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을 위한 장례식"
버리지 못해 가렸습니다.
버리지 못하면 정리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정리하다 물간들이 손에 닿는 순간
블랙홀처럼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통에
분류도 버리기도 어려운 저는 그냥
가리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빠르게 개운해집니다.
사랑받지 못한 물건들 위로 가리어진 수의.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휘장들을 살짝 들추면
간혹 적당한 그리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던 물건들의 메시지가 잠깐
소강상태를 보입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을 다 비워낸 것처럼 훨훨 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이별을 미루고 있을 뿐. 반드시 이별해야 합니다. 마치 없는 것마냥 살지만 실제로는 묻어두고 사는 무수한 감정들처럼 나는 거기 얽힌 이야기들과 결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자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기 위해 나는 물건들의 장례식을 준비합니다. 수많은 책 제목이 쏟아내는 내 갈망과 의지와 상처와 꿈을 질겅질겅 끊어내야 합니다. 지금 여기 단 한 권의 책과 단 한 잔의 컵, 한두 벌의 옷이면 나는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자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