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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Dec 31. 2023

마음이 얄궂어질 때

아이를 잘 먹고 잘 자게 하는 일의 난감함에 대하여

아이를 향한 마음이 얄궂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는다. 애써 만든 이유식을 먹지 않을 때 주로 그렇다. 입을 앙 닫아버리고 고개를 돌리거나 음식이나 숟갈을 집어던진다. 음식을 얼굴과 귀, 머리에 문댄다.


 '얼마나 지겨울까, 얼마나 낯설까, 얼마나 재밌을까'


그리 아이의 마음을 가늠하며 한두 달은 스스로 내가 부처구나 했다. 그런데 세 달쯤 되니 웃어줄 수가 없었다. 종일 차리고 닦고 치우고 씻기고 갈아입히는데도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 거의  없다는 게 나를 지치게 했다. 잘 먹는 날에는 하나도 정말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내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어른들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모유를 잘 먹을 때도 분명 내 피를 나누는 일인데도 그랬다. 목이 말라지고 허기가 질 지언정 그렇게 힘이 불끈 났다. 죽을 홀딱 다 받아먹을 때에는 더욱 신바람이 났다.


아이가 처음부터 안 먹은 것은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분유부터 잘 먹어 살이 쪄온 몇안되는 아가였다. 일찍이 4개월 즈음부터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숟가락질을 했다. 유산균이나 비타민D를 숟갈로 스스로 입에 가져갈 줄 알았다. 처음 준  쌀미음 10배 죽은 홀딱. 없어서 못 먹었던 기억이 아득히 머나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삐뽀삐뽀 이유식 책에서 본 대로 '아이가 잘 먹으면 배 죽을 빠르게 올리라'는 말에 급격히 배죽을 올리고부터였다. 잘 넘어가던 죽이 갑자기 목에 찐득하니 들러붙으니 몇 번 켁켁대다가 먹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주도 이유식을 시작했다. 아이가 스스로 잡고 먹으니 신기했다. 원물스틱으로 주다 보니 요리 무지렁이인 나도 여러 채소나 식재료의 특성과 조리법을 익히기에 좋았다. 그러나 자주 집어던지고 음식을 가지고 놀았고 얼마나 먹었는지 양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목에 걸려 먹은 걸 다 토할 때는 정말 이건 미친 짓이구나 포기하고 싶었다. 네댓 번 그랬다. 사과나 당근, 딱딱한 쇠고기스틱 등이 주로 목에 잘 걸렸다.


처음엔 나도 아이도 신이 나서 시작했던 원물스틱 중심의 자기 주도 이유식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새로운 식재료에도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고 눈만 비벼대기 시작했고 조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아이는 기다리는 동안 내내 보채며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부엌에서만 놀았다. 애처로웠다. 출산 후 내내 사랑스럽던 마음이 얄궂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새벽에 한두 시간마다 깰 때도 인간으로서 극한에 도다랐지만 이만큼 마음이 얄궂지는 않았다.


낯선 내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시판 이유식을 시작했다. 평화가 찾아왔다.


왜 이렇게 할 일이 없지?


첫날은 텅 빈 시간이 어색했다. 보채던 아이와 충분히 놀아줄 수 있었고 기분이 좋은 아이는 시판 이유식을 더 잘 먹었다. 시판 이유식은 다시마와 채수, 육수 등으로 맛을 내서 내가 먹어도 훨씬 맛있었다. 그동안 맛이 없어 안먹었구나 깨달았다.


이제 다시 양이 늘고 이유식이 안정적으로 되자 마침 사둔 시판 이유식도 다 먹었고 비슷하게 만들어서 먹여보기 시작했다. 들깨도 사고 채수도 냈다. 처음엔 잘 먹는 것 같더니 뜨겁게 줬거나, 되게 줬거나, 입맛에 안 맞게 준 뒤에는 또 한참을 안 먹는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속이 터진다'는게 이런 마음이구나... 배우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배워간다. '배고프면 먹게 되어있으니 애쓰지 말라'는 말은 남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내 새끼 입에 뭐가 들어가는 게 힘이고 낙인 부모로서 안 먹는 채로 하루이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먹게 해야 했다.


각종 동물 소리를 내며 웃겨주고, 동요 메들리를 쉼 없이 불러주었다. 처음엔 웃으며 입을 벌리더니 그것도 한두 주 정도였다. 입을 벌리게 하는 마법의 단어 같았던 "꿀꿀"도 먹성 좋은 돼지신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이제 다른 집에 가셨는지 응답이 없었다.


같이 맛있게 먹으면 더 잘 먹었다. 거울을 앞에 놓아주고, 용하다는 배스킨라빈스 분홍 숟가락에도 줘봤다. 하이체어 대신 낮은 책상에서도 먹여보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도록 두고 식탁에 오면 먹여보기도 했다. 싫어하는 앞치마나 턱받이도 생략했다. 적어도 따라다니면서 먹이지는 말자는 원칙은 지키고 싶었다.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모든 노력에도 잠깐일 뿐 아이는 죽을 거부하고 있다. 쌀밥은 몇 번 받아먹는다. 그냥 끈적하게 넘어가는 식감이 싫은 거다.


