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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Jun 26. 2024

작고 작은

오늘만의 행복을 기록하기로 했어.

#1. 다신 없을 오늘만의 행복 하나.

엄마가 응가를 하는데

네가 곁에서 놀다가 따라 응가를 했어.

네가 졸리면 엄마가 졸리고

우리 몸의 리듬이 맞춰졌어.


#2. 소중한 오늘만의 행복 둘.

엄마가 책을 읽는데 네가 와서 올려달라고 해서

너를 안고 너는 엄마 무릎에서 펜과 색연필을 가지고 놀고

엄마는 책을 읽었어. 너도, 나도 각자가 좋아하는 놀이를 조용히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과 평화로움.


#3. 사랑스러운 오늘만의 행복 셋.

네가 까까를 찾아서 네게 쌀떡뻥을 주고 엄마도 쌀떡뻥을 먹었어.

같이 쌀과자를 먹는 시간. 엄마도 너도 쌀떡뻥을 참 좋아해.

네 거는 유기농, 엄마껀 길거리표.


#4. 너니까 가능한 오늘만의 행복 넷.

수박 보이 딸답게 너는 수박걸이야. 매일 먹어도 수박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맛있는 건 절대 혼자 안 먹고 설거지하는 엄마한테 자꾸만 "아"하고 한 입 주고 남은 건 네 입으로 가져가는 너.

설거지하는 엄마의 눈빛에서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은 것 같아. 마음이 참 예쁜 아이야.


#5. 사과할 줄 알게 된 오늘만의 행복 다섯.

네가 책을 던져서 엄마가 맞았어. 엄마가 "아야!" 하면서 "던지면 아파." 그리고 "호 해줘." "엄마 쎄- 하고 미안해요 하는 거야." 하면서 손으로 쓰다듬고 엄마가 꼭 안아주었어. 잘못된 행동을 사랑으로 배우게 하고 싶어. 오늘 두 번 다 그렇게 네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쳤어. 힘으로, 화로 가르칠 때는 그 행동을 더 반복했는데 이렇게 사랑으로 가르치니 네가 다신 하지 않고 행동을 절제하려는 게 보였어. 참 기특해.


#6. 말을 잘 따라 해서 기특한 오늘만의 행복 여섯.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나면 "빵빵", 목이 마르면 "물", 아빠 신발이나 칫솔을 보고는 "아빠 꺼", 과자는 "까까", 라디오소리에 잡음이 섞일 때는 "지~~~", 하나 둘 셋을 세면 "둘", 숨었다가 나타날 땐 "까꿍", 엄마를 부를 땐 "엄마", 개는 "멍멍", 닭은 "꼬꼬", 비둘기는 "구구", 까치나 까마귀는 "깍깍", 그리고 오늘 처음 따라한 말이 있었는데 말이야............. 기억이 나면 말해줄게!


#7.  숨어서 코파는 귀여운 오늘만의 행복 일곱.

코딱지를 스스로 후벼내는 너. 늘 별 소득이 없었는데 오늘은 뭔가를 캐내어 같이 기뻐했어. 아무 이유 없이 손가락을 넣는 건 아니라는 거지. 네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어.


#8. 집에서 차분하게 보내며 회복한 오늘만의 행복 여덟.

