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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Sep 21. 2019

바다와 시작한 긴 여행

2019년 9월 21일

오늘 어쩌다 보니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장소에 도착했어요. 

강남역 한복판에서 사람을 기다려본 게 얼마만인지. 이방인이 된 느낌이 잠시 동안은 즐거웠어요. 

근데 1분도 안 지났을까 길거리 담배냄새와 조명이 힘들어 주변에 들어갈 곳을 찾는데 서점이 보였어요.

갑자기 가벼운 책 한 권을 사야겠다 생각했죠.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 인스타, 유튜브, 슬랙 이런 거 보는 것보다 책을 봐야 할 것 같잖아요. (뭔가 임산부는 그래야 할 것 같은)


서점에 들어갔는데,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얘기했던 책이 보였어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제가 소설을 안 읽어서 김영하 작가 글을 본 적은 없는데 산문이라 지하철에서 읽기 좋겠더라고요. 최근에 여행을 너무나 떠나고 싶기도 하고요.


근데 이 책을 반 즈음 읽고, 의외의 포인트를 발견했어요.

요즈음 제 감정이 배낭여행 다닐 때와 흡사하다는 거예요. 


공식적으로는 이 임신이라는 여정이 안전하고 즐겁게 끝나길 바라죠.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실제로 끊임없이 예상 밖의 일이 생겨요. 그리고 제 목표와 상관없던 예상 밖의 경험 덕에 깨달음도 얻고요. 그럼에도 바다가 건강하고 제가 건강하게  출산을 한다면,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이미 저는 다른 사람 일거예요. 여행이 끝난 후처럼요.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 중, 묘하게 즐기게 되는 고통이 '여행'말고 또 있을 줄이야.


여행처럼 임신의 여정도 4월이면 끝나겠죠. 그 사이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기대와 다른 현실에 당황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얻고, 세월이 지나 파장을 떠올리고,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겠죠. 결국 280여 일이나 될 여행의 끝에 가보면 바다와 내가 어떤 길을 지났는지 알겠지 싶어요.



- 10주 6일차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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