 오늘로 이유식을 시작한 지 4개월 25일이다. 앞으로 최소 20여 년은 함께 먹으며 살아야 하는데 벌써 지쳐서 쓰나. 그런데 마음이 쓰다. 이 궂은 마음은 미움만은 아니고 서운함만도 아니요 실은 미안함이다. 자기 주도 이유식을 하다가 그것만 하면 나중에 섭식문제가 많이 생긴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죽이유식을 병행하고부터 아이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음식을 향해 뻗던 손길도 멈추었다. 수동적으로 입을 벌리고 주는 음식만 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주도와 아이주도가 병행되니 혼란스러웠던 걸까. 더 편한 하나의 방법을 선택한 듯 보였다.


모유수유가 좋다고 모유수유를 한답시고 젖을 물어야 자는 아이를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하여, 주도적인 아이로 기르고 싶다며 자기 주도 이유식을 시작해 놓고 영양에 대한 불안함에 죽이유식도 병행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그저 잘 안 먹는 아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와 미안함은 참담함에 가깝다. 마음이 얄궂다.


이런저런 정보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폰을 놓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되려 이 책 저 책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가.


육아는 책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책을 손에서 놓고 머리에서 지우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젖을 물려 재우고 먹놀잠을 머리에서 지우는 편이 더 좋은 하루를 만들었다.


글로 풀어내다 보니 마음이 참 힘들었구나 싶다. 이런 얄궂은 마음을 대면하지 않으려고 시판 이유식과 문화센터 러시를 시작했고 한동안은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이는 밖에서 더 잘 먹었다. 다른 아이들 먹는 것을 보며 배우는 듯했고, 밖에서는 집어던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것도 역시 잠깐이었다. 한 달여간의 평화가 지나가고 아이는 밖에서도 입을 앙다물고 닭고기나 치즈가 아니면 안 먹기 시작했고 급기야 하이체어에서 계속 일어나 몸을 뒤집었다.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나갔다 이유식과 모유를 먹이고 오면 몸살기를 느꼈다.


엄마는 내가 독립하고 10여 년간 늘 "밥 먹었나"가 인사였고 거의 유일한 대화였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나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밥 먹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내가 잘 먹는 걸 염려하는 이가 있다는 것, 반찬을 보내주는 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이제야 안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게 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지. 그래도 반려인 덕분에 잘해나가고 있다고 도닥여본다. 다른 모든 일 다 중단하고 요리와 이유식, 유아식만 익히고 늘어도 내 삶의 질은 200프로 향상될 것 같은데. 안 해 온 일이 버거워 자주 다른 데 눈을 돌린다. 게다가 육아에는 언제나 아이의 빠른 발달에 따른 새로운 과제가 연거푸 주어졌다. 혼자 공부하고 판단하여 해야하는 육아독립군이기에 쉴 틈이 없다.


쓰다보니 엄마 반성문이 되어간다.

나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늘 즐겁게 노래를 불러준다. 모유수유와 애정 어린 스킨십을 통해 애착을 끈끈히 만들어가고 있고, 혼자 운전해서 좋은 문화 센터 수업에도 데리고 다니며 아이와 집중 놀이를 해주며 낯가림 없이 사람들과 연결되며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게 육아독립군으로서 내가 스스로를 애써 격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위안이다.


요리가 익지 않아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손쉽고 즐겁게 못해주어 미안하고, 하나에 집중해서 오래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읽은 책에서 깨닫고 배운 걸 더 오래 진득하니 이어가지 못해 미안하다. 종종 너를 아프게 하고, 집안일을 두서없이 하느라 자주 너를 혼자 두며, 네 옷도 두서없이 당근으로 구입하여 컸다 작았다 두꺼웠다 얇았다 대중없이 잡히는 대로 입히고 있는 건 아닐까.


네가 왔다는 건 이제 실감이 나는데,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데에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너에게만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할 새가 없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새해에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 세 식구의 세끼를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본다. 미안함보다는 나의 부족함으로 요리와 이유식을 도맡듯 하고 있는 나의 반려인에 대한 감사함에 집중하며. 엄마 됨을 기다려주고 있는 아이와 반려인 덕분에 가수 된 엄마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려면 마늘 말고 쑥도 많이 먹어야겠다고 반려인은 내게 말하지만)


출산 후 1년만에 오일파스텔 잡고 휘뚜루마뚜루 그려본 그림, 육아하고 육아된 모든 이들이 청룡처럼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쓰는 동안 아이가 깼다. 내 앞에 와서 강아지처럼 납작 엎드려 다리를 동동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사랑스럽다. 제사상처럼 구석에 차려둔 아침에 남긴 이유식을 스스로 집어 먹는다. 눈물이 난다. 오늘도 사랑스럽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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