며칠 연달아 외출했더니 몸이 힘들어서 종일 집에서 차분하게 보냈어. 안 가지고 놀던 레고 장난감과 어제 수업에서 받은 리본 등을 가지고 놀았어. 작은 공을 보고는 네가 왜 그렇게 울던지, 보채는 널 위해 아빠가 시켜주신 맛있는 닭죽을 먹고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지! 오늘만 변을 세 번이나 봤어. 두 번은 건강하고 단단한 변이었는데, 세 번째는 무른 변 같았어. 아침에 먹은 우유 때문일까, 닭죽을 먹고 먹은 차가운 수박 때문일까? 어제 먹은 견과류 때문일까, 볶은 콩 때문일까? 오늘 깨송편을 줬는데 네가 먹지를 않더라. 더운데 어디 나가지 않고 에어컨과 함께 시원한 집에서 너와 이리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어린이집에 안 보내도 하루가 참 잘 갈 텐데 말이야, 오늘처럼만. 먹고, 자고, 싸고, 씻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가 참 좋아. 네 감기는 다 나아가는 것 같은데 울기만 하면 콧물이 주르륵. 머리 긁는 것도 처방받은 로션을 한 번 바르고는 나아지더니 오늘 자기 전에 좀 간지러워하는 것 같아 다시 발라주었어. 어제 세균감염이 원인이라던 붉은 모기 물린 것 같은 자극 서너 개 중 손목 부분은 정말 길게 발개지고 심해져 있네. 모낭염이라고 하는데 얼른 나았음 해서 긴 팔 옷을 입혔는데 소매 시보리가 졸려서 네 팔을 자극하는 것 같아서 시보리가 없는 긴 팔 여름옷을 서너 개는 사서 어린이집 등원할 때 입혀 보내야겠어. 밖에서 활동할 때 피부가 직접적으로 닿이지 않도록. 그래야 감염이나 상처, 감기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


#9. 아빠가 늦게 오는 오늘만의 행복 아홉.

아빠가 오는 때를 기점으로 엄마도 긴장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고 너는 더 흥분해서 잠시간이 늦춰지곤 했는데, 오늘은 모든 택배와 앞집 문 여닫는 소리가 날 때마다 반응하며 아빠를 기다리고 찾는 것 같아 조금 짠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빠가 안 온다는 걸 말해주고 나니 조금 울다가 젖을 물고 잠이 들었네. 기분 좋은 식사만 해결이 되면 이렇게 평화롭게 하루를 닫을 수 있겠구나. 엄마는 이제 몬테소리 책을 읽으며 일찍 잠들 거야.


#10. 스스로 숟가락질을 연습하는 데는 닭죽이 최고. 스스로 숟가락질하는 너를 보며 흐뭇한 오늘만의 행복 열.

절대 손으로 먹을 수 없는 닭죽. 하지만 네가 엄청 좋아해서 숟가락질을 하려 애쓰는 널 보니 기특해. 자주 닭죽으로 숟가락질을 연습할 기회를 줘야겠네. 어찌나 집중해서 오래 잘 먹던지. 닭죽을 먹고 나면 약간 무른 변이 나오는 것 같은 건 안에 들어간 각종 약초 때문일까 엄마 기분 탓일까.


#11. 양칫물 뱉기를 한 번에 성공한 오늘만의 행복 열하나.

칵 퉤~를 싱크대에서 하니까 한 번에 성공하더라. 화장실에는 네 주의를 끄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자꾸 마시게 되고 집중하지 않고 장난을 치는데 말이야. 기분 좋게 침대에서 놀 때 엄마와 같이 양치를 하니 정말 오래 구석구석 꼼꼼히 양치를 하더라! 새로운 발견이야.


#12. 첫 등원 나흘 전, 기대과 설렘 가득한 행복 열둘.

원에 가면 오전에는 활동적으로, 오후에는 차분하게 그런 생활 리듬을 규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네게 선생님과 친구들이 좋은 롤모델이 되리라 기대해. 네가 더 골고루 잘 먹고 엄마 없이도 스스로 잘 잘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하나의 놀이나 활동에 오래 집중하는 법을 배우리라 기대해. 엄마와 아빠 없이도 좋은 놀이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의사 표현을 위해 말을 더 많이 하게 되리라 기대해. 걱정보다 기대해. 기다리진 않지만 기대해. 오늘 네 이름표가 도착했어. 예쁘네. 네 물컵과 칫솔, 치약, 턱받이, 연고, 옷, 양말, 손수건, 속싸개 등 곳곳에 잘 붙여 보내야겠어.


힘듦과 고민보다 더 자고 은, 다신 없을 오늘만의 행복을 더 꼼꼼히 기록하고 남기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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