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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Nov 03. 2020

밉상 그녀, 내 친구 H양

나와는 취향도, 성격도 다른 누군가가 늘 내 곁에 있습니다.

경조사에 초대할 만한 친한 친구가 다들 몇 명이나 있을까? 열 손가락이면 충분할 만큼 대인관계가 넓지 않은 나에게 11년의 시간을 같이 한 친구 H 양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여행도 함께 다니고, 음주 가무 유흥도 미친 듯이 즐기며, 추억만큼이나 흑역사도 함께 쌓았던 친구다. 그만큼 서로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들은 그렇게 서로를 잘 아니까 싸울 일이 없겠구나 생각할 법도 하겠지만 다른 친구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아직까지 이 친구랑만큼은 철없던 대학 시절처럼 치열하게, 참 많이도 싸운다. 그래서 나는 H 양을 소개할 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얘는 진짜 밉상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야’라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H 양에 대해 짧게나마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연애사와 대인관계를 낱낱이 지켜봐 온 바, 그녀는 이런 사람이다. 처음에는 폐쇄적이지만 친해지면 내 사람이라 여기고, 관계에 소홀함이 없도록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고, 안부도 곧잘 묻는다. 하지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온 만큼 자기애가 강하고,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쁜 상황에 몰리면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그런 그녀와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야근을 피할 수 없었던 정신없이 바쁜 어느 날, H 양이 카톡으로 자신의 안부를 했다. 학교 선생님인 그녀가 그날부터 정상 출근을 하게 됐으며, 급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아 점심을 매일 사 먹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며 힘내라는 내게 그녀는 매일 나도 점심을 사 먹고 있냐고 질문했고, 나는 ‘ㅇㅇ’이라고 답했다. 한달 점심값으로 몇 십만 원 들겠네? 라는 물음에 나는 다시 한번 ‘ㅇㅇ’라고 답했다. 이 두 번의 ‘ㅇㅇ’이 우리 싸움의 서막이 됐다. H 양은 자신 주변에 이렇게 성의 없이 카톡을 보내는 사람은 나뿐이라며 매섭게 질책을 했다. 나는 야근 중이라고도 내 상황을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고, '바쁘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았으며 충분히 너의 성의 있게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생각한다'고 변명도 해봤지만 서운함에 폭주하는 그녀를 말리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별수 있나. 우리는 그날 카톡방을 뜨겁게 달구며 함께 폭주했다.


며칠 동안 나는 H 양과 연락하지 않았다. 온전히 내 입장에서만 봤을 때, 그 사건은 가뜩이나 야근하는 바쁘고 예민한 날, 알만 한 친구가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어서 싸운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녀와 다시 연락을 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또 서로의 입장만 말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말로 싸우면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에 한몫했고, 무엇보다 그녀 성격상 내게 먼저 연락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내게 먼저 연락을 했다. 내가 당연히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할 것이라 확신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도 내가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신이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또다시 내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서로의 성격 차이만큼 그 입장차도 너무나 극명했다. 상대방 상황이나 기분이 평소와는 다를 때는 다른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거나 원래 그 사람의 행동이라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는 나와,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은 안 하는 게 배려라는 H 양.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 단답형 질문에 'ㅇㅇ'으로 대답하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 건지 내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인 것이 사실이었다. 'ㅇㅇ'의 의미는 나에게 단순히 동의한다는 의견을 빠르게 친 줄임말일 뿐이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는 내가 미워하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친구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애증 관계의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을 크게 만들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연락해서 내 속을 긁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근황을 나열하는 그녀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서로의 입장을 들어본 것에 의의를 둔 채로 화제를 돌리는 것이 가장 현명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 하나 시원하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 싸움 역시 우리의 관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탈선이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누군가와 생각 차이, 의견 차이로 대립할 일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매일같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빈도수를 보면 대립할 사건이 줄어든 것은 분명 절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을, 또는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대립하느니 차라리 관계를 포기 해버리거나 참고 넘어가는 것이 정서적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래서인지 굳이 구구절절 나의 서운함을 설명할 일 역시 거의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서른한 살이 돼서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싸울 수 있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기운 쫙쫙 빠지는 감정싸움에도 불구하고 먼저 연락하고 말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을 이해시키려 하는 그녀의 행동에는 나에 대한 '애증'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배려라는 나와 싫어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 중 누구의 말이 옳은가가 더 이상 필요한 논쟁일까. 그저 우리는 멀리 있는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서로가 진심으로 잘 됐으면 하고, 또 꽃이 피거나, 여름 바다가 그리울 때, 겨울이 지루할 때 그 순간을 함께하길 바라는 존재인데 말이다.


오늘은 그녀의 예상을 깨고 내가 먼저 연락해보려고 한다. 그녀의 수업은 안녕한지.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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