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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Dec 24. 2023

우리는 같이 육아합니다.

많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육아를 함께하는, 나아가 주도하는 반려인

아이를 돌보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아이를 돌보면서 나를 돌보는 데 있다.

누군가 나를 먹여주고 돌봐준다면

내가 온통 아이만을 위해 살아도 나를 챙겨줄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육아가 그리 힘들지 않을게다.

그러나 나를 돌봐줄 그 이도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

신경 쓸 게 많다. 

먹고, 자고, 싸는 일이 거저가 아니다.

잘 먹어야 잘 싸고 잘 자는데

잘 먹이는 일도, 제 때 재우는 일도, 싼 걸 치우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반려인과 같이 아이를 낳았다.

나는 내가 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힘을 주어 아이를 세상으로 끌어냈다.

그가 둘라의 역할을 하며 자연주의 출산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를 먼저 안은 것도, 젖을 물린 것도 그였고,

젖병을 물리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준 것도 그가 먼저였다.

그는 나보다 더 능숙했고, 나는 그에게 의지하며 회복과 모유수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임신 기간 내내 누워있어야 했던 나를 

먹여주고 돌봐주며 아이 낳는 데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준 내 반려인은

그간 내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를 돌보며 우리 둘을 돌봐야 했다.

그래서 몸이 많이 상했다.


나도 출산과 완전 모유수유로 없던 통증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더 잘 먹고 잘 자는 일에만 집중한 덕분에 

몸마음이 대체로 더 좋아졌다.

나는 세상 모든 이가 임신, 출산할 때의 여성처럼 산다면

정말 건강해질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건강하게 음식을 먹고, 건강한 마음을 먹는다.

자극적인 음식을 조심하고, 생각도 몸가짐도 조심한다.


이렇게 살아야 했다.

그러지 않아서 아픈 거였다.

임신과 산후 회복의 과정을 거치며 

내내 나는 이 특별한 상황이, 내 인생에서 비정기적인 이 날들이

일상이 되게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 외에 나는 뭐가 그리 더 중요했던 걸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장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간다.

  

단유 하는 날 꼭 맥주 한 잔 하리라 너스레를 떨지만 

실은 알코올도 카페인도 그리 그립지 않다.

그게 나를 지나치게 했고 더 아프게 했다. 

더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을 쏟게 했고 내 삶의 균형이 무너지게 했다.


"남편이 많이 도와줘?"

종종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질문 자체가 참 이상하고 잘못되었다.

육아는 남편이 돕는 게 아니다. 

함께 하는 거다.

남편이 주도하는 육아도 가능하다.

아이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나인데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편은 빠른데 내가 느려서

남편은 잘하는데 내가 잘 못해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생각의 차이였다.

회식도 마다하고 

그 어떤 약속도 만들지 않으며

출퇴근 시간까지 조정해 일찍 오가는 그의 마음은

늘 기꺼이였다.

육아는 함께 하는 거라는 깊은 신념에서 나온

기꺼움이었다.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이 글은 내 반려인을 자랑삼기 위함이 아니다.

함께하는 육아가 가능하다는 이 놀라운 발견을 나누고 싶어서다.

우리의 함께하는 육아 일상이 지극한 평범함이 되어

글감이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이 글의 동력은 그런 간절함에서 나왔다.

함께하지 않는 다면 무슨 수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우리는 같이 낳고, 같이 기르고,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는 그게 가능하도록 

제도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3세까지 엄마가 길러야 한다는 것만 강조하지 말고

그게 가능하게끔 유급 육아휴직을 3년으로 연장하고

아빠 휴직도 엄마와 동시에 쓸 수 있게 해야 하며

어린 자녀를 둔 아빠는 빨리 퇴근시켜야 한다.

양가의 도움 없는 육아독립군 부부가 적어도 둘이서 힘을 모으면 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핵가족을 넘은 핵개인의 시대에 아이 기르는 일이 행복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


덧> 

이른 출근을 하면서도 새벽에 아이가 깰 때마다 늘 함께 깨어 도와줄 게 없나 살피고

퇴근하면 나와 아이의 식사를 챙기며

아이의 목욕은 언제나 자기 일로 삼는,

집안일과 요리, 이유식을 늘 함께 하는 나의 반려인, 아이 아빠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그의 헌신에 기대어 나의 부족함을 잠시나마 잊어봅니다.


- 아이의 잦은 밤잠 깸으로 몸마음이 지친 새벽녘,

아기 아빠가 아기띠로 재우고 있는 동안 숨어든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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