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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Oct 01. 2021

와그작! 액정도 깨지고 내 멘탈도 깨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날

와그작!


볼일을 보려고 잠깐 휴지걸이에 올려둔 휴대폰은 미세한 곡선을 타고 떨어졌다.

그 짧은 찰나에도 한 번은 휴지통 모서리에 걸려 튕기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더라.

어느 때처럼 땅으로 처박힌 휴대폰이었지만 여느 때와 다른 소리가 들려 나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액정은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처럼 방추형으로 쩍쩍 갈라져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집에 누수가 있어 큰돈 나갈 일이 있었는데 액정 수리까지 해야 하다니 일순간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았다.

불과 3일 전 휴대폰 액세서리샵을 지나면서 보호필름을 살까 하다가 '나중에 시간 날 때 하지 뭐'하고 그냥 돌아온 일이 생각나 스스로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회사 동료들에게 자랑스럽게 깨진 액정을 보여주고 적당히 위로받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문득 이 액정은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깨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늘 화장실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고 이미 여러 차례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그때마다 살아남았던 내 휴대폰. 그래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조심성 없는 나에게 신이나 운명 따위가 이번엔 좀 더 확실한 가르침을 준 것이란 생각 말이다. 나는 돈이 아까워 파손보험을 가입하지 않았고, 자주 떨어뜨리면서도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보호필름은 붙이지 않았다. 신은 사고를 앞두고 이렇게 기회와 예고를 통해 후회할만한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휴대폰을 아무 곳에나 방치하면 액정이 박살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인과를 최악의 결과를 통해 깨닫다니 그 무심함과 멍청함에 웃음이 났다. 급하게 액정을 수습할 방법을 찾았고, 그동안 무방비 상태였던 후면 카메라에는 부랴부랴 보호필름을 붙였다. 이것은 휴대폰을 바꾼 후 1년 만에 한 일이었다.


사람은 가끔 참 바보 같다. 사고의 작은 조짐들에는 눈감고 귀를 닫다가 큰 사고가 나고서야 후회하곤 하니까. 차라리 잘 됐다. 액정이 박살 나는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기에 앞으로 휴대폰을 휴지걸이에 올려놓지도 않을 테고 좀 더 소중하게 휴대폰이나 내 물건들을 다루겠지. 30만 원어치의 경험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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