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래유영 Nov 21. 2020

퇴사기7. 지금 나는 B와 D사이 어디쯤

나의 알람은 거의 한 달째 휴업 중이다. 

덕분에 잠만큼은 밤낮의 경계를 잊을 만큼 충분히 잤다. 좋아하는 게임은 어제를 기점으로 접속 7시간을 넘겨봤다. 백수가 할 수 있는 자유는 다 누려본 듯하다. 제주도와 강릉을 여행했고, 그간 못 봤던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자주 봤다. 그러다 즐길 만큼 즐겼는지 한 달을 못 넘기고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취미 활동처럼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최근에 면접을 본 회사 중 하나는 내가 결정만 하면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브랜드 직무에 지원을 했는데, 마케팅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의 경험을 활용하면서도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업종도 직무도 마음에 들었지만, 걸리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연봉과 직장까지의 거리였다. 연봉은 직전 회사의 연봉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고, 출퇴근도 버스로밖에 할 수 없어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나는 회사에 연봉에 대한 추가적인 협상이 없으면 입사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전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입사하지 않겠다는 choise를 하고 나서야 직무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눈앞의 물질적, 물리적 조건들에만 눈이 멀어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기회는 끝났다.

다시 한번 전화를 해 '내 마음이 바뀌었다'며 질질 눈물을 짤 수는 없는 일. 덕분에 나는 내 직무에 대해 더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깨달았지 않은가. 나는 당장 실무에 유용한 마케팅 교육은 있는지, 관련 자격증이 있는지를 찾았다. 이력서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방향이 정해지자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명언이다.


'이 일은 과연 내가 잘하는 일일까?'

'다른 길은 없는가?'

'과연 지금까지의 내 선택은 최선이었나?'


당연시 해왔던 일들을 다시 돌아보니, '이직 시기가 1년만 더 빨랐더라면', '회사 다니면서 마케팅 교육을 좀 들었더라면', '애초에 경영학과로 진학했더라면' 그때는 생각도 못해봤을 의미없는 후회들만 가득하다. 과연 후회 없는 선택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또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다른 차선을 선택했다면 내가 정말 성공했을까?


신은 끊임없이 인간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고, 인간은 자신의 선택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인생을 거듭 살아갈수록 선택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 그 이유가 잘살고자 하는 인간의 당연한 욕심 때문인 건지, 단순하게 살 수 없는 내 개인의 문제인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신이 준 인간의 운명이라면, 후회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새롭게 해보고자 하는 것에 별 미련 없이 도전할 계획이다. 당장 돈이 없어서 어딘가에 취직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직무 교육과 관련 자격증을 수료하는 데 도전해 볼 계획이고, 향후 5년간은 이 분야에서 좀 더 전문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보려고 한다. 그 이후는 이후의 선택이 있을 거고, 그리고 그 사이에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겠지.


나는 죽기 전까지 뭔가를 깨달은 철학자도 될 수 없을 거고, 누군가에게 진리를 전하는 종교인도 될 수 없다. 미완성의 나에게 선택과 후회는 당연한 일이다. B와 D의 어디쯤인가에서 잠시 지체할 수도, 정체할 수도,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라는데 뭐 어쩔 건가.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사랑하게 된 사람이 가난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