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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Jan 14. 2021

퇴사기9. 면접관님들, 제발 예의 좀 지켜주세요.

세상엔 면접자를 위한 매너 매뉴얼은 많다.

그런데 왜 면접관이 가져야 할 예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까.


얼마 전 너무나 화가 나는 면접을 봤다.

경험이 없는 직무에 서류 지원을 했었는데, 반신반의하며 넣었던 스타트업 회사에서 신기하게도 면접 제의가 왔다. 나는 '사력을 다해 쓴 내 이력서 속에서 쓸모 있는 재능이나 가능성을 본 걸까?'라는 생각에 바쁜 일정을 쪼게 면접 일정을 잡았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사업성에 미래 가치가 있어 성장하고 있었고, 직무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에 현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시간을 들여 회사에 대한 정보와 직무에 대해 공부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황당한 일은 당일 오전에 걸려온 전화부터였다.

갑자기 면접관인 대표님에게 외부 일정이 생겨 면접시간을 1시간 반 정도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출발 전이라 알겠다고 했다. 면접 일정이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안내 문자에는 단정한 복장과 함께 면접시간 10분 전 도착해달라는 요청이 적혀있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이미 면접자 몇 명이 대기 중이었고, 면접은 약속된 시간보다 더 지연될 거라고 했다. 결국 나는 예정보다 20분 늦게 면접관과 마주할 수 있었다. 면접관은 대표라 불리는 젊은 남자였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소중한 휴가를 썼고 시간 비용을 들여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공간에는 나의 기대와 열망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면접은 10분도 안돼 끝났다.


그곳을 나오며 나는 엄청난 허탈감에 화가 났다. 대표라는 사람은 나의 이력서를 전혀 안 본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확실해 보였다(실제로 나보다 먼저 면접을 봤던 사람들도 면접을 나온 뒤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대표는 그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주 조금도 알고 있지 않았다. 1000자가 넘는 자기소개서 속에 최대한 녹여냈던 내 경험들은 그냥 기억이고 니은이었는지, 이력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뻔한 질문만 했다. 나는 이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이슈가 있는지, 인재상은 무엇인지까지 공부하고 갔지만 면접관은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수많은 면접관을 만났지만 이렇게 면접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눈은 다른 곳을 보면서 겨우 네다섯 가지 질문을 한 후 인사팀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만 하고 면접을 종료했다.


역시나 합격은커녕 탈락됐다는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이 면접은 내 인생 최악이었다.

첫 번째,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두 번째, 면접관은 면접자의 이력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면접자를 불렀다.

세 번째, 면접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이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 애쓰는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난 그 면접장을 나오며 그 회사가 언젠가는 크게 망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기회를 놓친 모든 회사에게 그런 저주를 걸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면접자의 기대와 시간, 공을 모두 빼앗아간 무성의하고 이기적인 회사에게는 상황을 이해할 의지조차 들지 않았다.


면접관들에게 최소한 세 가지는 지켜주길 부탁드린다.

1. 필수 직무 역량은 서류 전형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면접자들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주시길 바란다.

2. 당일 일정을 변경하는 일은 가급적 지양해 주길 바란다. 

   면접자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3. 마지막으로, 합격이든 탈락이든 반드시 통보해주길 부탁드린다.

   통보의 기한을 모르는 구직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없는 기다림 뿐이다(대부분의 회사가 탈락 통보를 하지 않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 시간까지도 한정된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게 면접관과 면접자의 관계다. 회사는 면접자가 면접장을 나갔을 때 그가 회사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거나 브랜드를 소비하는 고객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 최악의 경험을 한 면접자가 당신의 회사에 어떤 평판을 남길지도 부디 고려해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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