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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an 20. 2024

"대체 무엇이 '과한 자극'일까요?

10개월 엄마의 불금이란

"애를 2시간이나 카시트에서 재우는 건 아동학대 아니 영아학대 아닌가요?"


"20분 거리, 왕복 40분 거리의 문화센터를 수업이나 시설이 좋다고 주 2회나 차로 오가는 건요?"


"의사표현도 못하는 만 1세 아이를 엄마가 버겁고 발달에 좋단 이유로 보호자 없이 기관에 보내는 것은 어떤가요?"



갑자기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던 날, 스스로에게 쏘아댔던 날 선 질문입니다. 어제였어요.


다시 문화센터 새 학기 등록 기간입니다. 어린이 집 순번이 왔고 내년 복직이 예정되어 있지만 한 학기 늦게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수업에서 아이가 사람을 정말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 선생님에게 매달려 웃으며 신이 난 아이를 보니 다시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유식을 안 먹어 화가 나는 날에도 흔들립니다. 잠을 안 자는 날 또 흔들리죠.. 어린아이에게는 좋은 어른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내가 과연 좋은 어른인지를 묻습니다. 


가끔 아름다운 교감 속에서 육아효능감이 높은 날, 자신 있는 날도 있어요.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영 자신이 없어집니다.




만 3세까지, 적어도 만 2세까지 만이라도  엄마가 데리고 있겠다는 첫 마음은 좋았습니다. 첫 학기에 내내 데리고 있다 보니 심심하고 우울해지고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집안일을 멈추지 못해 잘 못 놀아주더라고요. 




그래서 나갔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신이 나서 문화센터에 등록했죠. 확실히 재미있고 시간이 잘 갔습니다. 그런데 혼자 10kg 아이와 이유식이 든 기저귀 가방을 챙겨 운전해서 오가려니 몸살이 나기도 했죠. 오갈 땐 분명 좋았지만 다음 날 에너지가 바닥입니다. 오늘처럼 그릇을 깨기도 하고 말이죠..




아이가 이제 걷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려면 차도 많이 태워야 하고 카시트에서 재우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미안해지는 때에 문득- 진짜 아이를 위한 건 가만히 집에서 (엄마가 보기에) 심심하고 안전하게 두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어요.




저는 '과자극'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장 우려했습니다. 용기 있게 고백하건대, 제가 어른 ADHD이기에 아이도 나의 정신없음과 두서없는 과한 에너지를 닮지 않을까를 걱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 점점 더 많아지는 ADHD 아동들의 심각함을 많이 보고 들어왔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적절한 자극은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과한 자극은 나쁘죠. 그런데 이 '적절함'이 부모들에겐 참 어렵습니다. 






대체 무엇이 '과한 자극'일까요?






문화센터 수업을 처음 들은 날, 아- 저는 이 수업 자체가 과자극이라고 생각했어요. 음량이 아주 큰 디지털 미디어 기반의 동요 음악, 마이크로 전해지는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리고 화려한 코스튬을 입고 부모님이 사진을 찍는 시간. 아주 시끄럽고 정신이 없습니다. 이게 과연 좋은 교육일까? 처음에는 많이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집에서 촉감놀이 못 시켜주고 책 하나 끝까지 못 읽어주는 제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감사하게 다녔습니다. 많이 배워서 집에서 해줘야지 했지만 다녀오고 나면 그날은 에너지가 없고요, 다음 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게 그냥 지나갑니다.




'빛'과 '소리'가 나는 '건전지'로 움직이는 장난감을 주로 과자극을 준다고 하여 피하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런 장난감이 새로운 인지적 자극을 주기도 합니다. 계속 원목 장난감과 소리 없는 책만으로 노는 것도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적은 아이에게는 별 자극이 되지 않아요. 저는 제 아이를 관찰한 결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로 문화센터를 오가며 아이가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손에 소리 나는 장난감을 쥐어줘도 밖을 더 오래 보는 경우가 많아요. 바깥 풍경들 자체가 아이에겐 더 새롭고 큰 자극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는 건전지 대신 연료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옴짝달싹 못하는 카시트에서 하루 40분을 앉아있고, 잠들 경우엔 내리면 바로 깨기 때문에 한 시간 반씩, 왕복해서 3시간 정도를 카시트에 앉아서 자는 날도 있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세상모르게 잡니다. 차가 멈춰도 차문을 세게 닫아도 자요.. 차의 진동과 카시트의 적당한 조임이 엄마 뱃속 같아서일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척추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도 아이를 깨우지 못합니다. 주로 젖을 물려 재우고 있어요. 젖물잠, 드라이브로 쉽게 재우는 요행을 부리고 있는 엄마인 저는 아기띠로 안아 재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를 앉아서 자도록 카시트에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운전석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나는 나쁜 엄마일까요?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내 시간이 달콤합니다. 초콜릿 같아요. 달콤 씁쓸합니다. 끝맛은 늘 이런 미안함과 자책으로 쓰거든요. 집에 있으면 절대 못 읽고 못 쉽니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쌓여있는 설거지와 바닥에 구르는 이유식 패잔병들을 그냥 두고 자거나 쉬기란 정말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아이의 발달에 '적절한 자극'일지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엄마의- 그래요, 나의 몫입니다. 문화센터 수업으로 아이는 분명 좋은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속도보다는 빠르고 조금 과합니다. 아이가 충분히 관찰하기도 전에 촉감놀이 시간 10분은 끝이 나죠. 아이의 집중력은 굉장히 짧지만 주변을 관찰하느라 집에서보다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또래 친구들과 다양한 사람들(엄마들- 주로 여성)을 만나고 있다는 거예요. 대형 쇼핑몰에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도 관찰하고, 수많은 물건들을 봅니다. 책에서 "책/가방/신발"을 보며 말해주는 것보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직접 가리키며 알려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느 육아서에서는 쇼핑몰이나 대형마트는 아이에게 '과자극'이고 좋지 않다고 단언했어요. 발도르프 육아서에서는요. 




