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 아이와 단둘이 12시간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는 것
아이를 세상에 초대한 건 나다.
우리가 이 아이를 세상으로 간절히 불러냈다.
어째서 오늘처럼 종일 아이와 행복하게 놀지 못했을까 어째서.
몸이 아팠다.
아이에게 매일 또래와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육아서에서는 강조하고 있었다.
가정보육 중인 나는 열심히 밖으로 매일 나갔다.
평지에 살지 않는 터라 나가자면 차를 타야 했다.
매일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카시트에 실었다 내리고 다시 유모차를 펴고 짐을 싣고..
다른 게 아니라 그 노동이 혼을 쏙 빼놓는다.
게다가 아이가 졸려하거나 울면 깜빡이를 켜고 급히 젖을 물리기도 하는데
요즘 같은 무더위에 땡볕 아래면 아무리 에어컨을 켜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아이와 나는 둘 다 땀을 삐질삐질.
그래서 오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한달간 감기를 쌩몸으로 버텼더니 나을똥말똥 이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어젯밤엔 목이 너무 아프더니 피가래가 두세 번 나왔다.
아이도 어제 갑자기 콧물을 줄줄.
아뿔싸, 내가 나아야 아이가 더는 아프지 않겠다 싶어
오늘은 꼭 병원에 가야겠다.
모유수유 중이라 혹시나 해서 치통도 오래 참아 일상적인 두통이 되고
웬만한 감기는 약 없이 그냥 지나친다.
아플 새가 없고 어느 정도 아프고 피곤한 건 이제 기본값이 되었다.
누룽지닭백숙을 시켜 점심에도 두 그릇 뚝딱, 오후 간식으로도 호로록 먹는 걸 보니
이렇게 잘 먹는다면 매일 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편하고 아이도 잘 먹고 기분이 좋아 신나게 남은 시간 내내 놀았다.
졸리면 옆에서 그냥 누워있었다.
아이와 오랜만에 오랫동안 방에서 놀았다.
엄마가 안 놀아주니 아이가 혼자 책을 꺼내어 논다.
한 권의 책을 오래 보기도 하고
엄마가 읽어주거나 그 책으로 놀아줄라치면
다른 모든 책을 다 꺼내고 논다.
꺼내는 책에 머리를 얻어맞지 않기 위해 방향을 돌려 눕는다.
그리고 항상 자기 방어태세로 눈은 팔로 가린 채 누웠다.
역시나 아이가 던진 책에 오늘은 코를 얻어맞았다.
오늘은 엄하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예쁘게 내려놓는 시늉을 한다.
이제 아이와 주변의 안전을 위해
얼굴을 만지는 것, 긁는 것, 던지는 것, 식탁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문에 손을 대는 것 등을
더 엄격하고 단호하게 안된다고 얘기해 주기로 했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도 틀었다가
춤도 추었다가
누웠다가
책도 읽었다가
맛있는 것도 같이 먹었다가
이렇게 평화롭고 재미있게
사랑스러운 하루가 지나갔다.
아파야 정신을 차리는 나.
아이에게 좋은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느라
스스로 몸이 축나고 있는 걸 왜 몰랐을까.
누구보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는 안 된다.
다시 아이가 사랑스럽다.
힘들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다른 아이를 만나지 않고
단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주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가끔씩만 만남을 하면서 아이와 내 삶에 균형을 찾아가야지.
오늘 처음 에어컨을 틀었다.
아이는 이제 '하나'하면 '둘'이라고 얘기한다.
오늘은 얼핏 '셋'도 얘기한 것 같다.
'빵빵'도 하고, '새'도 알아듣고,
'뱅그르르' '빙글빙글' 하면 자리에서 도는 걸 봐서 그 말도 이해하는 것 같다.
내가 공을 배구로 튀기면 꺄르르르,
양치하고 물뱉기를 몇 번 성공했는데도
오늘은 꿀떡꿀떡 삼키고 배시시 웃는 걸 보면
엄마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마시는 듯하다.
그래서 아직은 생수로 물뱉기를 연습한다.
하루 세 번 양치질을 정성스럽고 즐겁게 했다.
자기 전에 못하면 일어나자마자 했다.
안 하려 하면 화장실 밖에 나와 내 무릎에 앉혀서 했고
내 칫솔질을 스스로 돕게 했더니 즐겁고 뿌듯해했다.
다시 매일 읽고 쓰며 실천해야지.
그리고 일찍 자야지.
내 몸도 치료해야지.
출산 후 미뤄둔 보약도 지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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