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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Jan 11. 2021

카페 금단 현상

나는 카독(서)족, 카글(쓰기)족이다.


공부나 독서, 글쓰기 같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서 하느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묻는 사람이 많은 만큼 나처럼 이런 일들을 카페에서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카페를 선호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이유에서 이 공간이 참 좋다.


이유 중 하나는 커피를 미치도록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정도 마시는데, 이것은 탄, 단, 지 외에도 하루를 힘차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제2의 에너지원이다. 커피를 한 두 모금 삼키면 나면 나른하던 몸에 칼각이 잡히고, 눈은 번뜩 뜨인다. 다양한 커피 종류 중에 고소한 우유와 향긋한 커피 향이 나는 라떼류를 좋아하는데, 평소 때는 씁쓸 담백한 카페라떼를, 기분이 꿀꿀할 때는 달달한 시럽이 들어간 라떼를 즐긴다. 커피는 나의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힐링 푸드이고, 카페는 이런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 담긴 환상적인 공간이다.


또 다른 이유는 카페가 집이나 직장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소마다 어울리는 의미와 행동 양식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집에서는 먹고, 뒹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벽한 휴식을 원하고, 일터에서는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특히 직장에서는 일로 엮인 관계 외의 사적인 인연을 만들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에게 공부나 독서, 글쓰기 같은 행위는 휴식과 생산적인 행동 사이의 경계에 있다. 집이나 직장을 벗어난 완전히 다른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카페다.


카페에서 시간 때우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룰은 있다. 예를 들자면 커피 한 잔에 할당된 비공식적 체류시간 같은 것들? 나는 커피 한 잔을 먹으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있을 자격을 얻는다. 거기에 디저트까지 먹으면 30분에서 1시간이 추가된다. 커피도 없고, 디저트도 없는데 죽치고 않아있을 수 없다. 마시거나 먹을 게 없으면 양심상 카페를 나와야 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있다면 입가심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체류시간을 연장한다. 이것은 온전히 나만의 룰이지만 알고 보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집이나 직장과 완벽히 분리돼 있고, 암묵적인 체류시간이 존재하는 카페는 행위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아주 훌륭한 장소다. 거기에 카페 안팎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의욕이 절로 높아지는 것도 내가 카페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코로나 19로 인해 12월 초부터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벌써 몇 주째 카페를 가지 않았더니 독서하는 시간도 뜸해지고, 글쓰기에도 부쩍 의욕이 없다. 평소에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의미가 이렇게 컸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못하게 되니 '카페에 조용히 앉아서 커피 마시고 싶다.'는 말을 가끔 내뱉는다. 커피는 끊을 수 없어 테이크아웃이나 배달을 이용하고는 있는데, 따뜻한 머그에 입술이 닿을 때의 부드러운 촉감과 카페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그 편안함을 느낄 수 없어 마음이 헛헛하다.


커피를 사러 들리는 카페에 내가 자주 앉던 테이블이 창고 안 짐짝처럼 뒤엉켜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 사장님 얼굴에도 예전만 한 웃음이 없고, 안부를 묻기도 괜히 미안스럽다. 요즘 사소한 바람이 있다면, 사장님이 다시 여유롭게 내 안부를 물어주실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다. 또, 항상 앉았던 그 자리에서 소중한 공간을 다시 찾은 감상글을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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