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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Oct 27. 2020

퇴사기1. 퇴사를 선택하다.

"엄마 나 더는 못할 거 같아."


2년 전부터 가슴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사직서를 꺼내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그 누구보다 가장 진실된 마음으로 나를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서른이 넘어 철든 딸은 엄마의 마음에 더 큰 짐을 얹이고 싶지 않았고, 지쳐가는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 이틀, 그리고 2년을 그렇게 미뤄왔다. 그런데 그날은 철없는 딸로 돌아갔다.


말로만 들어왔던 '번아웃(Burn-out) 증후군'은 내 상상보다 더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을 하기 싫다. 쉬고 싶다.처럼 일상에서 문득문득 느껴졌던 자잘한 반응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 행복한 요소가 많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회사만 떠올리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고, 울면서 하고 싶지 않아. 가고 싶지 않아. 못하겠어. 라며 절규했다. 그런 우울함과 의기소침함, 몸의 거부 반응만큼이나 신기했던 것은 회사와의 연을 끊지 않은 이상 이 괴로운 감정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어떤 감정보다도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 번아웃 증후군: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


모순되게도 '퇴사'는 그 가능성만으로 고된 하루를 버티게 만들었던 존재였다. '조금만 버티자. 언젠가는 이곳을 멋지게 박차고 나올 거야'라는 생각만으로도 정신없는 업무, 기분대로인 상사와의 시간을 '순간'이라는 어떤 시점에 가둬둘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점에 도달하자 퇴사는 결국 내 선택의 문제가 됐고, 나를 버티게 했던 그것을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지옥 같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쯤 되니 그것은 코로나 19로 인한 극심한 실업난에 대한 불안도, 60이 다 된 부모님의 걱정도, 30년이나 남은 대출금에 대한 부담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일이 돼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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