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율 Nov 07. 2023

엄마의 시간

엄마에게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뭘까

"주중보다 더 바쁜 엄마의 주말"


주말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쉬기 위해? 놀기 위해? 아니다. 집안일을 더 재밌게 하기 위해서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 같은, 안하면 티나고 해도 티안나는 주중 집안일의 쳇바퀴에서 

꾹꾹 쌓여갔던 욕구들, 시간이 많이 드는 일들, 버리고 정리하고 구조를 바꾸고 싶은 것들, 

이런 커다란 티나는 집안일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에! 



"창조 경제, 당근"


당근 1건당 평균 20~30여분의 이상의 시간을 쓰고 있다. 몇 천원을 벌기 위해서인가. 사실 단지 재밌어서다. 버릴 것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는 경제적 유용성, 그리고 돈 안되는 집안일을 하고있지만 돈되는 집안일이 바로 정리와 당근 판매다. 나는 당근에 중독되어가고 있다.

들어간 김에 보다가 예쁘면 좋아요를 누르고, 할인 알람이 뜨면 그렇게 반갑다. 예쁜 걸 보면 필요없어도 사게 된다. 판매한 것보다 구매한 것이 더 많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사고 나면 또 부지런히 팔기 위해 안입는 것, 안쓰는 것들을 찍고 글을 쓴다. 1인 사업자가 된 듯이. 나름의 상도덕 기준도 세우면서.



"엄마가 하는 일의 가치"


내 일의 가치가 고작 몇 천원인가? 당근 거래로 부산스레 신경을 쓰다보면 드는 생각이다. 간이 작아 싸게 내놓는다. 들어오는 돈은 적다. 

평일에 나는 즐겁게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하고 마음이 슬프거나 고단하지는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이나 주말에 반려인이 와서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짜증이 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내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종일 쉬지 못하고 움직이는데 쉬고 있는 걸 보면 화가 나는 것 같다. 그도 일하고 왔고, 집안일과 육아를 거의 동등하다시피 아니 손이 빨라 나보다 더 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남는 시간에 주로 아기 사진을 업로드하고, 맘스 다이어리에 무료 출판(이라 쓰고 부활쿠폰으로 돈 엄청 들어가는 비싼)일기를 쓰고, 종종 블로깅을 하거나 인스타를 보고, 자주 이유식책이나 육아책을 읽는다. 아가의 낮잠시간에 하는 스트레칭이나 셀프 마사지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그 다음이 나의 반려인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다. 요즘은 당근중독자로서 남는 시간에 거의 당근을 하고 있다. 집정리 시즌이기도 하고.



"물건이 많으면 시간을 버린다."


물건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물건을 사면 돈을 낭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시간도 낭비하게 된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의 육아 시간.



"쓸모있는 글을 쓰고 싶다."


구구절절 남기는 일기를 내 아이가 다 읽어주길 바라는 건 너무 가혹했다. 맘스 다이어리의 글을 폐쇄적이고  반려인과의 공유조차 어려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사라지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 남기기 위한 글 말고 쓰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한 주 에 한 번은 여행하듯 사는 것"


내 반려인은 여행을 싫어한다.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나는 계획대로 안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것이 즐겁다. 대신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반려인은 J형, 나는 P형이다. 나의 재충전과 내 아이의 경험, 그리고 내 삶을 통찰하고 대화하고 스킨십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좀 더 여유를 갖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기며 언젠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행 계획과 추진을 매주 소소하게 할테다.



"집이 젤루 좋아"


나는 원래 노마드였다. 요즘은 집이 제일 좋다. 누구를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정리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좋다. 혼자 무작정 걷다가 짧고 굵은 반가운 만남을 하는 것은 좋지만, 예정된 만남을 길게 하는 것은 피곤하다. 



"육아에서의 관계란"


임신전후 고독과 단절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육아크루'라는 앱으로 가까운 엄마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반가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월령이 같지 않아서, 취향이나 육아 지향점이 달라서, 육아 여건이나 성별이 달라서 등등 아쉽고 피곤하고 서운할 일들이 생길 거다. 또 다시 불편함에 내 세계로 들어오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삶의 방향과 기분을 유지한 채 사람들을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 이제는. 

피곤한 반려인과의 대화도 길지 않고, 그저 기분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 한 명, 육아 정보나 동네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명, 종종 속상한 마음도 술없이도 풀 수 있는 친구 한 명이면 충분하다. 



"왜 아이는 숨어서 키우라고 하는지 너무 잘 알겠는 요즘"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마음들이 있다. 집 평수나 아이의 발달 정도나 남편의 육아 참여도나 경제적 여건 등을 비교하고 아쉬워한다. 부러워하든 부러움을 받든 피곤한 일이다. 나로선 요즘 부러움을 받는 일이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고 피곤하다. 평생 부러워하고 살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위화감을 주는 상황이 되는 건 역시 별로다.



"장난감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유"


사지 않기 위해서.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빌린 장난감과 책으로 아이가 2주동안 놀다 보니, 그 외에 내가 구입한 장난감이나 책을 상대적으로 사용할 시간이 적고, 결과적으로 2주마다 장난감이 바뀌는 셈이 되어 아이가 쉽게 싫증내는 아이로 자랄까봐 조금 걱정이 된다. 똑똑똑하게 활용하고 싶다. 

이번처럼 좋은 장난감이나 책을 만나면 정말 사고싶어 지기도 한다. 점점 고르는 센스와 스킬이 레벨업하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 



"쉰다는 건 뭘까"


폰을 하는 거, 끊임없이 연결되는 거, 당근으로 재미보는 거, 자는 거, 먹는 거, 책읽는 거, 글쓰는 거 말고. 

나에게 쉬는 건 뭘까? 진짜 쉰다는 건 뭘까. 라고 쓰고 보니 울고싶은 마음이 되나.

나 진짜 쉬고 싶다.


#8개월 #엄마일기  


작가의 이전글 완벽한 하루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