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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un 20. 2024

징크스

훈육을 시작하는 마음

오늘은 휴직 연장을 하러 다녀왔어요. 민폐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다들  "암소리 말고 2~3년은 데리고 있어. 어린이집은 일찍 보내서 좋을 거 없어." 일할 생각 말고 계속 휴직하며 육아에 전념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걸 듣고는 참 감사하다는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저를 기다리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면서도 좀 서운하기도 한,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큰 결정을 했어요. 다음 달부터 갑자기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거든요. 3년, 못해도 2년은 가정보육을 하려 했는데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12시간을 계획하고 이동하는 일이 힘에 부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순번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이가 원을 좋아하고 원과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서 기회를 잡았네요. 요 며칠 엘베 손 끼임, 낙상, 교통사고, 한 달째 콧물감기 등 아이에게 연이어 사건사고가 생기고 있어요. 혼자 돌본다고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게 아니라는 신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매달 아이 생일에 글을 쓰는 이유는 아이가 태어난 날의 감사함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아이에게 잠깐 화가 났더랬어요. 단둘이 보내는 12시간 중 10시간 내내 사랑스럽던 아이가 잠들기 전 2시간 동안에는 얼마나 서운하게 굴던지요. 수업 시간 내내 혼자 돌아다녀서 엄마와의 놀이 시간에 저 혼자 30여 분간 혼자 덩그러니 내버려진 느낌이었어요. 불러도 대답도 없고 안아 오면 또다시 도망가듯 가버려서 그냥 자유롭게 놀게 두었어요. 그런데 엄격하신 선생님께서는 계속 "앉아, 기다려"를 반복하셨어요. 엄마로서 제지하고 아이를 묶어둬야 했는데 저는 알았죠. 우리 아이는 그럴수록 엄마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을요. 그런데 아이가 엄한 선생님께서 앉으라고 하면 잠깐이라도 앉는 거예요. 그게 서운하고 속상한 포인트였어요. 내가 엄하게 훈육하지 않아서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엄마인 채로 30여 분간 혼이 나는 듯 낯이 뜨거워졌어요. 아이에게 늘 웃고 친절한 편이지만 돌아오는 길 웃음이 나지 않았어요. 무표정으로 기계적으로 아이를 카시트에 태웠죠. 아이는 엄마의 웃음과 사랑을 확인하려는 듯 계속 씩 웃어 보였지만 웃어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눈을 보고 말했어요. 오늘처럼 엄마가 불러도 보지도 않고 엄마를 외롭게 내버려 두고 혼자 놀 거면 수업에 다신 가지 않을 거라고. 오늘 엄마는 버려진 느낌이었다고. 아이가 알아듣는 듯 제 무릎에 앉은 채 제 얘길 끝까지 들어줬어요. 그리고 평소에 심하던 잠투정도 거의 없이 눈치를 보는 듯 조용히 잠이 들었어요. 젖을 물리지 않고 울음 섞인 잠투정도 하지 않고 오래 뒹굴거리거나 놀려고 하지도 않고 바로 쓰러지듯 잠이든 거예요. 어제 14시간이나 밤잠을 잔 탓에 오늘 낮잠을 거의 안 자서이기도 하겠죠. 아이는 졸리고 각성상태여서 더욱 과행동을 했을 거예요. 그리고 몸움직임을 좋아하는 아이가 수업 도입부에 하는 몸놀이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앉아서 하는 정적인 수업으로 전환된 것이 아쉬웠을 거예요. 유리드믹스 수업이라 초반 몸놀이는 제일 잘 따라 하며 즐거워했는데 앉아서 하는 수업에서는 꼭 우리 아이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거예요. 실제로는 돌아다니는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게 나중에서야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께서 발달 단계에 맞게 개별 특성을  좀 더 이해하고 보듬어주셨다면 이렇게 속상해지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단호한 훈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은 연이은 사건사고와 일부 정적이고 규칙이 강조되는 수업에서 느낀 아이의 스트레스 반응은 제게 이제 규칙을 알려주어야 할 때임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닫힌 놀이를 할 때 아이가 보이는 짜증과 답답함을 지켜보며 저는 점점 더 발도르프 교육으로 마음이 향합니다.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어 동지들을 찾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제게 임신 이후 엄청 강하게 자리 잡은 징크스가 있습니다. 자랑삼으면 화가 따른다는 거예요. SNS에 임밍아웃하고 나서 유산이 되었고, 만삭사진을 SNS에 올리고 나서부터 조산기로 눕눕산모가 되었고, 출생사진을 올리고 조리원에서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고, 카톡 프사에 아이 사진을 올리면 어김없이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사고가 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SNS를 미련 없이 끊었고 간혹 하더라도 아이 사진은 절대 올리지 않아요.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꽁꽁 숨기고 숨어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모두에게 알려온 삶이 더 이상한 게 아니었을까. 실은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데 끊임없이 내 보인건 나였다고요. 지금 아이와 내 삶을 궁금해하는 이는 더욱 없어졌어요. 뻔할 거라고들 생각하겠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안락함도 분명 있는 거예요.
 
자꾸만 동지를 찾게 되지만 점점 더 만날 이가 없어집니다. 모유수유하는 엄마, 가정보육을 하는 엄마, 딸아이 엄마, 발도르프 육아를 실천하는 엄마 이렇게 동지들을 찾아 나서면서도 점점 좁은 집단들 속에 온라인상으로만 연결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다들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고 하는 걸 보면 이런 심심하고 고독한 삶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부부는 출산 후 오랜 수면부족으로 자꾸만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그거 있잖아 그거..'로 대화를 근근이 이어갑니다. 잠이 보약입니다. 저는 10시 전에 자기 도전 중인데 오늘 망했네요. 이 밤, 모두 숙면하세요♡ 숙변은 제거하고 숙취는 해소하고 숙면을 취하는 삶~~(뭐래나요)


분명 징크스를 깨고 싶어서 썼는데 쓰다 보니 깨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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