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걷다 생각했다.
선명하던 것들이 흐려진다.
내 시력의 이야기다.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며 푸르고 화려해지는 풍경들을 앞에 둘 때면 더없이 아쉬워진다.
자세히 보고 싶으면 다가가야 하는데 그럼 또 이 조화로움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그 색도, 그 잎사귀의 모양도, 저 가지 끝 새둥지도 조금 더 선명했으면 좋겠다.
의학에 도움을 받아볼까 해서 라섹수술을 알아보려다 말았다.
십 년 전 이미 한 번 의사 선생님의 덕으로 찾은 광명이었지만 찰나의 세월 만에 시력은 다시 수술 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쓰면 쓸수록 기능은 다해지는 것이다.
때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흐릿하게 보게 된 것에 감사하다.
어차피 가까이 보고 싶은 사람은 곁에 있기 마련이니까.
자연 앞에 있을 때는 서글퍼지는 시력의 저하가 사람과 있을 때는 덤덤해지고, 그것이 삶의 균형이다.
침침한 시력으로도 이왕이면 사람보단 자연을 보고 싶다.
어르신들이 사람보다 자연을 찾아가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