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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an 09. 2024

엄마의 생존 차박 독서

문화센터가 선물해 준 엄마의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차에서 네가 까무룩 잠이 들면 엄마는 책을 들어. 네가 잠든 잠깐의 이 시간이 어찌나 고요하고 달콤한지. 짧게는 30분에서 많게는 1시간 반정도? 책 한 챕터를 읽기에 적당한 시간이지. 엄마는 느리게 꼭꼭 씹어 필사하며 읽는 걸 좋아했는데 이젠 휘뚜루마뚜루 발췌독이나 속독이야. 도서관 반납 기한 안에 다 읽느라 사실 마음만 바빠. 네 짐이 늘어가면서 엄마 책은 웬만하면 더 늘리지 않기로 아빠와 약속했거든. 엄마는 책부자였는데 이제는 네 책이 엄마 책 보다 더 많아졌어. 이젠 네가 엄마보다 더 부자야!


오늘은 눈이 많이 왔어. 갈까 말까 고민하다 나서길 잘했지 뭐야. 네가 눈을 보며 뭔가 계속 옹알거렸어. 창밖으로 내리는 눈, 하얗게 눈 쌓인 나뭇가지며 길, 눈을 피하느라 우산을 쓰고 오가는 사람들. 그런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본 건 처음일 거야. 수업도 아무도 안온 덕분에 일대일로 재미나게 잘 놀았고. 늘 복잡하던 유아휴게실이 한산해서 이유식도  느긋이 먹고 올 수 있었지. 너는 만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말을 거는데 오늘도 그랬어. 잘 웃고 먼저 다가가는 널 보면 어린이집에 가도 참  재밌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물건은 집게손가락하나로 조심스레 만지며 낯설고 겁나하지만 적응하면 입으로 가져간 뒤에 적극 적으로 탐색을 시작하는 너.


오가는 내내 온 마음 다해 기도했어. 눈길에 안전하게 오갈 수 있기를. 돌아와서 지하주차장에 빈자리가 있기를. 네가 감기에 들지 않기를. 혼자일 땐 겁 없이 눈비에도 오가곤 했는데 너와 함께라서 온 힘을 다하게 되었어.


눈 오는 날 만큼이나 차에서 책을 읽는 것도 나름의 낭만이 있어. 좁은 운전석이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지. 뭔가 비밀스럽다랄까? 어둠 속에 약간의 빛에 의지해 읽으니 독서실보다 몰입도가 더 높지. 물론 폰만 없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렇게 가끔 드러누워 같이 자거나 글을 쓰고 싶은 날도 있어.


음.. 뭐라고 이름 붙일까? 차내독서? 차콕독서? 운전석독서? 차눕독서? 차박독서?

뭔들 이 비밀스럽고 유별난 행각에 재미난 이름을 붙여볼 생각이야.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음 귀띔해 주겠지?


아침엔 네가 찐 송이버섯을 잘 먹기에 1개를 다 먹였는데 울면서 깨어 젖 물려 한두 번 다시 재웠더니 두 시간이 넘게 잤어.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낮잠을 자고 있는 너를 오늘은 일찍 깨워야 밤에 잘 잘 텐데 엄마는 늘 그게 어려워. 세상모르게 잠든 너를 깨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늘 조금만 더 이 시간에 머무르고 싶거든.


아뿔싸. 오늘은 쓰느라 읽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잘 자 아가~♡ 너도 엄마도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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