문자 도입도 늦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자/숫자 교육이 벌써 이루어지는 수업도 있어요. 처음엔 충격이었죠. 벌써?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그래 '학습'이 아니라 '노출'인데 뭐. 그냥 공연 한 편 보고 오는 셈 치자며 아이의 주의력 결핍을 염려하는 저는 앉아서 듣는 그 수업을 아직도 취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개월인데 벌써 가만히 앉아서 40분 동안 수업을 듣게 한다니요?? 처음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아이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용하는 다른 수업과는 달리 그 수업의 선생님께서는 책상에 기어오르려는 아이를 제지하며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기어가려는 아이를 잡으려고 실랑이하며 진을 다 빼고 첫날 수업이 끝났어요. 그리고 바로 취소하려 했죠. 


그러다 선생님께서 보통 4주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더 심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을 믿고 좀 더 들어보기로 했어요. 하지만 두 번째 수업에서도 역시 아이가 잔뜩 화가 났어요. 책상 위를 기어가고 싶은데 못하게 해서요. 목마도 태워주고 안아서도 들었지만 아이에게는 기어가지 못하게 하는 좌절감만이 기억되었겠죠? 그리고 세 번째 수업에서는 드디어 가만히 앉아서 꽤나 잘 들었어요. 자다 깨서 바로 들어갔기 때문이죠. '비몽사몽 전법'을 쓴 거죠. 이대로면 계속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어주면 한두 페이지 듣다가 기어가거나 걸어가 버리고, 자기 주도 이유식으로 이거 깨작 저거 깨작 장난만 치며 노는 아이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10개월 아이의 모습이 아닐까요. 주변에서 자주 엄마 무릎에 앉아 끝까지 한 권의 책을 곧잘 읽는 아이, 주는 대로 밥을 잘 받아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을 때면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불안함과 걱정으로 과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엄마는. 집에서 과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환경을 정리했습니다. 소리 나는 장난감은 다 넣었어요. 그러고는 돌아다니는 수업 말고 차분한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평화롭고 차분하고 즐겁게.







놀아주려 하지 않아요. 그냥 놀아요.






기분이 가라앉았어요. 주로 이유식을 거의 다 남겨서죠. 이런 기분으론 웃음이 안 나와요. 아이는 더 보채죠. 기분 전환을 위해 동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디즈니 OST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췄죠. 보채던 아이는 갑자기 까르르 웃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어요. 우리는 같이 춤을 췄습니다. 얼마나 행복했게요? 제가 좋아하는 디즈니는 100%의 확률로 저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듭니다. 


행복한 엄마를 보면 아이도 같이 행복해지나 봐요. 놀아주려 하면 보채고 짜증을 부리던 아기도 엄마가 놀면 같이 따라 놉니다. 반드시 아이의 눈높이에서 동요를 듣고 아이의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아도 돼요. 저는 가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대신 제 책을 봅니다. 아이를 안고 제가 책 읽는 모습을 보게 그냥 둡니다. 아이는 새로운 질감의 책장에 더욱더 관심을 보이죠. 저는 아랑곳 않고 저의 독서를 합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은 위안으로 저를 이끌어주네요. 잘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나는 오늘도 나를 보듬습니다. 다 알고 있네, 아는 걸 행하기 어렵지, 지속하긴 더 어렵지, 하지만 노력하고 있네, 잘하고 있어. 그래그래, 괜찮아. 아이와 네게 최선의 선택을 할 거야. 최고의 선택이 아니어도 네가 결정한 건 최선의 선택이야.




'문화센터, 어린이집, 과자극.' 한 주간 제 머릿속을 맴맴 돌던 3개의 키워드와 함께 얽힌 내 고민과 반성을 풀어내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불금입니다. 엄마의 불금이란 이런 것입니다.




#1 다방지기의 편지

'돌을 앞둔 내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며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셨다면 어떤 모습이신지 함께 나누어주시겠어요?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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