임에서 만난 21살 짜리 남성(aka 애기)이 집들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바람의 나라에서 바람은 어쩌면 인연이 아닐까?
j양이 자정을 넘겨 사준 참치회 세트다.
내가 그녀의 남자친구 j군을 보고 가야겠다고 우겨서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먹은 음식이었다.
그러고 내리 앉아 3시간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그러니까 법이 아닌 다른 일을 하여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참 재미있으면서도 그저 내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찾아오는 온갖 사건들만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세상에 나쁜놈들만 사는건 아니잖아?
일반 회사에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성과금 이야기, 복지포인트 이야기, 젊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다.
그 중 복지포인트를 롯데백화점에서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으로 들렸다. 언젠가 j양이 나를 백화점으로 데려갈 그 날을 기다리며...
같이 사전투표하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역시 나다.
신용카드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라며 주민등록증을 놔두고 오는 바람에 투표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국수나무에서 국수 얻어먹고, 아메리카노도 얻어먹은 후 이 도시를 떠났다.
k양의 주말초대석 두 번째 게스트는 포르투갈 리스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 중 대기업에 다니는 h양의 복지혜택에 기대 국내 굴지의 5성급 호텔에 숙박하는 영광을 누리러 갔다.
근데...일단 먹어야 하니까 유방녕에서 중국음식을 땡겨보았다.
아주 맛있었다.
분명히 경기도에서 버스타고 올라올 때부터 어플리케이션으로 대기했던 것 같은데, 카멜커피는 끝끝내 가지 못했다.
주말이 되면 더현대서울로 모이라는 모종의 지시가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게 돌고 있지 않나 싶다.
지방 사람인 나로서는 그 압도적인 사람 수에 놀라 더 이상 더현대를 구경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바로 방으로 올라감.
혼자 해외여행을 가면 생각하게 된다.
아 혼자라서 참 좋다.
아 혼자라서 참 자유롭다.
아 혼자라서 좋긴 한데...한국인이 사진좀 찍어줬으면 좋겠네.
아 혼자인건 외롭다.
사람이 보고싶다.
고 하여 번개처럼 인터넷으로 모인 사람들.
그렇게 맞이한 인연이 벌써 햇수로 3년이 되어가고 있다.
한 사람은 오래 다닌 회사에 지쳐 영혼을 치유하러 온 여행이었고, 한 사람은 오랜 여행에 지쳐 치유하러 온 여행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나처럼 오랜 공부에 지쳐 살기 위해 온 여행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만나 맨날 맨날 술만 먹고
별 것 아닌 것에 하늘이 솟은 듯 크게 웃으면서
매일 서로의 사진을 사진가보다 더 많이 찍어주고
별로 관심 없던 근교여행까지 다녀오면서 지냈다.
여의도에 오면 생활치킨을 먹어요.
언제부터냐 하면, 나의 p군이 여의도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호텔에 묵었던 그 밤부터 그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호캉스에서 잠도 자지 못했다.
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이야기가 창 밖에 비치는 한강만큼이나 마르지를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온다는 것은 세계가 온다는 것이라는데,
내게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느라 바빴다.
역시 나만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구나.
생물 선생님답게 언제나 엔돌핀이 도는 순간이 이어져야 하는 우리 y양은 호캉스 가서 할 것 없으면 어떡하냐고 출발 전부터 걱정을 했었다고 전해지는데...
걱정은 커녕 다들 너무 웃어서 갈비뼈가 아프다고 나를 탓했다.
점 100원으로 정해 jk언니가 들고온 고스톱도 치고 난리를 피웠는데 나한테 패가 너무 잘붙어서 깜짝 놀랬다(도박개장죄 아닙니다. 돈 정산도 안했어요).
고스톱을 치면서 혹시 지난주에 cs오빠가 사준 로또가 당첨이 되나 하고 혹한 마음에 기다리게 될 정도였다.
그렇게 잠도 못잔김에 일어나서,
해 뜨는 한강을 바라보며 연신 사진만 찍었다.
