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상담기. 똑똑똑 문을 두드리다.
정신 상담 첫날
똑똑똑-
새하얀 문을 세 번 노크한 후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작고 동그란 안경을 낀 남자 선생님이 어딜 봐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레 겁부터 먹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 정신 상담을 받으러 간 그날, 그곳이 일반 병원과 다르다고 느꼈던 것들이라면
내가 진심을 말할 때까지 언제 까지든 기다려줄 것만 같은 올곧은 자세와 인자한 얼굴의 선생님,
그의 뒤로 그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듯 전문 서적들이 빼곡히 찬 하얀 책장,
그리고 앉을 때 엉덩이가 푸욱 빠져 몸을 흐트러뜨리는 푹신한 소파였다.
선생님은 나긋한 존대로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머뭇대던 나는 "제가 겨우 이런 일로 이곳에 오는 것이 맞나 싶어요."라고 말을 시작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나는
'내가 겪은 일은 더 아프고, 더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정말 별일 아닌 것은 아닐까.',
'일시적인 나약한 감정이 바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제가 믿었던, 많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재촉하지 않고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은 배제하고, 나의 상처의 서사를 조금씩 꺼냈다.
처음 그 사건을 겪고 난 후 일주일 동안
'그것'은 나 스스로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었고,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이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이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최근에 갑자기 굉장히 큰 일을 겪으셨네요."
그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육체적인 이상 반응과 정신적인 고통에 정의를 내려주었다.
마치 슬플 자격을 부여해준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무릎에 묻었고 그냥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그날은 내 인생의 첫 정신 상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