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좋겠죠, 아이는요?"

"엄마랑 있는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할 때에요."

by 빛율

"모임에 너무 힘 빼지 마세요.

그 월령대 아이는 엄마랑 단둘이 있는 시간을 더 원해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모임 때문에 나와 가족을 돌보는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던 차에 나를 걱정해 주시는 한 마디가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감사했다. 누구보다 모임이 절실하신 분이셨고, 멀리서부터 와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바이링구얼 육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자주 오래 보고 싶었다. 혼자 못하니 함께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은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을!

육아는 셀프다! 아이와 나, 둘이서 함께 해 나가는 거였다.


'내가 지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 때, 멈춰 섰다, 언제나. 그런데 모임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운영 방식을 바꾸고 다듬어나가야 했다.


영어를 시작하면서 지치는 이유가 있다.


1. 언어에는 끝이 없다.

2. 배운 걸 계속 써먹고 까먹지 않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든다.

3. 그래서 계속 조급하고 불안하며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불안 없이 재미로만 갈 수 있는 공부는 사실 세상에 없다. 흥미로 시작해도 어느 순간이 되면 넘어서야 하는 지점이 온다. 언어 습득에 스트레스는 필수불가결하다. 영유를 탓할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 바이링구얼 환경을 만들어주어도 아이의 스트레스 반응은 피할 수 없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에는 어쩌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조절해 줄 수 있다. 엄마가 하면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고 완급과 방법, 시기 등을 조절해 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서. 영어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


늘 밝게 잘 웃고 적응하는데 시간은 걸리는 편이지만 어딜 가나 사람을 좋아하고 새로운 환경도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 아이가 이상하게 모임만 가면 긴장한 듯 보였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이 모임에 가면 모르는 언어로 대화를 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엄마가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다른 아이와 어른들에게만 눈길을 주리라는 것을.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의 스트레스 반응, 영어 거부 반응을 대하며 자연스럽게 넘겨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어려웠다. 했다 안 했다 하기보다는 이왕 시작한 거 빈도를 줄이고 기분 좋을 때나 원할 때만 노출하기로 했더니 집에서 둘이 있을 때의 거부 반응은 크게 줄고 노랜 크게 따라 부르며 까르르 웃기도 했다. 문제는 모임이었다.


1.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내 아이에겐 한국어로 일부 말하되, 다른 아이들에게는 영어로 말 걸어주기

2. 부모 간에는 영어로만 말하고, 내 아이를 향한 영어를 점진적으로 늘려가기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장소도 도서관에서 키즈카페로 수정했다. 다른 이용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주의를 오래 지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0~6세까지 다양한 미취학 연령의 아이들이 만나 부모가 영어로 대화하는 동안 각자 혹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능할까?


'영어가 들리면 언제나 반가운 만남이 있고 신나는 일이 생겨!'

라는 긍정정서만 줄 수 있다면, 우리말 외에도 다른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에게 발화를 유도하지 않아도 신나게 놀고 헤어질 때 자연스럽게 '굿바이'하고 따라 인사하는 걸 보고 놀랐다. 22개월이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영어로 수다를 떨고 나니 육아스트레스가 날아갔다. 따분한 한국어 수다와는 다른 쾌감이 있었다. 영어라는 언어와 문화가 지닌 직설화법, 결론부터 말하는 문화, 상하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수평적인 문화, 개인적인 문화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이도 나도 좋아하는 모임의 구조를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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