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과론.
올해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바로 '코로나'가 아닐까.
아마 2020년은 후대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나에게도 2020년은 유의미한 정신적 성숙기였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 둥지를 텄고, 직장에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업무들을 떠안게 되면서 번아웃과 현실적 책임감 사이를 줄타기하다가 퇴사했다.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다. 이것은 방황에 한줄기 따뜻한 빛이 돼 주었다. 지금은 다행히 작은 회사에 취업해서 밥은 먹고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나는 근사치로 과거의 내 목표에 도달했다. 그게 꼭 내 노력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 수단은 선택의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수정돼 왔기 때문이다. 그럼 나에게 2020년은 성공한 해일까? 실패한 해일까? 혹은 반타작은 한 보통의 해일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노력이나 과정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결과만을 평가한다. 나 역시 그동안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때로는 그가 성공하기까지의 모든 선택이 정답이었거니 어림짐작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현재와 거쳐온 모든 인생이 다 실패 투성이었다고, 저 실패에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내 뜻대로 됐던 일을 손에 꼽았던 올해를 돌아보며, 이런 생각은 나의 무지몽매함에서 나온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큰 욕심도 없었고 겁이 났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던 적도 있고, 간절했고 그만큼 갈구했지만 엄청난 노력에도 타인이나 코로나 같은 예상치 못했던 외부 요인에 의해 좌절한 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은 좋았고, 어떤 선택은 그저 그랬고, 어떤 선택은 악수(惡手)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동안 미래를 계획하는 데 너무 많은 공을 들여왔던 것 같다. 올해 많은 일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며 계획이란 게 얼마나 불합리적인 행위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목표를 두돼 세세한 계획을 세우는 데 더 이상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기로 다짐했다. 세세한 계획은 작은 실패의 가능성을 높이기만 했다. 많은 에세이 작가들이 가끔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헛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가끔은 그냥 대충 살아도 살아져서, 어떤 날은 엄청나게 열심히 살고 싶어 지는 게 '사람 사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내가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생각되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결과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