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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Nov 24. 2022

작은 선행을 파동삼아, 켜켜이 밀고 나간다.

노력하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찾은 시간들

“어떻게 하면 더 노력할 수 있을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 청춘을 바쳐 공부에 매진했다.

와중 골몰한 것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 그 자체 보다는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책상에 앉는 방법이 뭘까를 더 많이 고민했다.

도서관에 도착하기만 하면, 시작은 곧잘하는 나였어도, 도서관에 가기가 죽기만큼 싫었다.

그렇다.

이번 일기는, 어떻게 하면 더 노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한층 심도 있게 고민한 주간에 관한 기록이고

그만큼 일하는 것이 고되었다고 말하는 푸념이기도 하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밥을 사는 일도 그렇다.

사람이 비는 자리에는, 누군가 들어오기도 하는 법.

새로운 사람이 왔음을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일년 가까이 힘껏 모른척했다.

화장실 가는길 마주칠 때마다, 생긋생긋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이상하던지.

‘나 이렇게 고독하게 이 층에서 썩어가고 있는데, 니가 밥 좀 사라’는 무언의 요청같이 느껴지고는 했다.

내가 졌다. 결국 동기들과 그들 방의 문을 두드리고, 밥과 술을 샀다.


알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 밥을 사고,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주 즐거울 것이라는 걸.

그러면서도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고 있는데, 내가 왜 남의 집 자식들에게 밥을 사기 위해 체력을 소비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에, 누구누구 님이 아니라, 누나 밥 먹었어?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는 태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된다.

결혼이 내년임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소파를 고르러 갈 때에는 내리 3시간 검색만 해도 지치지를 않지만, 소위 말하는 스드메를 준비하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졸립고 따분해진다.

덕분에 결혼 날짜도 잡지 않고 있다가,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엄마와 p의 간곡한 요청에 겨우 예식장을 잡은 것이 최근이다. 그것도 친구가 추천해준 메이크업 원장님의 스케줄에 맞춰 말이다.

누구는 길일을 잡아 결혼한다고 하던데, 우리에겐 그런거 없다.

원장님이 가능한 날짜가, 곧 결혼기념일이다.

아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당연히, 다른건 아무것도 준비한게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2주간 일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했다.

hs언니가 사준 콜드브루를 일주일만에 동내면서까지.


왜 최선을 다했을까?

정말이지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서, 많고도 많아서 고통스러웠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고, 대충 하겠다고 하면서도 모니터 앞에 앉아 노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그 다음 마주할 풍경이 어떤 것일지 안다고, 분명 모르겠다는 생각 속에 갇혀 온 세상이 흐릿해질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힘들수록 일단 한 발짝 내딛어야 한다, 어려울수록 일단 뭐라도 적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며.


모르겠다. 왜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럼에도 시간은 간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어김없이, p가 온다.

그런데 어떡하지.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니가 와도, 나는 나갈 수 없다고. 나는 내 자리에 고요히 갇혀, 내가 모르는 것들에게 조용히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이 모든 것들의 1/10이라도 이해를 하고 쓸 수 있어야만 너를 만나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만 시간을 더 주면 나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무 연락도 없는 나를, 그는 끝내 데리러왔다.


결국 일요일의 나에게 모든걸 맡겨둔 채, 그를 만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토요일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토요일은 금요일과 일요일의 중간이고, 금요일에도 회사, 일요일에도 회사인 것이 보통이므로, 중간지대인 토요일은 나에게 스위스와 같은 존재다.


토요일에는 밖으로 나간다.

이마트에서 장도 보고, 빈티지 가구와 예쁜 문구 그리고 창 밖의 햇살조차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휘낭시에를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P의 양 팔이 터지도록 무겁게 장을 봤다.

그리고 파스타를 해먹고, 집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깨닫게 됐다.

무려 내일은 일요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일이 가기 전 너랑 오늘을 더 즐겨야 한다.


심야영화를 보러 나가고 싶다고 했다. 너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라지사이즈 팝콘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은 새로 생긴 영화관에 앉아 리멤버를 봤다.

남주혁이 범인도피죄로 기소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궁금해하면서, 신나 감자탕이라도 먹고 들어가자는 나를 보며 너는 웃는다.

안된다고, 내년이 결혼식이라고.

누군가 장난을 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월요일이 이렇게나 빨리 올 리가 없고, SY언니가 이 도시를 떠날 날이 벌써 올 리가 없다.

