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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Feb 01. 2021

소극적 완벽주의자라서 신중한 것일 뿐이에요.

"애 낳기 싫어하는 사람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부류 아냐?

결혼이나 육아에서 그냥 자유롭고 싶은 거잖아."


딩크라고 말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정색과 3초의 침묵.


"책임을 져야 하니까 신중한 것뿐이에요."


이것은 나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결혼이든, 아이든, 하물며 애견 분양이든. 책임지는 것이 두려나. 정말 비정상인가?


-



 어떤 상황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데, 그것에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성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었는데, 얼마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나 같은 사람을 표현하는 한 단어를 찾았다.


바로, '소극적 완벽주의자'


완벽하지 못할 것에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없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일 뿐 사건의 중요성이나 행동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소극적 완벽주의자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이 겁쟁이들에 대한 단점을 부각하는 글 투성이다.


오늘은 바쁘니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사람

준비가 안됐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백지화시키는 사람

생산성도, 융통성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소극적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습관성 게으름뱅이 아닌가. 조금 주저할 뿐 본질적으로는 완벽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프레임을 씌우다니 억울하다. 신중하게 설정한 목표를 완벽하게 해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소극적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완벽하지 못할 것에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소극적 완벽주의자에 대한 다른 정의를 내고 싶다.


1.

강제성이 없는 목표에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생계가 달려있다거나 안 해도 누군가에게 딱히 피해가 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나태해지곤 한다.


2.

주어진 일은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남한테 싫은 소리 듣길 싫어서라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완료해내고 싶어한다.


3.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를 극도로 싫어한다.

변수는 나 하나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오는 변수가 두려워서 시도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4.

그래서 계획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웬만한 변수에는 멘탈이 흔들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짜다가 그 지역을 이미 3번은 방문한 느낌이 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5.

못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국영수 중 잘하는 과목에 집중했고, 그래서 나는 서른둘까지 영포자에 토익 시험은 준비조차 안 해봤다.


6.

준비가 다 될 때까지 시작을 유보하는 것이지,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가능한 한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 경우들이 대다수다.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준비가 안 된 것에 대해 공개적 유보를 선택하는. 나는 소극적 완벽주의자다.


-


난 강아지를 좋아한다. 아니,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고,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나 스스로를 케어하기도 버겁다. 조금만 방치해도 긴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작은 원룸에 단순히 '강아지, 고양이가 귀엽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다'는 이유로 동물을 들여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나도 이 빈집이 싫은데, 내가 없는 빈집에 혼자 있는 동물은 또 얼마나 외로울까. 좋아하지만 책임질 용기가 없는 지금의 나는 동물짤을 모으는 렌선 애견인이다.


아이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늘 행복하기만 한 것도 판타지 같은 일이지만,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도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가. 나는 그 아이가 행복할만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잘 먹고, 잘 자라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건강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아이야 말로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통제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가. 그럼 나는 그 하나의 인격체가 성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가. 늘 고민한다.


나는 스스로 준비가 다 됐다 여겨질 때까지 잠정적 딩크족이다. 아니, 더 나아가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그리고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잠정적 비혼주의자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주저하는,

책임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가 덜 돼서 주저하는 소극적 완벽주의자.


자유만을 원한다는 오명을 그만 씻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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