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 현실
연초에 하던 일을 모두 정리했다. 4개월 즈음 놀다여름부터 직장에 들어갔다. 새로운 일터는 고층빌딩 12층 구석이고 내 자리는 창가다.
매일같이 오른편 창으로 고층 빌딩 바깥에 대롱대롱 매달려 일하는 아저씨들을 바라보곤 한다.
직장에 대한 별다른 애착은 없지만 애정은 있는 편이다. 이런 뜨겁지 않은 건조한 애정은 조직생활에는 참 도움이 된다. 승진이나 정치적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하루에 적어도 5시간 많게는 7시간까지 잠을자고, 깨어있는 시간은 16시간 정도. 근무를 위해 소비하는 여타 시간을 합하면 11시간 정도이다. 딱 5시간 저녁을 즐길 수 있는 삶이다. 야근도 없는 편이고, 업무 자유도도 높은 편이다.
# 현실0
내가 눈을 뜨고 마주하는건 직장 동료들이다. 애석하게도 오빠와는 저녁까지 직장에서 온갖 일로 힘을 쏟은 후에 가끔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직장에서 기분을 망치면 오빠와의 저녁시간이 망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직장에서 불행한 마음을 한껏 머금고 오빠와 마주앉아 저녁을 먹기 싫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현실이지만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 모든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사랑 덕분에. 회사를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다니고 야금야금 생계수단을 꾸준히 찾는다. 꽤 행복한 현실이다. 꾸역꾸역 사는 것이 아닌 행복하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 이 진심따라 사는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