벌써 월요일이라니. 벌써 P가 떠났고, 사랑하는 그녀도 새 직장을 찾아 날 떠날리가 없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이 도시를 떠나 넓은 세상을 찾아, SY언니가 떠났다.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힘들다고 힘껏 징징거리는 나를 끝까지 달래고 또 보살펴주던 언니는, 마지막까지 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들을 사주며 말했다.

우린 헤어지는게 아니라고, 니가 내년에 올 곳으로 나는 먼저 가 있겠다고.

와중에 겨울 코트도 샀다.

이유를 대자면, 당근마켓에 올려둔 자켓 6개 중 4개를 팔았다. 과도하게 사는 것은 지구에 해만 될 뿐이라며, 가진 것을 처분하지 않고서는 사지도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2달 전이다.

2달 간, 비록 2개는 팔지 못했지만 4개라도 쓰임이 있을 누군가에게 나누었으니 1개 정도는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에 들어 더욱 좋았다. 소비에 죄책감도 덜 느꼈고 말이다.

벌써 겨울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겨울은 아직인가보다.

이 도시의 거리를 수놓는 은행나무가 그걸 증명한다.

바닥도, 하늘도, 사방이 노랗다.

기분이 좋아 오늘의 꽃을 사 들고서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아 물론, 이 날도 토요일이었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나를 보러 와 준 P가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는 길,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 밤이 바짝 달려오고 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거리를 수놓는 가로등의 존재감이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벌써 토요일이 지나는 건가 못내 두려워진다.

그가 찾아온 식당은 흠잡을 데가 없다.

웬만해서는 고기를 팔지 않는다는 사장님도 멋지고, 보틀이 아니라 반 병씩 맛볼 수 있는 와인구성도 좋았다.

술에 잔뜩 취해 이것저것 떠들었던 것도 좋았고, 식당에 놓여진 조명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저거나 살까 했던 시간들도 좋았다.


하지만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은, 그러니까 나를 더 큰 노력의 세상으로 떠밀어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계산하기 전 으레 건넨 사장님의 질문 덕분이고, 정확히 말하면, ‘오늘 무슨 날인가봐요?’ 에 대한 P의 대답 때문이다.

‘아니요, 오늘 아무날도 아니에요. 그저 즐거운 토요일이에요.’


들으며 생각한다.

혹시 그것 때문일까? 그것 덕분에 노력할 수 있었을까?

자주, 너와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맛있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벌고 더 떳떳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난 2주간, 왜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 이유를 찾은 것은,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였다.


P를 보내기 전 들른 백화점에서, 신발을 고르던 중 P가 엄마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엄마는 나한테 전화하지, 왜 쟤한테 전화를 하나 싶었던 순간 알았다.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집에 놔두고 왔나보다 싶어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P가 말한다.


‘너 핸드폰 버스에 두고 내렸어. 그 버스에서 핸드폰 주운 사람이 니 폰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했고, 어머님이 지금 나한테 전화하신 거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마등처럼 생각이 지나간다.

핸드폰을 바꾼지 1달도 되지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해둔 사진들과 적어둔 생각들, 다 어떡하면 좋나.

그 사람이 나한테 보상비로 얼마나 요구할까, 막상 주겠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나, 내 폰을 찾으려면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을 이잡듯 뒤져야만 하는건 아닐까.


기차고 뭐고, 택시를 타고 쫓아가 그 사람이 있다는 버스정류장에 다다라 휴대폰을 건너받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으레 휴대폰을 다시 찾은 사람이라면 해야 할 것만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사례비로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


머릿속으로 10만원이면 되나, 5만원만이 적정가였던가? 감가상각을 생각하면 완전 새 것이니, 사실상 30만원은 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던 중 그런 소리가 들린다.

‘어유, 소름돋아.’

‘저도 아이폰 씁니다. 잃어버리면 슬플 것 같아요. 안녕히 가세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베스킨라빈스 앞에서 만났으니,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드리겠다’며 상대방을 붙잡고 있는 P와 나만 이상한 사람 같고, 상대방은 싫다며 계속 떠나려고만 한다.


P는 웃고,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기차역으로 돌아가기 전 감자탕을 먹으면서도 이상한 기시감 같은걸 느낀다.


마침내 답을 찾는다.

이번주, 나는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이토록 열심히 노력했구나.


니가 사는 세상과, 저런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고 싶어 매주 자리를 지켰구나.


작은 선행을 파동삼아, 하루하루를 켜켜이 밀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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