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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Feb 20. 2022

음주운전자들은 효자일 가능성이 높다?

병약한 노모를 홀로 모시는 가장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사건

  음주운전 사건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차를 몰았고, 음주측정을 당했고, 수치가 나오면 기소된다. 그리고 그들 중 대게는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음주운전 사건들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바로 거의 대부분의 항소이유서에서 발견되는 비밀스러운 특징으로, 피고인들이 '효자'라는 사실이다.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제3항은 음주운전을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0.2%, 0.08%, 0.03%로 각 나누어 각 1호, 2호, 3호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징역형 또는 벌금형으로 차등하여 처벌한다.

  이처럼 위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기준에 따라 적용법조가 선택되고 처벌범위가 결정되다 보니, 다른 사건들에 비해 이리저리 다투기 보다는 오히려 운전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제 피고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바로 '양형'이다.


  이제 피고인들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면서 나에게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내가 왜 감형되어야 하는지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설파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음주운전 사건들을 처리할 때마다 목도하는 것이 바로, 음주운전자들의 가족이야기가 주말드라마 설정 저리가라하게 눈물겹다는 것이다(사기, 횡령, 강제추행 등에서는 못 본거 같은데...피고인들 중 가족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나?)


  그 예시를 나열해보면,

암에 걸린 노모의 항암치료길에 사고를 낸 것이라던지(아니 왜 부모님 항암치료 하는데 본인이 술을 먹고 운전을 하는지? 부모님은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다 같이 저세상을 갈 생각인건지? 혹시 그 조차 지극한 효심인지?),

노모를 홀로 부양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음주운전을 했다던지(홀어머니 부양과 음주운전간에 양의 상관관계 있나요?),

심지어는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셔서 급하고 속상한 마음에 술을 급하게 먹은 후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면허취소에 이르는 상태에서 새벽 2시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는 지극한 효자도 있다. 얼마나 어머니가 걱정되었으면 그 시간에 그만큼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을까?


  물론 법원에는 그런 중요사항들을 열심히 메모에 기재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메타버스 세상이 왔다는 이 시대에, 성리학을 필두로 하는 유교사상이 우리에게 준 중요한 가치, 즉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면 심성이 착하니 봐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을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야말로 눈물겹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착한 사람이면 죄를 지어도 봐줄 수 있는 것일까?   죄를 지었으니 이제 나쁜 사람으로 변모되는 과정이 아닌지?

  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원래 노모, 노부가 아닌가? 운전면허를 취득할 나이에 있는 성인의 부모님이라면 응당 노모와 노부가 많을텐데...


  이렇듯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가족사를 지녔으니 음주운전을 봐 달라는 전제를 이해할 수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음주운전 사건에서 중요한 요소,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의 탄원서가 있는지,

술 먹은 상태에서 얼마나 먼 거리를 운전했는지,

음주운전 전력은 몇 회나 있는지,

마지막 음주운전 전과는 몇 년도에 있었는지,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어느정도인지에 살뜰한 열정을 쏟는다.


  오늘도 들어온 음주운전 사건 신건메모를 쓴다.  전과에는 벌써 음주운전 전력이 4회 있고, 당연히 이번에도 불쌍한 노모를 홀로 부양하고 있다.

  

  효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럼 술 먹고 운전하지 마세요.


  오늘은 엄마한테 연락해야지. 음주운전 사건이 내게 주는 거의 유일한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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