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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an 10. 2024

보호자를 지키는 수호자

네 옆에 누워있는데 네가 거대한 존재같이 느껴져. '작은 거인'이라는 말을 네에게 써도 될까. 엄마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아.


네가 밤잠에 든 지 40분 만에 뿌엥 우는 거야. 너를 빠르게 젖마취시킨 후 엄마는 삼겹살에 깍두기를 해 먹고 있었어. 오늘 처음 해먹은 요리였어. 점심도 떡과 고구마로 때우고 점저도 어제 해놓은 걸 대충 데워먹었거든. 네 거센 울음에도 나는 느리게 움직였어. 이 식사는 나의 생존이자 존엄이다- 생각하고 차분히 마지막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지.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그고 차분히 들어서서 울며 서서 나를 찾고 있는 너를 꼭 안았어. 고기 냄새로 너를 더 깨울까 봐 입에 남은 음식을 열심히 씹으면서 네게 말했지.


"원래 젖 물고 자면 자다 깨도 스스로 다시 자기 어려운 거야. 등 대고 스스로 자야지. 엄마랑 같이 잘까? 깼는데 엄마가 없어서 울었어?"


엄마의 목소리에 안정감을 느끼는 듯 너는 안자마자 금세 울음을 그쳤어. 거울로 데려간다거나 네 울음이 잦아드는 방법을 엄마는 이제 알지. 졸린지 엄마 품에 머리를 콕 박고 안기는 너를 엄마도 더 꼭 안았어. 우린 서롤 안고 서로의 존재에 위안을 얻고 있어.  이제 11kg에 육박하는 네가 더 단단해질수록 엄마 근육도 더 단단해지는가 봐. 너를 한 손으로도 번쩍 어깨에 이고 하이가드 침대 위를 오르내리는 나를 보면 말이야.


약속한 듯 침대에 눕히니 스스로 등 대고 잘 준비를 하는 너. 옆에 누워 배를 쓰다듬어주는데 5분도 안되어 깊은 잠에 들었어. 잠거부를 하며 언제나 안아 재울 때마다 울던 네가 스스로 누워 평화롭게 스스로 잠에 빠지는 모습만큼 감동적이고 성스러운 순간은 없을 거야, 엄마에겐 말이야. 나와 너만이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순간, 예쁘고 아름답고 소중한 이 밤의 조각들이 모여 너와 나를 끈끈히 이어주겠지?


참, 오늘 네가 걸었어! 완전히 손을 놓고 여섯 걸음 이상!!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래서 삼겹살 파티를 연거야. 네가 처음 고개를 들었을 때, 뒤집었을 때, 한참만에 드디어 되집기를 했을 때, 배밀이를 시작했을 때, 기고 앉았을 때, 섰을 때, 벽을 잡고 걸었을 때... 그 모든 너의 발달이 하루하루 올림픽처럼 놀랍고 경이롭다가 사실 요즘엔 좀 시들해져 자연스러운 TV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은 진짜 눈물 나게 기특하더라.. 분명 네가 내게 걸어와 안기는 모습을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 네가 손을 놓고 내게 걸어오는데 엄마는 너를 안고 뒹굴뒹굴 몸으로 신나게 놀고 목마도 두세 번 태웠어. 너를 번쩍 드는 내가 낯설고 신기했어. 내 팔뚝에 근육이라곤 없거든.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온전히 너와 놀아주거나 너를 보고 있거나 네 곁에 있으면 너는 아주 오래 잘 놀아. 그런데 엄마가 설거지나 빨래 등 집안일을 하기 시작하면 네 곁에서 멀어지는 엄마를 울며 애타게 찾고 계속 엄마 주변에서 잡고 서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다리 아래로 까꿍 놀이도 하지. 요샌 숨바꼭질 까꿍 놀이에 한창 빠져있어. 구석에 들어가서 미동도 없이 있다가는 엄마가 찾을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지. 10개월이 네가 어쩜 그리 숨죽여 기다리는 밥을 벌써 아는지? 그러다 엄마가 오래 안 찾으면 소리를 내서 힌트를 주더라. 그러다 엄마가 찾으면 까르르 까르르 경쾌한 걸음으로 책장을 잡고 걸어 나오지.


넌 다 느껴. 엄마가 힘없이 그냥 웃어줄 때와 진짜 웃겨서 웃을 때를 구분해. 엄마가 억지웃음을 지으면 너도 웃는 둥 마는 둥 하다 안 웃어. 신기해. 진짜 다 아나 봐. 넌 다 알아듣고 다 느끼는데 말을 못 할 뿐이란 걸.


그런데 참... 하지 말라는 건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지? 워터펜 먹지 말래도 '지지'라고 해도, '안 돼'라고 해도 입에 가져가 쪽쪽 빠는 건 별개로 본능이 이겨서 너도 어쩔 수가 없었던 걸까? 기저귀 갈 때 일부러 멀리 도망가면서 까르르 까르르 술래잡기하며 장난칠 때는 꼭 청개구리 같고.


네가 하는 말을, 네가 내는 옹알이를 알아듣고 싶어. 오늘은 '영차 영차 여차 혀챠 혀타 햐탸 하탸'
그랬는데 그게 '그네타'일까 '아 좋다'일까 너무 궁금해.....


분명히 엄마가 네 '보호자'인데 너를 내 '수호자'로 느끼는 건 왜일까? 네가 날 지켜주고 살리고 있다고 항상 생각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괴력의 소유자로, 몇 배의 체력으로, 행복감으로, 삼시세끼 먹는 일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네 덕분이야. 네가 태어나면서 나도 다시 태어난게 틀림 없어. 내가 너를 낳은 것만이 아닌거야. 네가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던거야 뱃속에서부터. 심장 소리로, 태동으로, 지금은 웃음과 울음으로.


엄마는 너를 낳고 너도 날 낳았지.

엄마는 널 먹이고 너도 날 잘 먹게 해.

엄마가 널 재우면 네 온기로 깊이 잠들어.

엄마가 웃으면 너도 웃고 네 웃음도 나를 웃게 해.

엄마는 너의 보호자, 너는 내 수호자.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 키우지.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고 있어.

연결되고 있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어.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네가 날 살게해.

ㅡ<제목미정, 글노래 초안>


네가 뱃속에 있을 때 만들어 불렀던 <태동쏭>에 이어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어. 1년만일까. 그래도 더 게으름 피워볼래. 지금은 자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먼저 살자. 그리고 놀아 보자. 오늘을 기억하며 마음껏 기뻐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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