눈꼽도 못떼고 바라보는 한강.
역시 배산임수 입지의 효과는 굉장하다.
그렇게 떠들던 우리는 노티드 도넛까지 먹고 나서야,
다시 각자의 세계로 떠났다.
나는 봄이 온 척 나의 눈을 속인 겨울을 만나 오돌오돌 떨면서 버스를 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그 와중에 쇼핑하다가 회사 ex상사님 만났다. 세상충격...근데 내가 너무 사랑하고 애정하는 부장님이셔서 그저 반갑고 신기했다)
아 저기 오신다.
k양의 세 번째 게스트는 바로, 나의 사랑하는 대학원 친구들이다.
그리고 저기서 손을 흔드는 분은 어둠의 대학원 시절 내게 수많은 위로와 채찍과 공을 들여 만든 자료로 구원의 빛을 내려주신 분이다.
아무 생각 없이 후암연립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mbti에 과몰입하여 금새 서로의 성격에 대한 특징을 늘어놓았다.
늙은이들도 mbti 과몰입할 수 있어요. 왜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그나마 본 지 얼마 안된 친구도 있었다.
기억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은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내게는 거의 미화되지 않은 그 시절에 우리는
늦게 일어났다고 자신을 탓하고, 글을 빨리 쓰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외워도 외워도 외울게 남았다고 서로 힘들어하며 그 시간을 손 꼭 잡고 버텼다.
물론 혼자 남아 각자도생하는 이 시간의 나는, 스스로 내 손을 꼭 잡고 버텨야 한다.
그래도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서 다른 조합의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기에, 이번엔 그놈의 지긋지긋한 취직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
왠걸?
역시는 역시다.
남자이야기, talking about love, xy염색체를 가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다 나왔다(같은 말^^)
그러고는 나를 데리러 온 p를 앉혀놓고 언니들은 내가 왜 좋았냐, 나를 언제 처음 만났냐고 물어보았다.
p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나 혼자 부끄러워서 생난리를 치다가 나왔네...ㅎ
언니들 미안...
너무나 살고 싶었던 후암동의 풍경.
p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카페에서 나오자 마자 그런 말을 했다.
이 동네에 집 사고 싶다며.
그래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돈만 있다면 말이야.
모두와 헤어지고 p를 만나 찾아간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
브런치에 블로그까지 하는 s가 추천해 준 카페인데, 너무 먹고 싶어서 추워도 덜덜 떨면서 기다렸다.
역시 주황과 메탈, 커피색의 조합은 최강이다.
바에 앉아서 연거푸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확실히 커피에도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은 mj의 말마따나 희한하게도 더 정통으로 흐르고 있다.
에스프레소라니
저 쓴 것을 내가 이렇게 좋아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잔 깊숙히 녹아내린 설탕을 휘적대며 마시면 잠도 깨고 지친 마음도 깬다.
p가 돌아왔으니 내 독사진도 돌아왔다.
고마워.
너무 추워 실내에서 놀 곳을 찾다가, 용산 아이파크몰로 갔다.
가자마자 제일 먹고 싶었던 내 소울푸드를 먹었다.
라면
무선 이어폰 없이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지만, 라면 없이는 살 수 없다.
일주일에 두 개는 먹어야 한다.
너무 잘 먹어서 아마 p가 놀랬을 것이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을 보는데,
선거철의 진풍경이 나를 마주하더라.
저 푸른 색깔을 보라. 통일된 풍경의 모습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가에 상관 없이 고양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월요일 나를 출근케 하는 직급별 식사의 시간도 찾아왔다.
이번엔 어떻게 모두 타이밍이 맞았네.
정말 다들 된다고 할 때 얼마나 행복하던지...원래는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했었는데, 나중에 친구들과 언니가 된다고 할 때는 너무 신나 무슨 메뉴를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사람들 없었으면 나...회사 계속 다닐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니까.
대학원의 터널이 지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손잡고 걸어갈 사람들이 또 있었네.
참고로 로또는 안됐다.
fxxxxxxxxxk.
그래도,
살만한 인생의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