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바이링구얼 육아' 모임을 열다

혼자 하긴 어렵고, 안 하자니 아쉽고.

by 빛율

요즘 '바이링구얼 육아'가 뜨거운 감자다. 국내 소아 청소년과 전문의와 발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거세다. 그래도 여러 논문들을 근거로 한 'No problem!', 'Why not?'의 목소리에 더 이끌린다. 하지만 한국어 '언어 지연'으로 언어 치료를 받는 사례들을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렵다. 하자니 걱정스럽고, 안 하자니 아쉽다. 어느 쪽이든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에라, 모르겠다!'

'해서 후회하느니 난 안 할래!'

를 외치며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아이의 언어 폭발기가 왔다.

영어든 한국어든 말하는 대로 다 흡수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영어를 좋아하고 아이도 영어 노래를 좋아하는데 안 할 이유가 무엇?

다시 나만의 'Why'와 'How'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100일 즈음 '바이링구얼 육아'를 알게 되고 한참 심심하던 차에 이거다! 하고는

아이가 6개월 즈음 영어로 말을 잠깐씩 걸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확실히 다른 언어임을 알아채는 듯 영어로 말할 때는 눈이 똥그래져서 울다가도 멈추고 쳐다보았다.

그런데 왠지 옹알이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그 후로 1년 정도 멈춰 섰던 것이다.

우연인지 영어책을 모두 치우고 영어 노래 노출도 줄였을 때 아이의 옹알이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만 3세'까지 모국어 장벽을 굳건히 걸어 잠그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아이와의 모국어 대화는 늘 비슷했고

한국어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려주지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계속되는 내 안의 물음들에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물음 : 우리나라가 정말 '모노링구얼' 사회, 맞나요?


길을 가다가도, 방송에서도, 노래에서도, 모든 물건에도 영어가 없는 곳이 없다. 영어로 대화를 하지 않을 뿐, 영어라는 언어는 마치 바이링구얼 사회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두 번째 물음 : 영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넘어, 나는 영어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요?


없다면, 엄마표 영어 학습이나 영어 사교육 마라톤에 언제고 합류하게 되겠지? 시간과 금전을 절약하는 경제적인 방법으로,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즐기며 언어를 익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 번째 물음 : 한 존재가 한 존재에게 두 개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는 것 - 엄마의 두 언어 채널, 그 부자연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대해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온 세상이고, 안내자이다.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아이에게 두 개의 언어가 한 존재로부터 인풋 된다.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나의 언어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두 개의 언어로 정리해야 하는 아이. 과연, 정말로, 괜찮을까?결국에는 두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게 된다고 하지만 결과가 괜찮으면 정말 괜찮은 걸까? 나는 과정을 간과할 수 없다.


▶네 번째 물음 : 언어의 '습득'이 ''학습보다는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내 외국인 친구는 거의 10개의 언어를 알고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어릴 때부터 다른 부족의 언어를 듣고 자랐기에 그 언어로 말하지는 못해도 듣고 이해할 수는 있다는 거다. 서로 다른 부족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많이 들으면 하나의 언어 체계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될 수 있겠구나, 표현 언어까지 나아가지 못해도 이해 언어에는 도달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 단일 언어로만 소통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을 다른 언어에 지속적으로 노출한다면 어떨까? 노출만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이링구얼 환경을 혼자서 만들 수 없다면 함께 만들면 어떨까?


▶다섯 번째 물음 : 부모가 바이링구얼도 아니면서 바이링구얼 육아를 한다고요? 그냥 영어 육아가 아니고요?


베싸님이 소개하신 "Family Language Learning"이라는 책에는 포르투갈어를 배워서 아이와 바이링구얼 육아를 한 저자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배워서 하는 바이링구얼 육아'도 나쁘지 않다. 부모가 학습한 외국어로 '바이링구얼 육아', 그러니까 이중언어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들을 지나 나는 더 이상 고민하고 주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우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을 만나야겠다! 고 생각했다. 아이는 22개월. 내게 주어진 가정보육 기간은 1년.


엄마가 2개의 언어로 말을 건네는 것보다 더 쉽고 빠른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영어로만 대화하기로 약속하고 정해진 모임에서부터 영어로 대화하면서 엄마도 아이도 바이링구얼 환경을 준비할 수 있다면? 소통의 도구로서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만 해도 좋다! 정기적으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는데서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나는 겁 없이도 모임을 열었다. 늘 안전한 쪽을 택하는 나였지만 코로나와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 근 5년여간의 단절을 깨고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사람들과 연결되기로 한 것은 내 개인의 역사에서는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갈급함, 외로움, 답답함이 강력한 동기였다.


자주 상상했다. 여러 가족들이 도서관에서 모여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풍경을. 정말로 가능할까? 가슴이 쿵쾅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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