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체기를 확 뚫어주는 정리 처방
정리 업체를 부르기로 결심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내 밑낯이 다 까발리는 느낌이기 때문에. 사실 낯이 뜨겁다. 견적 받을 때도, 정리해 주실 때도. 내 책이나 옷들을 통해 내 취향, 내 직업 등도 다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모자란 어른인지를 내보이는 것 같아 낯이 뜨겁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더 살고 싶지 않은데 혼자서는 끝낼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육아를 하든 안 하든 시간이 더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단시간 내에 버리고 분류하는 결정과 실행을 동시에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업체는 모든 물건을 다 꺼내놓는 방법을 쓴다.
원래 물건은 어디 넣어두고 안 보이면 잊는다. 굳이 꺼내어 다시 정리할 시간과 여력을 내기 어렵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모든 물건들이 헤집어져 꺼내지면 내가 가진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를 체감하고 버릴 용기, 결심을 그래도 조금은 더 쉽게 하게 된다.
그리고 빈 공간을 체감하게 하는 방법도 효과가 크다. 뭐든 꽉꽉 채워놓고 사는 우리에게 빈 공간이 주는 개운함을, 그리고 공간을 여유롭게 수납하는데서 오는 심적인 여유도 느끼게 한다. 한 번 그 맛을 느끼고 나면 물건에 대한 집착을 스르르 내려놓게 된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부탁을 한다. 돈을 내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쓰는 입장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너무나 친절하게 이 물건은 필요한지, 어디에 놓으면 될지를 물어봐주신다. 나는 질문해 주실 때만 그 하나의 물건에 집중해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정신노동만 주로 하면 된다.
"취미 부자시네요."
"트렌드에 민감하시네요."
"소금이 정말 많아ㅋㅋㅋㅋㅋ"
"같은 통이 너~~~ 무 많아요. 설거지를 안 하겠다는 거죠~~ㅋㅋ한 개만 놔두고 버려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힘들지."
"플라스틱 용기 쓸 거예요 유리 용기 쓸 거예요? 유리를 쓰고 싶으면 플라스틱부터 없애야 돼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편의성,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어서 어렵지."
"글 써요. 자기가 잘하는 거 하면 되지~ 손으로 만드는 데 왜 시간 써요. 나는 돈 벌면 되지."
진짜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에 대한 통찰의 메시지를 정리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받았다. 끌어 모으고 버리지 못하는 내 습관과 분류가 어려웠던, 좇고자 하는 여러 가치관이 내 안에 혼재해 불협을 내고 있던 것까지. 뭣이 더 중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물건을 버리고 분류라면서 자꾸 묻게 된다.
누군가 내 살림을 자기 집처럼 정리해 주고 같이 밥을 먹으면 내 식구, 내 편이 많이 생긴 느낌이었다. 든든한 응원군들. 이제 유지하고 더 가꿔나가는 건 내 몫이지만 우선 내가 꿈꾸던 대로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인테리어보다 훨씬 더 만족감이 높다.
신랑이나 엄마나 누가 잔소리 없이 이렇게 내 살림, 집안일을 내 맘같이 이렇게 정리해 줄 수 있나? 아무도 없지.
돈이 안 아까울 정도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그리울 것 같다. 특히 같이 복작복작 우리 집 식탁에서 밥 먹던 한 시간의 식사시간이 가장!!ㅎㅎ 전우애가 생긴 기분. 집이라는 매일의 전쟁터에 홀로 던져진 채 참패하며 매일 피철철 흘리고 있다가 전우를 얻은 기분!!
정리라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참 멋져 보인다. 오랜 생활의 지혜와 연륜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 가장 깊숙한 곳의 체증을 뚫어주는 마법 같은 일인 것 같다. 다른 이의 생활 방식, 성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공간을 돌보아준다는 건 사랑으로 내 공간을 일궈왔던 이들이 아니라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그런 지난한 세월을 지나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다. 내게 이런 최고의 선물을 주신 정리 업체 엄마들, 언니들께 감사 또 감사♡ 많이 창피하니까 고객으로서의 나는 까맣게 잊어주시길 바라면서. 작업 중 나의 포커페이스는 다만 너무 몰아치는 의사결정사태로 렉 걸린 상태였다는 걸 양해해 주시길. 좀 더 세심히 살펴서 뭐라도 대접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 가득이지만 쿨하게 안녕하고 또 부를게요~~ 하나 사면 하나 버리는 삶, 매일 버리고 공간의 여유를 느끼는 삶을 살기로 약속 또 약속합니다♡
PS. 정리업체 부르는 거 못마땅해하던 신랑이 퇴근해서 집 보자마자 하는 말.
"내가 딱 하려던 그대로 해놓았구만."
아오ㅋㅋㅋㅋㅋㅋㅋ그럼 진작에 이렇게 해놔 주시던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 무튼 맘에 든다는 얘기다.
공간이나 인테리어 감각이 별로 없는 신랑과 백날 얘기해도 답안 나오던 공간이 정리 업체의 가구 몇 개 배치 이동 만으로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었다!! 이제야 속이 뻥!! 이사실감. 신랑이 동의하지 않으면 혼자 가구 배치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져봐도 늘 결재대기 상태라 답답했는데.. 뚫어뻥!!
모든 우리 옷을 안방에 다 걸어서 색깔별로 수납해 주시니 신랑 왈.
"내가 검정티가 이렇게 많았어??"
백날 얘기해도 시각적 효과를 못 이긴다. 옷이 끌리니 세심하게 봉까지 높여서 다시 달아주시고, 예뻐 보이는 가구 제자리를 딱딱 잡아주신 덕분에 이제야 진짜 새 집 같다.
아침에 눈떠서 모든 루틴이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웠고 물건을 찾느라 짜증 날 일이 없었다. 아, 이런 일상의 행복을 어떻게 돈으로 사나 했는데 샀다♡ 살 수 있다!!
#정리업체후기 #ACE정리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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