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래유영 Dec 14. 2020

퇴사기8. 입사했지만 여전히 퇴사기를 쓴다.

내가 꾸준히 써 내려가던 퇴사기를 잠시 멈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입사였다.


밤낮의 경계를 잊고 백수로 지낸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쯤 심심할 때마다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 몇 군데에서 하나 둘 연락이 왔다. 퇴직금이 월급날 카드값 빠져나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을 더 크게 만들어서 내 발길을 계속해서 면접장으로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어려운 시국에도 몇 장 짜리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만 보고 나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며 불러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기에 결과가 어떻게 됐든 면접 경험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전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왜 이직하게 됐는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떠어떠한 상황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해당 회사와 경쟁사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희망연봉은 얼마인지까지... 직무별 질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공통질문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앵무새가 주인의 말에 빠끔 거리 듯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다른 어떤 질문보다 홍보에 관한 경험에 대해서 자신 있게 설명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경험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도 했다. 일을 하면서는 그토록 지루했던 그 일들을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나를 보며 실소가 터졌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햄릿만큼이나 연봉이냐, 직무냐, 복지냐, 커리어냐. 잡스럽게 널브러져 있는 여러 선택지들 사이를 고민하며 인생이란 그 자체로 고뇌인 것임을 처참하게 깨달았다. 

구직에 인생을 운운하며, 선택에 미래를 걸어야 할 정도로 생각이 많아지자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털어내기로 하고 단순하게 내가 필요한 곳에 가보 자라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경력 있는 홍보 인재가 필요한 아담한 IT 기업. 이곳에 입사한 한 것에 100% 만족하느냐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탑 시크릿이지만, 나는 아직 시간 날 때마다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본다. 아직 내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았고, 마음은 매일을 다른 모습으로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정처 없이 유랑한다. 왜 마음은 눈 뜰 때마다 달라질까? 변덕스러운 입사자는 여전히 퇴사기를 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기7. 지금 나는 B와 D사이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