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아닌 시간

재미없는 삶이 너무 재미있을 때

by 빛율

올해도 전담이다.

새 학기 담임교사를 위한 연수들은 쏟아지는데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담임이 아닌 교사들은 마치 교사가 아닌 것처럼.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소외감.

동시에 나의 세계를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의 안도감과 적막함.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고

더욱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_ .


좋은 ‘담임’ 교사가 되기 위해 쏟았던 시간과 노력, 부단함의 시간을 멀리서 보았다. 나는 잘 살았는가? 치열하게 살았고 적당히 비겁했으며 편해졌었다. 학교라는 생태계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나의 이상 사이의 간극과 내 처세에도 적당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유산도 주택청약도 모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계획에 없던, 그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언제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 ‘교사’로서의 내 삶이 내 전부였고, 나는 내 9년여 시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교사’로서의 나를 위해 고민하고 단련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못마땅해졌다. ‘좋은 교사’인 나는 ‘좋은 나’와 일치하지 않으며, ‘좋은 교사로서의 삶’은 ‘좋은 삶’과 일치하지 않았다. 반쪽짜리 삶을 위해 내 모든 시간과 노력, 재화를 소비했다. 내 몸마음의 건강과 내 가족, 내 사람들을 위한 시간들, 그리고 인간 빛율을 위해 준비하고 대비했던 시간들은 거의 전무했다. 기본적인 법, 경제, 실생활 지식이 오히려 내게는 쓸모없었다, 수업에 활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사회인’으로서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은 늘 뒷전이고, 교실에서의 당혹감을 넘어설 수 있는 더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나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나라는 한 인간, 어른은 자라지 못한 채 멈춰 있다. 나는 ‘내 만족감’을 위해 나를 버렸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은 정말로 나를 위해 가고 있었나.


누구나 꿈에 그리던 청약에 당첨되었는데도 준비된 것이 없다. 연수와 자기 계발에 돈을 아끼지 않고, 경제 공부와 재테크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었다. 결코 채워지지 않을 독이었다. 잘못 살았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와 살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 속에 살았다. 현실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대비해야 했다. ‘내면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대신 스스로 ‘어른’ 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참 잘 놀았다. 나는 늘 아이인 채였다.


좋은 교사라는 만족감을 스스로 느꼈을 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준비하는 동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부담이 적은 전담을 했다. 그러나 전담은 늘 큰 업무를 달고 오고, 담임 이상으로 공부하고 고민하여 나는 그 업무에 학급경영만큼이나 열을 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왜 어떻게든 ‘학교 일’이라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내 혼을 담으려고 애쓰고야 마는 걸까. 그냥 대충 하는 게 왜 안 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고 이상이 높을까. 그럼에도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용기는 부족해 안으로 불편함만 키워가는 걸까. 머리로는 아니라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참고 나를 말리다가 한 번 허락해 주었을 때, 나는 폭발했고 신이 났다. 그 희열감이 나의 행복이고 보람이다. 내가 변화를 만들고, 그로 인해 나와 아이들, 그 가족, 동료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 거기에 ‘끝’은 없다. 스스로를 소진시켜 평생을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효용감을 찾지 못했을 때 이름만 ‘명예’롭다는 ‘퇴직’을 신청하게 되었을 그때, 마주한 ‘교사’를 뺀 남은 나의 모습은 어떨까. 어떤 몸과 마음으로,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아빠는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아빠가 마음에 남는다. 청약으로 아빠의 임플란트를 해 줄 돈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을 무렵부터 앓던 이가 계속 더 아파서 먹는 일이 즐겁지 않아 졌다. 아빠도 이렇게 씹고 먹고 살아왔을까, 그 불편한 틀니로 10여 년을. 얼마나 불편하고 삶이 힘겨웠을까. 나를 위해 투자했던 돈의 반의 반의 반만 투자해 아빠를 위해 썼다면, 아빠는 지금 좀 덜 늙고, 더 살찌지 않았을까. 틀니 후 한 해가 다르게 늙어가던 아빠의 모습이 낯설고 아리다. 이제 늦어서 잇몸도 다 사라져 임플란트도 못한다던 아빠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고작 그 천오백만 원을 못해줘서 아빠가 평생 해온 트럭을 판다고 한다. 고작 그 천오백만 원. TET트레이너 과정에 150여만 원을 주저함도 없이 냈고, 해외여행도, 연수도, 책도, 특히 길거리에 뿌린 돈의 팔 할만 모아도 천오백만 원은 금방 만든다. 왜 갑자기 청약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생떼를 부려 아빠를 치과에 데려갈 생각을 했을까.


들쑤시고 다니지 마라.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하며 더 이상 아빠랑 못살겠다 한다. 책임지지 못할 희망을 아빠에게 보여줬다. 되기만 한다면, 제발 되기만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무조건 내가 해드리려 했다. 그런데 마침 너무 많은 빚을 한껏 내버렸다.


6년을 있던 두 번째 학교 짐을 드디어 차에 구겨 넣었다. 운전석마저 겨우 탈만큼의 공간만이 남았다. 5년간 한 학교에서 넓은 교실을 쓰는 담임을 하면 이렇게 짐이 쌓이는 거였다. ‘그래도 혹시나’ ‘언제 담임을 다시 하게 될지 몰라서’ 못 버린 짐들. 한 해만 묵혀두려 했는데, 또 한 해 더 묵히게 되었고, 혹시나 그게 세 해가 되고 네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삶이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고 재미가 없다는 건 너무나 재밌는 일이다. 내 색을 드러내고, 나를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하고, 나머지 여가 시간도 나로 살면서 스스로 어른으로 사회 속에 사는 삶.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건들을 위한 장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